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국공산당은 고위층 일가족 90% 미국국적
2. 주체적이고 강하다면서
70년 동안 미국이 무서워서 대만통일 못하고
"하나의 중국" 따위로 울부짖음
3. 하원의장 펠로시가 대만 방문하면 가만있지 않을거라더니 아무것도 못하고
그라울러 전자전기에 쳐발려서, 중국군 055형 구축함, J16D 전투기 무력화
펠로시가 미국으로 무사히 돌아간걸 확인한후 대만해역에서 혼자 무력시위로 정신승리
미국의 위상, 대만의 독립의지만 잔뜩 쳐올려줌
이제 미국 정치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만 방문
4. 짱꼴라를 대표해주는 러시아의 속담 "중국의 최후통첩"
"중국의 최후통첩" 은 아무런 결과를 낳지 않는 경고를 뜻하는 러시아 속담이다.
기원
--
1950/60년대 중국과 미국 사이에는 대만 해협(Taiwan Strait) 문제 때문에 긴장상태에 있었다. 미군 제트기는 정기적으로 해협을 정찰하였고 이는 보통 중국 공산당에 의한 공식적인 항의로 이어졌다. 중은 대만해협에서의 미국 공격기의 기동에 대해서 900번이 넘는 "최후 통첩"을 내보냈다. 그럼에도 실제로 이어지는 결과는 없었다. 따라서, 러시아에서 중국의 경고는 거의 의미가 없는 경고라고 생각하는 것이 흔한 정서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중국의 최후통첩"은 러시아에서 유행어/속담이 되어버렸다.
중국은 2차 대만 해협 위기 동안, 1958년 9월 7일에 실시한 미국의 정찰비행에 대해 첫 경고를 발표했다. 그 당시, 미국은 대만을 유일한 합법적 대표로 간주하고, 중국이 통제하는 해역에서 정찰비행을 실시했다. 중국은 비행이 발생할때마다 기록하고 각 비행때마다 외교적 채널을 통해 경고를 내보냈다. 중국의 경고는 정확한 수치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1964년 까지 900회 이상이 발표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최후통첩"은 보통 공개적으로 선포되었다. 따라서 "중국의 최후통첩"은 발트해 지역과 구 소련국가내에서 은유적인 표현이 되었다. 그리고, 지역마다 파생된 속담이 되었다. 용어자체는 구소련 지역에서 널리 쓰였는데 특히 에스토니아 지역에서 쓰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