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눈을 떴다.
매캐한 화약내음이 진동한다.
내가 살던 곳은 경기도 구리의 낡은 빌라였다.
탈영을 절실히 하고 싶다.
함경도 개마고원 이름 모를 추운 이 곳에서...
군무이탈에 공소시효가 없었다고 해도
나는 사람을 더 이상 죽이기 싫었다.
부서지고 터지는 북괴군은 하나같이 마르고
학생 같았으며 시체같은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나는 보고싶지도 알고싶지도 않았지만 보고 말았고
알게 되었다.
후방에서는 북괴가 침입하고 포격을 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다고 한다.
서울 곳곳에 건물이 일부 부서지거나 불발탄이 있어서 사람들이 불안에 떤다는 내용...
알고 싶지 않았고 겪고 싶지 않았지만 신문으로 알고 라디오로 알게 되었다.
참호에서 나와 통신병에게 시간을 물어봤다.
통신병은 차량호 구석에서 전장망을 장비에 연결해서 시간을 알려줬다.
"현재시각 공팔시 십분입니다"
잠시후 라디오에서 방송이 흘러나왔다.
"KBS 재난주관방송 정기 보도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새벽 북한 김정은과 노동당 정권이 투항했다고 합니다. 청진 현장에 나와있는 김강욱 기자 나와주십시오... 김강욱 기자입니다. 오늘 새벽 4시 반에 청진 전선에서 노동당 정권이 투항했습니다. 전쟁은 즉시 종전되었고 무조건 항복..."
순간 주변 사람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귀에 맴돈다.
우리 집으로 돌아가야지...
내가 살아서 통일이 될줄은 몰랐다.
보훈행사, 개선행사, 구빈행사가 끝나고 치안이 확보되어야 전역할 수 있다는 중대보급관의 설명을 듣고 모두 한숨을 쉬었다.
위문편지, 아이돌들의 특선공연과 전쟁으로 부상 당하거나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울고 후원금이 실시간으로 모여진다.
평양에 가보니 넓은 광장이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
거기에는 국방부 장관이 참모총장들과 함께 웃으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다들 커다란 태극문양의 알 수 없눈 훈장을 매고 있었다.
나는 나중에 훈장을 받는다고 한다.
평양에 가장 먼저 입성해서 태극기를 게양한 병사 5명이 나오는데 두 사람은 준수한 외모였기에 다들 반응이 좋았지만 나머지 세 사람은 키도 외모도 목소리도 평범했기에 상대적으로 덜 관심을 받았다.
광장에 걸린 태극기는 엄청 컸다.
동상폐기를 위한 장소가 마련되었는데 북한지역 전역의 동상을 모아서 쌓아두었다가 원산에 새로 제철소를 지으면 거기로 옮겨서 처리한다고 한다.
방부제 처리된 시체 2구는 목과 사지를 잘라서 화장하고 국가유산청이 가져가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김정은은 종전을 대가로 자기 가족들과 같이 러시아로 가기로 했다는 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이 저거 죽여버리자고 웅성거리며 화를 냈다.
철군한 중공군들이 자원지분과 미군철수를 요구하는 방송이 나온다.
kbs에는 대북봉사활동 구빈상황에서 오래 굶주린 사람은 바로 음식을 주지 말고 물과 미음부터 주고 천천히 영양분을 섭취하게 해야 한다는 방송이 나오고 있다.
법원에서는 이북지역 토지소유권과 함께 소송이 이어졌고
국회에서는 국유지 계획개발과 민간불하 개발로 연일 논쟁이 이어졌다.
평양에서 행사가 끝나고 난 훈장을 받았다. 그건 집에 계신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한국전쟁 참전유공훈장과 똑같은 것이었다. 나는 전쟁으로 다친 것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 중대에는 다리가 터져나가거나 죽은 병력들도 분명 있었다.
이번 전쟁으로 사상자가 3만명이 넘는다는 내용과 함께 통일경제개발에 대한 100분 토론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다.
국도를 타고 서울에 왔다. 우리 할아버지는 단지 다리 하나가 의족일 뿐 건강하셨다. 집은 포탄에 맞아 지붕에 구멍이 나고 아버지의 차가 부서졌다.
그리고 엄마는 울고 있었다. 외삼촌이 강원도 국도에서 무장공비들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장례를 치뤘지만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엄마는 나를 보고 살아있어줘서 고맙다고 주저앉았다.
할아버지는 쓸쓸한 표정을 짓고 나를 안아주셨다.
할아버지랑 같은 유공자 제복을 입게될 줄은 몰랐다.
아버지는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이사를 가자고 말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실향민이다. 평양이 고향이다.
할아버지는 신문을 보여주셨다. "철마야 태극기 타고 달리자" 경의선 복원계획과 즉각적인 이산가족 상봉 및 자유로운 교류를 정부에서 절차를 밟아 진행하겠다는 내용이다.
치안이 안정되면 할아버지는 경의선을 타고 평양에 갈 것이라고 웃어보였다.
나는 전쟁 이전과 같이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로 했다.
우리 중대에서 전사한 인원들을 추모하는 행사에 갔는데
거기서 모두 껴안고 울었다.
할아버지는 자유로운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버스를 타고 고향집터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선전용 공원과 공터 뿐이었다.
할아버지가 말한 선산은 파헤쳐져있었고
구석에 반동분자유골매장터라는 인분이 묻은 지저분한 표지판만 있었다.
할아버지는 주저 앉아서 흐느꼈다.
우리는 왜 이 전쟁을 했을까.
이 전쟁의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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