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잘 안나는데 당육전에 따르면 1군에 병력이 5천이 남으면 총관, 1만이 넘으면 영전부사(이게 가물가물함)를 뒀다고 함 물론 이때가 현종때라 다르긴 한데 기본적으로 절충부 숫자도 거의 동일했고 지속적인 전쟁으로 오히려 충원율이 높았음을 생각한다면 이세적+장손무기는 20만정도를 베이스로 보는게 맞다고봄 다만 장손무기는 모르겠는데 이세적에 겅우 - dc App
으헬헬헬(k1205yt)2024-10-1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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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6만을 이끌고 난주와 하주에서 이민족들을 징집했는데 이 과정에서 아사나씨 총관 2명인가 3명인가가 편제에 추가됨(이것도 약간 가물가물 이건 논문본거라 더 가물함)대략 1~2만명이 이민족임 셈이지 아사나사이가 1천을 이끌었다고 했는데 아마 아사나사이가 이세적 소속이었을거임 1군을 담당했다고 치면 돌궐군 최소 5천에 대략 1~2만을 이끌었고 개중 1천을 따로 별동대로 편성한게 아닌가 싶음 - dc App
으헬헬헬(k1205yt)2024-10-1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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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 4천명에 경우 6군이 통상적인 군 펀제로 둔건지 아님 그냥 관용구로 쓰인건진 모르겠음 만약 관용구라면 황제의 친위대로 쓰인 북아금굼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추측하는데 얘네 수효가 어느정도인진 확실친 않지만 그래도 만단위는 되는걸로 알고있음 - dc App
으헬헬헬(k1205yt)2024-10-1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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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ㅅ ㄱㅅ 근데 천가한 먹은 다음이라 꽤 유목민 비중이 높았을거라고 보는 견해도 있더라, 국방부 산하연구에서 저렇게 보고 학계에서 오히려 병력 규모를 1 2 3차순으로 커졌다고 보는거도 있음. 돌궐비문에서 고구려 원정에 지속적으로 동원되었다는게 밝혀지기도 했고 - dc App
Vita_Activa(hugefiasco94)2024-10-1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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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상에는 삼국사기랑 신당서 고려전쪽인가? 거기 있을텐데 돌궐을 소집했다곤 안하고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 호인이라고 해놨을거임 거기 근방의 이민족들은 모았다고 볼 수 있을거같은데 나중가면 2차전 뜨기 전까진 거란이랑 말갈도 모아서 공격하고 하는거 보면 아마 이민족 꽤 많이 모았던거같음 다만 대부분 이세적 부대에 치중된거 같은데 편제표 본지 오래되서 그런데 아마 이민족출신 장군 대부분이 이세적 소속이었을거임 언급했던 돌궐군 1~2만 외에도 계필하력도 아마 이쪽이었고 - dc App
으헬헬헬(k1205yt)2024-10-1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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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1차 4~50만 2차 35만 내외 3차 몰루 3차는 당서 병지 뒤져보면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편제가 안나와서 50만+@말곤 아직 확인을 못했음 하북의 세수를 군비로 전용하란 내용이 나오고 사천에서도 징집했다는데 이건 확인 못함 내 생각에는 이정도인거같음 - dc App
으헬헬헬(k1205yt)2024-10-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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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ㅅㄱㅅ 그래서 고종 때 3차전에서 병력기록들이 과장은 맞는데 북방을 통해서도 쏟아져 들어와서 복속시킨 유목민 다 데려온고 아니냐는 소리도 있더라 앞서 말한대로 비문에서도 발견되고 - dc App
Vita_Activa(hugefiasco94)2024-10-1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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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는 ㄹㅇ 총력전 느낌이더라ㅋㅋ 나도 기록을 확인 못하고 논문이나 단행본에서 관련 내용 못봐서 그럴지 꽤 가능성 있다고 생각함 - dc App
고대사는 사료가 부족하다 흑흑 - dc App
진짜 안시성주 저 사람은 뭐하는 사람이었길래... - dc App
오히려 최근에는 연개소문과 싸웠다는걸 거짓말로 치부하는게 민족주의적 해석 아니냐는 견해도 있어서 연개소문 하고 싸우고 고당전쟁 참전한거면 ㄹㅇ 레전드임 - dc App
논문 제목이 어떻게되나요?
http://doi.org/10.29212/mh.2022..12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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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10573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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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잘 안나는데 당육전에 따르면 1군에 병력이 5천이 남으면 총관, 1만이 넘으면 영전부사(이게 가물가물함)를 뒀다고 함 물론 이때가 현종때라 다르긴 한데 기본적으로 절충부 숫자도 거의 동일했고 지속적인 전쟁으로 오히려 충원율이 높았음을 생각한다면 이세적+장손무기는 20만정도를 베이스로 보는게 맞다고봄 다만 장손무기는 모르겠는데 이세적에 겅우 - dc App
처음 6만을 이끌고 난주와 하주에서 이민족들을 징집했는데 이 과정에서 아사나씨 총관 2명인가 3명인가가 편제에 추가됨(이것도 약간 가물가물 이건 논문본거라 더 가물함)대략 1~2만명이 이민족임 셈이지 아사나사이가 1천을 이끌었다고 했는데 아마 아사나사이가 이세적 소속이었을거임 1군을 담당했다고 치면 돌궐군 최소 5천에 대략 1~2만을 이끌었고 개중 1천을 따로 별동대로 편성한게 아닌가 싶음 - dc App
당태종 4천명에 경우 6군이 통상적인 군 펀제로 둔건지 아님 그냥 관용구로 쓰인건진 모르겠음 만약 관용구라면 황제의 친위대로 쓰인 북아금굼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추측하는데 얘네 수효가 어느정도인진 확실친 않지만 그래도 만단위는 되는걸로 알고있음 - dc App
ㄱㅅ ㄱㅅ 근데 천가한 먹은 다음이라 꽤 유목민 비중이 높았을거라고 보는 견해도 있더라, 국방부 산하연구에서 저렇게 보고 학계에서 오히려 병력 규모를 1 2 3차순으로 커졌다고 보는거도 있음. 돌궐비문에서 고구려 원정에 지속적으로 동원되었다는게 밝혀지기도 했고 - dc App
기록상에는 삼국사기랑 신당서 고려전쪽인가? 거기 있을텐데 돌궐을 소집했다곤 안하고 기억이 안나는데 아마 호인이라고 해놨을거임 거기 근방의 이민족들은 모았다고 볼 수 있을거같은데 나중가면 2차전 뜨기 전까진 거란이랑 말갈도 모아서 공격하고 하는거 보면 아마 이민족 꽤 많이 모았던거같음 다만 대부분 이세적 부대에 치중된거 같은데 편제표 본지 오래되서 그런데 아마 이민족출신 장군 대부분이 이세적 소속이었을거임 언급했던 돌궐군 1~2만 외에도 계필하력도 아마 이쪽이었고 - dc App
대략 1차 4~50만 2차 35만 내외 3차 몰루 3차는 당서 병지 뒤져보면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편제가 안나와서 50만+@말곤 아직 확인을 못했음 하북의 세수를 군비로 전용하란 내용이 나오고 사천에서도 징집했다는데 이건 확인 못함 내 생각에는 이정도인거같음 - dc App
ㄱㅅㄱㅅ 그래서 고종 때 3차전에서 병력기록들이 과장은 맞는데 북방을 통해서도 쏟아져 들어와서 복속시킨 유목민 다 데려온고 아니냐는 소리도 있더라 앞서 말한대로 비문에서도 발견되고 - dc App
3차는 ㄹㅇ 총력전 느낌이더라ㅋㅋ 나도 기록을 확인 못하고 논문이나 단행본에서 관련 내용 못봐서 그럴지 꽤 가능성 있다고 생각함 - dc App
첫번째 논문 숫자가 개인적으로도 생각하는 당군 원정군이네 - dc App
홍건적 1차 4만, 2차 20만도 얼추맞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