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중국과 미국 간 관계를 당시 독일과 영국으로 비유하여 패권전이와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논하는 국제정치 분석가들이 적지 않다. 아베 총리의 경우는 중·일관계를 과거 영·독관계와 비교한 것인데 어쨌든 중요한 점은 경제적 상호의존관계가 심화되더라도 안보갈등과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그의 전망이다. 국제정치학에서 자유주의자들은 국가간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되면 전쟁에 따른 교역의 중단이 초래하는 비용이 크기 때문에 양국 내 평화세력이 힘을 얻을 것이라 보았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안보영역으로 긍정적 전이효과(spillover effect)를 가져다줄 것이란 논리이다.


그러나 100년 전 현실은 달랐다. 독일은 영국이 경제비용을 우려하여 유화적으로 나올 것을 예상하고 전격적인 군사행동으로 이득을 취한 후 협상에 나선다는 희망적 판단을 내렸으나 막상 영국 내에서 전이효과는 없었다. 독일과 자유무역을 견지하는 영국의 상업적 이익은 강력했지만 전쟁을 불사하는 안보정책을 넘지는 못하였다.


-손열 연세대 국제대학원장-

https://www.khan.co.kr/opinion/jeongdong-column/article/201406262029005



미국인들의 여론도 점차 기꺼이 잡혀 들어가는 쪽으로 흘렀다. 미국인들은 전적으로 연합국 편이었다. 1939년 10월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84%가 영국과 프랑스가 전쟁에서 이기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을 응원하는 응답자는 2%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95%는 미국이 전쟁에 직접 뛰어드는 것은 원치 않았다.


*1940년 9월 선발 훈련 및 복무법이 통과하기 3개월 전인 6월, '미국의 20세 이상 남성은 누구나 1년 이상 군대에 복무하도록 해야 하냐?'는 질문에 50% 찬성, 50% 반대였으나 20대 남성은 41% 찬성, 59% 반대였다.


*1941년 3월 랜드리스법이 막 통과한 시점에서 "미국이 독일, 이탈리아와 전쟁에 참전해야 한다면?" 질문에 17%만 찬성하고 83%는 반대했다.


출처: 아무도 말하지 않은 미국 현대사 1, 올리버 스톤 외 1명 저, 이광일 옮김, 들녘, 2015년, 183~184쪽



다만 시간 갈 수록 점점 미국인들의 참전여론이 높아지긴 했음. 대략 진주만 직전인 41년 가을로 가면 68%가 독일과 전쟁 불사해야한다는 여론도 나옴.

하지만 미국인들의 전쟁 의지가 약하던 때도 루스벨트는 징병법 통과시키고(20대 남성 반대율 상관없이) 랜드리스 통과시키고 빌드업은 다한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