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2차대전 전쟁해군Kriegsmarine임.

독일 해군은 베르사유 체제 속에서 해군을 극단적으로 제한 당했음.

그래서 재군비 선언 이후에 기존에 건조한 신조함(엠덴급, 라이프치히-쾨니히스베르크급, 도이칠란트급)에 더해서 중순양함, 전함들을 나름 착실히 건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옆나라인 프랑스 해군과 견줘도 부실한 해군이 되었음.

그러다 보니 독일 해군 수상함대는 자기 앞마당인 발트 해를 제외하면 매우 소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었음. 물론 스카게라크를 넘어 아트미랄 그라프 슈페, 비스마르크, 프린츠 오이겐을 보내 봤지만 돌아온 건 프린츠 오이겐 뿐이었음.

이후에도 가끔 소규모 함대를 꾸려 통상파괴전에 나서기도 했지만 연합국 해군도 그에 맞서 전함까지 동원하며 호송선단을 꾸렸기 때문에 전과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음.

히틀러는 함선의 수와 질에 철저히 좌우되는 해전의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전쟁해군 수상함대의 비겁함만을 질타했음.

전쟁해군이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수상함대를 배제한다면 남은 건 잠수전대, 우보트 뿐이었음.

독일은 우보트를 건조하면서 소품종 대량생산하려고 했고 이는 단시간 내에 급격히 팽창하는 전쟁해군의 잠수함 수요를 충족하는 데 도움이 되었음.

문제는 당대 잠수함이 존 홀랜드가 정립한 재래식 잠수함에서 크게 벗어나는 물건이 아니었다는 점이었음.

요컨대 잠수함을 설계하는 데 지금처럼 계속 잠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아니라 평소에는 수상항행을 하다가 필요할 때만 잠항하는 이른바 가잠함만 주구장창 만든 것이었음.

기술적 혁신이 없는 잠수함과 카를 되니츠의 일견 독선적인 중앙집중식 전술 운용 방식을 결합해 처음에는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틈새를 파고 든 연합국 해군이 레이다, 전파탐신기(HF/DF, Huff-Duff), 장거리 대잠초계기, 호위항공모함을 투입하면서 전쟁해군은 파멸적인 결과를 맞이하게 됨.

독일은 전쟁 기간 동안 우보트 1,131척을 건조했고 그 중 전투 초계에 863척을 투입해서 785척을 손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