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군 조종사들의 전사 시기는 전사자 묘비를 근거로 할 때 1967년에 3∼10월 사이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는 1966년 12월 15일 첫 교전이 시작된 후 3개월 뒤부터이죠. 베트남의 북한군 전사자 묘비를 근거로 한다면 1968년에는 2월 12일 1명이 전사한 이후 전사자가 없습니다.
북한조종사들의 손실이 1968년 이후 없거나 또는 줄어든 것은 세 가지 측면에서 원인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윤번제로 계속 순환하면서 조종사들의 현지적응과 전투경험의 축적에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최대 7번을 파병 온 조종사가 있다는 점은 이를 짐작케 하죠. 둘째, 북한 조종사들의 소극적인 전투행위 때문입니다. 파병 초기에는 ‘하노이를 평양과 같이 사수하자’는 구호를 회의 때마다 떠들었지만 이후 조종사들은 뒤에서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했다고 합니다. ‘왜 우리가 하노이를 평양처럼 목숨 바쳐 지켜야 하는가?’, ‘하노이는 하노이고, 평양은 평양이다’라는 식으로 소극적 입장이었다는 것이죠. 이러한 생각은 자연스럽게 전투에서도 소극적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셋째, 미군의 북폭이 1968년 이후 미국과 북베트남 간 휴전협상이 진행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이전보다 치열하지 않았던 측면도 한 요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출처: 북한 공군의 베트남 전쟁 참전, 현대북한연구 19권 3호, 34~35p
지금 러시아 파병 간 북한군 마인드가 딱 저 마인드일거다.
이제는 정반대 아닌가? ㅋㅋㅋ - dc App
ㄹㅇ 시장개방이 신의 한수였었지 - dc App
베트남 공산당은 역사보면 전세계 공산당 중에서는 손에 꼽을정도로 머리 잘 굴리는거같음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