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x년 6월 20일

김일성이 갑자기 사망했다. 장송곡이 나오더니 핑크레이디가 검은색 상복을 입고 추도사를 읽기 시작했고 그 즉시 내 삐삐가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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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자리 번호가 찍혔다. 최우선 소집 명령이다

나는 보안사 소령으로 직접 대북 업무를 맡아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공 쪽에는 연관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틈을 타서 안보를 이유로 다시 쿠데타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궐기 세력을 감시하는 일도 맡고 있다

'벚나무회'는 불과 몇년 전까지 이 나라를 떡주무르듯 쥐고 흔들던 군내 사조직인데 민주화의 주역이자 첫 문민지도자인 현임 대통령에게 해체를 명받은 상태였다. 다만 원래가 명부없이 지연 학연으로 얽혀있는 조직이다보니 완전히 청소가 됐는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는게 세간의 평가다.

-일본 측 움직임이 심상찮습니다

근무처에 복귀하자마자 나온 말. 뭐라고? 라고 묻자 해상보안청의 대형 순시선 3척이 독도에 접근중이라는 보고가 돌아온다

그러나 한가지 희한한 점은 순시선에 승선해있는 승조원들의 유니폼이 자위대같더라는 우리측 전경 관측관의 보고였다.

이 보고는 진작 대통령에게 올라갔을 것이다. 그렇기에 경찰 소관임에도 우리 보안사가 파악한 것이다. 현 대통령은 반일 성향이 매우 강하고 성질이 불같기로 유명하다. 당장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나설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일은 더 드라마틱하게 진전되었다

순시선이 독도 접안시설에 접근하려하자 전경이 프로토콜대로 경고사격을 했고 3척이 곧바로 기다렸다는듯 포격으로 응사한 것이다. 독도에 설비된 화기로는 해상에서 쏟아지는 융단포격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독도는 허무하게 점령당했다.

각처에 파견나온 기자들에게는 엠바고가 걸렸다. 나는 모 중령과 소장이 기자와 접촉하는 것을 파악하고 이를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통령은 지금 상황에 전방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평시에야 얼마든지 강경발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 급변사태나 군내 이변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주한미군 사령관은 전화를 받지 않고 있었다. 몸이 달은 대통령이 직접 건 전화도 불통이었다. 합참의장이 미 태평양사령부 쪽으로 직접 연락을 취했다.

-Strategic Response 라는 답이 돌아왔다. 급박한 사정으로 정밀한 대북 관측과 해상 작전이 필요해져 해상보안청이 다케시마의 소요사태를 진압하고 자위대가 곧바로 진입해 임시 관측소가 세워졌다는 것이었다

일본은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헌법 9조는 의미가 없었다

합참의장은 따져물었다. 한미동맹은 무엇이며 한미연합사는 무엇인가. 아무리 주일미군에 미 해군력이 집중됐다지만 이게 가능한가. 뭐가 그리 급박해 이런 짓거리를 용인하나

돌아온 답은 기밀사항이란 짤막한 것이었다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보안사 안기부 경찰정보과가 합심해서 막았지만 이런 민감한 소재를 감추기엔 엿부족이었고 곧바로 호외가 나가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북한 급변사태 속보를 접하다가 일제히 일본의 독도 점령이라는 충격적인 현실을 받아들여야했다. 거리에는 자발적으로 시위인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통령과 보좌진은 이제 국민여론이라는 무거운 부담을 안게 되었다. 현실에 밀리는 순간 허풍선이에 친일으로 낙인찍혀 정치생명은 끝이 나는 것이다

일본 해군력과 비교도 안되는 한국의 해군, 이북의 상황, 우리편이 아닌 미군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독도 문제에 대응하라

극비 작계가 꺼내졌다. 동해안 해군력을 총동원해 독도를 봉쇄하고 해병대를 투입, 쓰시마를 무력 장악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작전 명령을 하달했다.

바로 그 명령이 체인 오브 커맨드를 통해 내려가는 시점에 나는 일찍 이를 파악해 동지들에게 전달했다.

내가 근무중인 xx산 정상은 고립무원인 지역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서울 광화문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었다. 그것은 실로 내 선배들이 이 나라를 차지했을때의 재림이었다.

-우리 궐기군은 작금의 위급한 시기에 소위 민주화 세력의 상황 대처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 행동을 결의하였습니다. 국가의 운명이 백척간두에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훗날 사가들의 몫이겠으나 당장 선조들이 지켜온 이 나라가 북괴와 일본에게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라디오에서 떨리는 목소리의 아나운서가 연설문을 읽어나갔다.

- 궐기군이 하고자 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현 집권세력이 흩뜨려놓은 안보태세와 한미동맹을 지금이라도 다잡겠습니다. 눈뜨고 일본에게 독도를 빼앗기는 나약하고 무능한 지금의 집권세력은 조속히 하야시키고 국가 안보를 위한 비상체제를 수립하겠습니다. 둘째, 대북 경계를 확고히 하여 북괴의 오판을 막겠습니다. 셋째, 이 모든 역할이 끝나면 궐기군은 국가를 보위하는 군의 본연 모습으로 되돌아가겠습니다

국민들은 기세에 압도됐다. 김일성의 죽음과 독도 침탈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지는 못했지만 어찌됐건 나라가 망하겠다는 위기의식과 혼란감이 그들을 군부 독재로 되돌아가게 했다. 소수의 저항이 있었고 집권여당 의원들의 반발이 있었으나 모두 진압되었다. 미국은 이례적으로 단 하나의 논평도 내지 않았다.

나는 공을 인정받아 청와대 행정관으로 발탁되어 들어갔다. 청와대의 수장은 이제 대통령이 아니라 국가안보회의 의장이었다.

얼마 안가 북한에는 중국식 집단 지도체제가 들어섰다. 조총련 출신 인사들이 대거 상무위원으로 올랐으며 이 가운데는 국정원이 수집한 북한 요인 DB에 없는 이도 있었다. 초대 주석으로는 주체사상을 구상했다는 이가 올랐다. 그간 김씨 일가의 신화에 세뇌된 북한 주민들에게 큰 혼란을 주지 않으면서 서서히 교화시키려는 의도로 읽혔다.


북한 대중들을 포함한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사실이지만 미국은 북한의 신정권과 원산과 흥남항의 영구조차를 합의했다. 주일미군에 배속됐던 항모 중 한 척이 조만간 입항할 예정이다.


국내 상황도 철저한 통제속에 안정되면서 대부분이 것들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딱 하나, 독도 문제가 하나 남았지만 국가안보회의는 영유권 주장만 할뿐 실제로 수복하려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이게 나로서는 이상할 따름이다.

김일성의 죽음이 곧 있을 것이며 일본 측 순시선이 상황파악을 위해 독도에 접근할 것인데 다혈질에 혐일기질인 대통령이 잘못 대응해 일본과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이 비밀 첩보의 내용이었다. 이게 우리 벚나무회의 거사가 계획되는 근거가 된 '문건 X' 였다.

그러나 일본은 독도를 아예 공격해 점령해버렸다. 이게 유일한 미싱링크였고 나의 의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얼마 후 그 답을 찾게 된다.

200x년 3월, 나는 퇴임하는 현 국가안보회의 의장을 따라 청와대를 나오게 되었다. 신임 의장은 세대 교체를 원했다. 벚나무회는 군 최대의 사조직이며 젊은 엘리트 생도들로 우글거렸고 나는 그들에 비하면 구시대의 끄트머리일 뿐이니까

그런데 오랜 캐비닛들의 정리를 하던 도중 나는 이런 제목의 문건을 발견하게 된다.

'Note Y'

그것은 내가 본 문건X의 원형인 듯 했다. 아니... 그 실체였다. 문건을 읽는 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요약하면 일본은 조총련을 지원했다. 이는 미국의 뜻에 따른 것이었는데 모종의 공작을 위해 북한 내부로의 라인을 뚫어놓기 위해서였다.

매년 조총련을 통해 북한으로 막대한 자금이 넘어갔다. 그들은 김일성의 충직한 자금원이자 서방세계로의 유일한 공작수단이 되었다. 수십년에 걸쳐 이들은 북한 내부에서 확고한 위치를 잡았다.

그리고 미국은 90년대 중반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북한의 심장부에 침입해있던 조총련계 인사들이 김일성을 죽였다. 미국에서 이때를 위해 준비된 이들이 조총련 명찰을 달고 투입되어 요직을 차지했다. 그리고 일본은 오랜 협조의 대가로 독도를 챙겼다.

벚나무회의 2차 궐기는 단순히 그것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국가의 안전을 수호하고 민주제의 헛점을 보완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일본의 떡고물로 전락한 독도침탈을 무마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그리고 나같은 궐기군의 졸들은 그 도구 속의 작은 톱니바퀴에 불과한 것이었다.


문건을 다 읽은 나는 순간 벚나무가 일본어로 사쿠라라는 것을 떠올렸다. 사쿠라카이...


이 계획이 얼마나 구체적으로 기획됐는지 생각하자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