어찌되었건 고구려군한테 해당 병력이 박살나서 와해되고
다들 보급품을 자기 군장에 포함하는 병크의 댓가로 다들 몸만가지고 빤스런치다가 압록강까지 추격당하고
그 외에도 빈 몸으로 요동을 걸어가다가 죽거나 잡히거나 실종되고 수측에서 귀환한 병력이 2700이었다는 설이 거의 납득가능한 설명
그래서 최근에는 살수-압록 전투로 불러야하는거 아니냐는 소리도 있고
어찌되었건 고구려군한테 해당 병력이 박살나서 와해되고
다들 보급품을 자기 군장에 포함하는 병크의 댓가로 다들 몸만가지고 빤스런치다가 압록강까지 추격당하고
그 외에도 빈 몸으로 요동을 걸어가다가 죽거나 잡히거나 실종되고 수측에서 귀환한 병력이 2700이었다는 설이 거의 납득가능한 설명
그래서 최근에는 살수-압록 전투로 불러야하는거 아니냐는 소리도 있고
위생 상태도 개판인 시대라서 사소한 부상=죽음이 특이할 것도 없을 테니까, 밥까지 굶으면 ㄹㅇ 인자강만 살아남았겠네
그래서 경관도 항전의식 고취도 고취인데 고구려입장에서도 요동의 수십만 시체처리를 못하겠어서 위생 (석회를 부음)목적에서 만든게 아니냐는 설도 있음. 이세민도 요동에서 해골이 사방에 널렸네 하고 제사를 지내준것도 그렇고
고대사는 기록이 부족한게 아쉬워요. - dc App
모랄빵 나면 거진 다 죽더라고 - dc App
2700명은 어캐살았노 ㅅㅂㅋㅋ
당시 요동이 뻘밭이었다 하던데 더 어려웠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