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의 별들만이 짙은 어둠을 힘겹게 이겨내며 바깥이 공허가 아님을 증명할 뿐이었다. 차 안도 다를바 없었다. 끝없는 어둠 속에서 덜컹거리는 렬차의 소리와 수많은 사람들의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나는 잠에 들지를 못했다. 그렇다고 깨어있는 것도 아니었다. 가늠하지조차 못할 시간 동안 어둠만 바라본 탓일까.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잠에 든 걸까? 아니먼 나처럼 잠에 들지도 깨어 있지도 못하는 상태인걸까?
며칠째 움직이고만 있다. 처음엔 뻐스로, 이제는 렬차로. 아직도 뻐스에 올라 떠나기 전에 본 어머니의 얼굴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끼이이익...》 렬차가 멈춰섰다. 청진역이다.
고음의 제동기 소리와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들 내려!》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줄을 맞춰서 내렸다.
우리 눈 앞에는 다시 여러대의 뻐스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함!》
붉은 글씨로 뻐스 옆면에 써있는 문구였다.
우리는 앞으로 누구를 위해 복무하게 될까.
나는 왼쪽에서 세번째 뻐스에 탔다. 운 좋게 창가 자리에 앉았다. 바깥으로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 보였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자동차도 당연히 없었다. 우리는 깊은 새벽, 소리도 소문도 없이 이곳을 떠난다.
《저기...》 옆자리 사람이다.
《...반갑습니다. 동지》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저는 남포에서 왔습니다.》
《제40저격병려단 소속입니다.》그가 말을 이었다.
《저는 자강도...》 내 대답이 채 끝나기도 전에 뻐스의 발동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디젤기관의 진동과 함께 뻐스가 출발했다.
나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다시 렬차에 있을때 처럼 정신이 풀렸다. 그냥 지금 상황이 실감나지 않는다. 작년까진 다 잘 될줄 알았다. 얼마 전 휴가를 받아 부모님을 뵀을때 까지만 해도 모든게 좋았다. 왜 하필 나일까.
앞 자리에서 책자들이 넘어왔다.《로씨야어》...
로씨야말은 학교에서 배운 뒤로 쓴 적이 없어 전부 까먹었다. 다시 배워야 한다.
얼마 안 지나 뻐스가 멈춰섰다. 청진항에 도착한 것이다.
뻐스에서 내리고 보니 앞에 커다란 배가 있었다. 배머리에 로씨야 기발이 나붓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로씨야 기발과 우리 공화국기는 색갈이 똑같았다. 이것이 군대까지 보내는 《혈맹》인 걸까.
저 앞 연단에 누군가 섰다. 그러곤 연설을 시작했다.
《현재 로씨야는 미제침략자와 괴뢰한국의 도움을 받는 우크라이나신나치스정권과 맞서 싸우는 위대한 조국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지난 6월 우리나라 평양을 친선방문한 로씨야련방대통령 울라지미르 뿌찐동지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인민군대 파병을 부탁한데 대한 응답으로 서방제국주의자들과 맞서싸우는 로씨야인민들의 투쟁에 함께한다....》
풀어졌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짜 떠나는구나.
나는 자강도의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선에서 농장원의 아들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 또 농장원이 되는 것. 이 운명을 거스르기란 쉽지 않다.
아버지도 농장원의 아들이었다. 그래도 아버지 어릴적에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는 《뜨락또르》라는게 있어 농사일을 기계가 했다고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물론 지금도 《뜨락또르》라는게 있기는 하다. 그저 부속품과 연유공급이 중단돼 실지 리용하지 못할 뿐이다.
조선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고난의 행군》 뒤로 모든게 나빠졌다고 한다. 농장에 더이상 비료는 물론이요 연유 등등 아무것도 공급되지 않았다. 뼈빠지게 일해봐야 국가수매로 갖다바치고 나면 돌아오는건 없었다. 년말 결산분배용 알곡은 중간에 새버리는게 기본이었다.
이때 수많은 농장원들이 죽어나갔다. 이 시기를 겪자 어느 누구도 당을 믿지 않게 됐다. 각자도생이다.
이렇게 힘들게 산 우리 아버지는 내가 더이상 농장원의 삶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셨다. 군 읍지구에서 장사를 하며 인맥을 얻은 어머니와 함께 어떻게든 길을 찾으려 하셨다.
그러다 운이 좋아 초모담당자와 연이 닿았다. 아버지는 내가 입당하기 좋은 조건의 부대로 보내달라며 모아둔 돈을 고이셨다. 그렇게 나는 저격병부대에 배치됐다.
입대하던 날 어머니가 하셨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도 군사복무 해봐서 안다. 얼마나 힘든지...》 《그래도 이겨내라.... 생에 한번뿐인 기회일지도 모른다.》
《어머니, 아버지, 꼭 이겨내겠습니다!》나는 그때 이렇게 웨치며 부대로 떠났다.
군생활은 매우 힘들었지만 참고 버텼다. 부대안에서도 내 평가는 좋았다. 우리 부대도 여러 훈련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작년 그 결실을 맺을수 있었다. 우리 부대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 열병행진》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휴가를 받아 고향에 돌아갔을때 깜짝 놀랐다. 우리 마을에 새 살림집들이 일떠섰고, 농장엔 뜨락또르나 수확기같은 새형의 농기계들이 들어와 있었다.
아버지를 만나 물으니 이렇게 답하셨다.
《우리농장이 새시대 농촌혁명강령의 본보기 시범농장이 됐다. 그래서 새 문화주택도 지어지고 농기계도 들어왔다. 진작부터 이랬다면 너도 그냥 농장원 해도 됐겠다 허허...》
《아이, 아버지도 참...》
로씨야에서 비료가 많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 덕에 올해 농사는 대풍이라고 하셨다.
나도 아버지께 좋은 소식을 들려드렸다.
《아버지, 우리 부대가 올해 열병행진에 참가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모두 평양구경 해보는건 물론이고...》 《...입당추천서를 써준답니다.》
《그게 정말이냐..? 》
아버지는 정말로 기뻐하셨다. 평생 시골 농촌에 살던 설움이 씼겨 나간듯 했다.
우리 가족에게 련이어 경사가 일어난, 최고로 기쁜 날이었다.
얼마 뒤 열병행진이 진행됐다. 촌사람인 내게 평양은 정말 꿈만 같았다. 하늘 높이 솟은 아빠트, 빛나는 건물들, 수많은 자동차와 뻐스들 그리고 지하철... 아직도 주체탑에서 바라본 평양의 야경이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 어머니도 평양에 이때 처음 와보셨다.
《너, 이러다 출세해서 평양에 사는거 아니냐》
《아버지, 농담도 참... 그건 무립니다.》
이때 로씨야사람들이 왔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조로관계가 좋아지나보다 했다. 고립된 우리나라가 로씨야와의 호상협력을 통해 경제가 좀 나아지려나 싶었다.
이때까진 몰랐다. 로씨야로 인민군대가 파병될 줄은. 그리고 내가 선정될 줄은.
떠나기 전 가족들과 마지막으로 만났다. 말이 새 나가는걸 우려한 걸까. 파병군인 가족들은 전부 강계시의 려관에서 한발짝도 못 나가게 했다.
《로씨야에서 전쟁이라니...》 어머니는 크게 탄식하셨다.
《다 너 잘되라고 한건데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내가 미안하다...》
《어머니, 일없습니다. 저.. 그동안 잘 버텨냈잖습니까. 저는 조선인민군 특수작전군 저격병입니다. 》 《열병행진때 제 모습 보셨잖습니까.》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않으셨다.
진작부터 가능한 모든 방법을 알아보셨다고 한다. 모든 인맥을 동원해 빼보려 하셨었다.
《...정말 방법이 없습니까? 》
그럴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의 명령입니다. 전인원 리탈자 없이 모집하라는 포치안이 내려왔습니다.》 였다.
《동지, 제발, 제발 부탁입니다. 한번만 더 알아봐 주시라요.》
《요즘 당규률이 얼마나 엄해졌는지 모르십니까? 저도 살아야지요. 요즘같은 때에 함부로 그랬다간 다 가는겁니다.》
《6개월이면 됩니다. 로씨야 파병군은 6개월단위로 순환배치됩니다.》 군관이 덧붙였다.
《그 동안 가족분들께 숙식도 당에서 제공하고, 돌아오면 평양이나 원산 등에 살림집도 배정하고...》
《그 얘기가 아니잖습니까.》 아버지가 말했다.
《하나뿐인 자식을 사지로 보내게 생겼는데... 그 무슨 보상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살아 돌아오거라. 아니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살아만 남아라》 떠나기 전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작게 말씀하셨다. 《...적에게 투항하더라도 말이다.》
아버지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역으로 떠나는 뻐스에 타기 전 나는 크게 웨쳤다
《어머니, 아버지, 꼭 살아 돌아오겠습니다!》
러시아로 파병가는 북괴군 가족들 격리시키고 어쩐다길래 생각나서 써봄. 실제론 저런 보상도 안 해줄듯?
북한사회 고증은 많이 틀렸을수도 있음.
그리고 전체적으로 문화어 따르긴 했는데 '~할가' 같은건 어색해서 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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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
겹화살괄호 퀄리티 보소 ㅋㅋ
실제로 쟤네 소설 보면 저런식으로 쓰더라 - dc App
재밋게 글 잘썼노ㅋㅋ - dc App
이걸 감수성자극용으로 삐라로 뿌리는거지 - dc App
오 - dc App
재밌게 잘 썼네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