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간단하다, 상처입은 본인의 과실이다.

전포대장은 스스로 마음속으로 품은 질문에 스스로 답했다.

하지만 그런 간단한 현실의 정답과

지금 자신이 "만들어야"할 정답은 달라야만 한다.

머리를 부여잡고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자신 앞에 서 있는 허 일병을.

누가 다치게 하였는가?

말했듯이 현실의 정답은 언젠나 간단하다.

점호 후 포상정리를 위해 혼자 넷포로 올라간 허 일병은, 방탄모를 쓰는 걸 깜빡하고, 아니, 귀찮아서 쓰지 않고 갔고.

포상정리를 다 하고 K55안에서 일어나던 중 폐쇄기 레버에 머리를 박아 상처를 입었다.

좁은 K55 안에서 일어서려다가 폐쇄기에 부딪히는 것이 딱히 얼빠진 일은 아니었다, 전포대장도 포병학교에서 여러번 폐쇄기에 전력으로 머리를 박은 일이 있었다, 굳이 원인을 따지자면 양놈 코쟁이들이 설계를 잘못한 탓이다.

다만 뭐든지 FM으로 하는 전포대장은 항상 방탄모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작은 혹만 났을 뿐이었지만 허 일병은 방탄모도 없이 이마에 전력으로 박아버렸고, 그렇기에 출혈량이 엄청났다.

후송이고 뭐고 보내기 전에 전포대장은 포비돈으로 허 일병을 소독하고 멸균 거즈를 왕창 뜯어서 허 일병의 주먹에 쥐어준 후 상처에 압력을 가하라고 명령했다.

자신에게 복싱 경험이 있고, 스파링 중 이마를 찢긴 적도 있었기에, 그리고 TCCC에 대한 개괄적인 수준의 이해가 있었기에 출혈량에 당황하지 않고 할 수 있었던 응급처치였다.

다만 그런 경험을 가진 전포대장이기에 사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었다, 이건 꿰메야 하는 상처다.

그것도 얼굴에 남는 꿰메야 하는 상처.

전포대장의 위장이 비틀리는 듯 했다, 아니 비틀리고 있었다.

허 일병의 인사자료에서 본 부모님의 얼굴, 이미 영전이 약속된 포대장의 얼굴, 자신을 믿어주고 있는 대대장의 얼굴.

전포대장의 마음속에 떠오른 이 얼굴들은 하나같이 분노와 회한이 담긴 표정을 자신에게 지어보이고 있었다.

비틀리는 위장을 부여잡고 전포대장은 당직병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이딴 생각 하느라 시간을 낭비해선 안된다, 대충 내린 빠른 명령이 장고한 제대로 된 명령보다 낫다는 것이 자신의 신조였다.

"야, 점호간 환자발생, 대대 내부에서 처리 안되고 사단의무대 가야한다고 전화로 대대에 보고 좀 해줘라"

FM상으로는 대대 당직사령에게 포대 당직사관인 자신이 전화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랬다간 "어쩌다가" 이런 상처가 났는지 물어보겠지, 일단 이렇게 시간을 벌고.

전포대장은 휴대폰을 꺼내 포대장 번호를 누르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문자로 할까?

포대장이라면 아직 안 잘 것이다...문자로 할까?

전화로 포대장한테 이런 이야기를...해야 하나? 할 수 있나?

지금 이런 어리광을 부릴 때가 아니다, 전포대장은 마음을 곧추세우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OO, 포대장님, 쉬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지금 허 일병이 심하게 다쳤습니다."

"뭐? 왜?"

전포대장은 일단 "실제로 일어난 일"을 포대장에게 설명했다.

포대장은 모든 이야기를 듣고 전화를 뚫고 나올 듯한 한숨을 내쉬고는, 몇 초 고민한 후 전포대장에게 이야기했다.

"전포야, 우리 관물대 중에 찌그러진 거 있지"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짧은 대화 안에, 전포대장은 포대장의 의도를 파악했다.

관물대 중에 찌그러진 것 따윈 없다, 행정보급관이 포반장들을 데리고 함께 모든 관물대를 손본게 고작 1달 전이다.

하지만 이제 하나 "생길"것이다, 허 일병 이마 높이가 찌그러진 관물대가.

포대장의 영전이 정해진 지금, 대대장님의 대대평가가 눈앞인 지금, 포대의 인원이 포상점호를 하다가 스스로의 과실로 화포 내부에서 머리가 깨져버렸다, 는 여단 사례집에 실릴만한 교과서적인 사고가 발생해버린다면.

대대장도, 포대장도, 나도, 허 일병도, 그리고 넓게 보면 점호 절차에 장비검사가 포함될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대대 전체도 넓게든 좁게든 피해를 입는다.

하지만.

허 일병 본인의 "미미한 과실"로,

예를 들어 미끄러 넘어져서 관물대에 박아 이마가 깨졌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사고지, 부주의가 아니다, 허 일병은 징계 절차를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조금 우스개소리가 되고 끝난다, 허 일병 본인의 의사는 전혀 들어가 있지 않지만, 이 거래는 좋은 거래였다.

전포대장과 포대장의 짧은 대화 안에는 이 모든 게 담겨 있었다.

"믿는다."
"네 알겠습니다. OO."

당직병 손 병장이 받고있던 전화기 송화구 부분을 손으로 가리고 물었다.
"전포대장님? 당직사령님이 사고 원인 물어보십니다."

내가 전화 끝날 때까지 기다려 준 거겠지, 역시 고참들은 믿음직하다.
"내가 전화할게, 돌려줘"

포대장의 한숨에 비교할 바는 안되겠지만, 전포대장도 작게 한숨을 내뱉고 전화기를 들었다.

그런다고 진실을 묻어도 되는 것인가? 비록 이 사건에 관련된 모두에게 이득을 주는 조치라 하더라도,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가?

...허 일병의 부모님에게 이 이야기를 보고하면서, 부모에게 거짓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이 질문에 전포대장은 스스로 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