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1629-31년 사이에 明 조정이 마카오의 포르투갈 파견 상인들에게서 紅夷砲를 구매한사실을 기록한 중앙 보고서인「報效始末疏와 韓霖의문 貢銃效忠疏」에 등장하는 로드리게스를 중점으로 홍이포 수입 및 자체 개발을 시도함
1631년에 明에 사신으로 다녀온 정두원(鄭斗源, 1581-1642)은 망원경, 폴리오트식 기계시계, 수발식 소총, 염초 샘플, 마테오 리치가 그린 세계지도, 남북반구가그려진천문도, 해시계, 그리고 중국어로 저술된유럽의 과학과지리에 관한 연구서적 네권, 그리고 마카오에 거주하는 포르투갈인들이 明조정에 조공으로 紅夷砲를 바친 경위에 대한 보고서를 조정에 제출함
대부분의 물품들은 덩저우(登州)에서 포르투갈 출신 예수회신부인 로드리게스(J. Roidrigues)가 정두원과의 친분, 조선에 선교를 위해 진출하기 위한 인맥만들기용으로 무료로 제공했던 것들임
정두원은 紅夷砲를 집중적으로 관찰하였는데, 그의 西洋國奇別狀啓에따르면, 그는 紅夷砲가 서양 사람인 公沙的西勞 등이 明 조정에 해당 포를 바친 것임을 알고있었고 또한 “서양 紅夷砲를 보니 탄환의 크기가 말만하고 사거리가 80리나되는 천하에 장대한 무기입니다.”라고 평가했음
다만 이 홍이포는 컬버린(culverin)이라는 신형 대포임이 잘 알려져 있으므로, 黃一農(2003)이 조사한, 1620년경에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에서 운용하던 함선에 장착된컬버린의 제원을 참고했을때 컬버린은 대체로 무게 약4,000파운드, 탄환 약 15파운드, 길이 약 300cm, 구경이 약 12cm였으므로 명 황실이 입수한 포는 이정도였다는게 정베임
정두원은 자신에게 이러한 정보와 선물을 준 로드리게스에 대해, “천문학과砲術에정통하며, 明 조정의 관원이되었고 軍門에서도 귀한손님으로 대접하고있으며, 충분히 신뢰할 만한 사람이다.”라고 평가내리고 조정에 적극 추천함 그리고 “로드리게스가 지금 덩저우(登州)에 있는 孫元化의 軍門에 머물러있고, 신이 이미 그와 더불어 안면이 있사오니, 뒷날 軍門앞으로 자문을 보낼때 겸하여 편지 한 통을 덧붙여서 그 법을구한다면 紅夷砲에 대한 지식도배울수있습니다.”라고말하면서, 로드리게스로부터紅夷砲 제조법과 사용법을 배울 것을 조정에 건의했음 실제로 덩저우로 사람을 보내 개발을 착수하려 했던 것으로 보임
그러나 우리는 정묘/병자호란을 통해 로드리게스를 이용해 紅夷砲제작법을습득하자는 鄭斗源의 건의가 시행되지 못했음을 이미 알고있음. 사정거리가길고, 조준사격이가능하며, 포성이커서 적을위압할 수 있는 신무기였던紅夷砲는, 조선에서는1731년에이르러서야 2기가 자체 제작되는데 그침. 이 紅夷砲는 훈련도감에 배치됨 이는 정두원과 당시 조선의 조정의 의논 시기보다 무려 1세기나 지난 시점임
그렇다면 왜 조선은 홍이포 자체 개발의 길로 나아가지 않았는가? 또한 그럼 조선에 진출해서 서양 문물을 들여오고 예수회를 통해 교유하려했던 로드리게스는 어떻게 되었는가?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조선 가도에 주둔한 명군 모문룡군이 모문룡이 횡포를 일삼자 그를 사살, 토벌한 작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후금군에게 쫓기던 모문룡군의 잔당이 반란을 일으켰을때 로드리게스는 홍이포 운용법을 명군에게 전수하고 있다 포위되어 끝까지 항전하다 절벽에서 뛰어내린뒤 어렵사리 본국으로 피신해버리고 본국에서 병사해버림
마찬가지로 정두원과 교류하던 명의 화병 장군은 반란군노무새끼들한테 수류탄을 던지려다 반란군이 쏜 화살을 역으로 맞고 전사함
이 사건을 吳橋兵亂이라고 부름
즉 정두원이 소개한 어마어마한 신식화포는 당장 조선조정이 확인하기힘든 실체가 없는 허상이였고 그가 소개한 서양 무기는 아직 미숙하기 짝이없던 부싯돌점화 소총이 다였음
그가 제의한 공학자들과 조선군을 덩저우로 보내 홍이포 제작과 운용법을 전수받자는 의견은 그와 친분이 두터운 로드리게스와 명 장수가 사라지며 그또한 실현방법이 사라져버림 더구나 당시 조선에 가장 급하게 필요한것은 화약의 주원료인 염초였으므로 鄭斗源이 가져온 서양 문물은 조선의 위정자들이나 대신들의 관심을 끌기가 현실적으로 쉽지않았으며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로드리게스 실종 후 꼽을 있는대로 처먹고 퇴궐했다함
직장인들은 아마 알거임 외부조력자가 있었는데 없네요? 근데 암튼 이 프로젝트 내 머릿속에 있음ㅋ 돈은 존나깨질거임 << 이거 상사한테 어필 ㄱㄴ? ㅋㅋ
그리고 이때 홍이포 및 서양 신식 무기 테크에 올라타지못한 대가를 조선 조정은 양호란을 거치며 톡톡히 치르게됨
중국에 사신을 자주 파견하는 것도 아니거와 청이 중원을 차지한 후에는 조선의 군사력을 매우 엄격하게 통제하려 들었기에 자연스레 홍이포 자체개발은 크게 미뤄졌고 동양은 군사학과는 거리가 먼 다시금 기나긴 평화와 번영에 젖어들게 되고말았음
明의 제2차 紅夷砲 구매와 관련된 두 문서: 「報效始末疏」와 「貢銃效忠疏」
이거 참고했다 원래돈내고 봐야되는거 힘들게 요약햇는데 념이라도 올려주자
- dc official App
디시는 병신같게도 해외면 반고닉이라도 추천을 못함
그러니까 ㅈ같음 개추를 해주고 싶어도 못함 - dc App
ㄱㅅㄱㅅ 개쩌는 자료당 - dc App
양이 새끼들 컬버린 포 30키로 넘게 어케 날린 겨ㅋㅋㅋㅋ
그건 아마 정두원씨의 성과올리기 가라일가능성이 128000%임 - dc App
ㅋㅋ 저런 식으로 수치 묘사하는 거 흔하긴 했지
기술이란 갑자기 뿅하고 튀어나오는게 아니라 그에맞는 철학, 문화,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교훈 - dc App
것도 있지만 화약 재료 수급 문제가 크다보니... - dc App
그가 제의한 공학자들과 조선군을 덩저우로 보내 홍이포 제작과 운용법을 전수받자는 의견은 그와 친분이 두터운 로드리게스와 명 장수가 사라지며 그또한 실현방법이 사라져버림 더구나 당시 조선에 가장 급하게 필요한것은 화약의 주원료인 염초였으므로 鄭斗源이 가져온 서양 문물은 조선의 위정자들이나 대신들의 관심을 끌기가 현실적으로 쉽지않았으며 - dc App
후기 때 염초밭 만든 것도 효과가 영 별로였단 거 보면... 쩝 - dc App
염초만 좀더났어도 한국사는 엄청나게 다이나믹한 변화가 있었을거같음 - dc App
ㄹㅇ... 그럴 수 없었단게 아쉬움 - dc App
저때 화약 많이 만드는 나라들 보면 염초밭 굴리면서도 동시에 자연 염초 구하기 쉬운 나라들이긴 함(인도, 중국, 베트남 등등)
숙종시기 이전이면 들여도 쏠 화약이 없기는하지
이런글은 뭐다? 개추다 - dc App
홍경래의 난에서 보듯이 외부침공 없으면 기존 화포 수준만으로도 충분했던지라...
하지만 저 당시는 병자호란 직전이고 외부침공에 대한 충분한 경각심+서구문명의 본격적인 도래로 충분히 거대한 톱니바퀴 굴릴 수 있던 시기였는데 일이 꼬여서 아쉬울따름 - dc App
명이 보낸 사신들도 홍이포언급을 디게많이해줬음 북방에서 재미좀 보고있었으니깐 - dc App
조선자체가 화약구할려고 일본까지 손벌리는 판이라 답이없는 문제임...
당시에 조선이 조총 찍어내는 양보면 홍이포 자체 개발은 무리는 아니였을거같음 - dc App
내가 당시 조선의 연간 화약 생산량을 얼마까지 증대할 수있었고 이런건 따로 계산해봐야겠지만 아예 후달렸으면 견적도 안내려했을듯한데 - dc App
근데 신형화포를 개발했다해도 전황을 뒤집을 만한물건은 아닌거 같음. 병자호란의 제일큰 문제 너무빨리 포위당한것+명나라 꼬라지 이꼴라보는 병기로 해결해 볼만한게 아님
뭐 호란의 승패는 치워놓고서라도 당장 이 글의 의도는 조선이 신식화기에 가진 관심도에 중점을 뒀으니 - dc App
당시 세계의 모든 인류의 지혜가 조준하고 있던 산해관도 뚫리고 명도 뒤지고 짓밟혔는데 어케 이겼겠나 - dc App
화약이 많았더라면 볼맛났을텐데....
기술개발 프로젝트이고 돈은 존나 깨지는데 저쪽 담당자 증발? 서류철 얼굴에 날아오지 ㅋㅋㅋ
근본적인 사상의 변화가 없고서야 그때그때 맞춘 일시적인 개량만 있을뿐이지
다만 사상의 변화는 외부환경의 탓이크다는거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 dc App
더구나 너가말하는 화이론에 입각한 사상적 문제로 동양의 병기나 과학 기술격차가 뒤쳐졌다는 주장은 화이론에 정면으로 맞선 청제국때 오히려 도드라졌다는 점에서 90년대에 진즉 붕괴됨 너랑 딱 똑같은 소리하는 사학계의 대부가 있었는데 그 양반이 스스로 지 주장이틀렸다고 굽히고 인정하고 갔는데 아직 인터넷 계에선 그게 정설처럼 받아들여지더라 - dc App
16세기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전세계적인 서세동점은 필연이었네. 테크차이 엄청 나는 집단을 구분해왔던 칸막이를 빼버린거나 마찬가지니
조선은 화포 개발의 의지를 다지지 않았는가?
조선의 의지박약의 문제인가? X 추진하려는 시도와 의지는 있었으나 당시 조선의 홍이포 사업 자체가 뒤집혀 실패했음 O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