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전열함의 시대, 프랑스 해군의 중흥은 명재상 리슐리외 추기경으로부터 비롯되었다.

1628년 개신교도들의 반란 당시 머추장국 함대가 프랑스 해안의 반란군을

제집 앞마당마냥 드나들며 지원하는 것을 손가락 빨면서 구경밖에 할 수 없었던 경험을 한 리슐리외는

프랑스 해군의 증강에 착수했다.

30년 전쟁에서 국왕을 돕기 위해 교역을 확대한 리슐리외는

프랑스 상선들을 보호하기 위해 우방이었던 네덜란드 공화국으로부터 크고 작은 군함들을 도입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전열함은 1626년 암스테르담에서 이름난 조선공 흐로트 형제가 설계, 건조한

아름다우면서도 혁신적인 성능을 갖춘 전열함, 생 루이 호였다.

흐로트 형제는 생 루이 호에 60문의 대포를 탑재할 수 있는 널찍한 포열 갑판을 갖추었으며

갑판 바닥에 격자창을 설치하여 전투 중에는 위에서 떨어지는 파편들로부터 수병들을 보호하고,

평시에는 갑판 아래로도 채광과 통풍을 가능하게 하였다.







프랑스의 조선공들이 흐로트 형제의 디자인을 적극 모방하면서

1660년대에 프랑스 해군은 대단히 실용적인 '3급'(함포 약 60~70문)전열함을 수십 척이 넘게 보유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전열함의 튼튼한 선체에, 네덜란드의 항구는 수용할 수 없는 높은 흘수선을 결합시킨 프랑스의 새 전열함들은

파도가 심하게 몰아치는 악조건에서도 좌우로의 요동이 심하지 않아서 더 정확한 포격이 가능했다.

또한 속도도 빨라서, 더 묵직한 영국산 참나무로 만든 영국 해군 전열함들에 맞서

'게르 드 쿠르스(guerre de course)', 즉 추격전을 벌여 애를 먹이게 만들 수 있었다.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삶이었던 근대 전열함 수병들의 삶은 악명높지만

이것은 근대 전열함 수병들의 삶이 머추장국 기준이다 보니 그렇지

만약 17~19세기 바다의 지배자가 프랑스 해군이었다면

전열함 수병들의 삶은 "당연히 고되지만, 다 사람 살던 배고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정도로 알려젔을 것이다.

영국 수병들이 개돼지 취급받아 돛과 닻과 대포를 다루느라 녹초가 된 몸을 눕힐 공간도 제대로 받지 못한 반면

프랑스 해군의 전열함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수병들의 건강을 고려해 충분한 채광과 환기를 보장했고

영국 수병들이 소 미라 같은 염장쇠고기와 벌레가 득실대는 벽돌 같은 비스킷으로 연명할 때

프랑스 해군 전열함의 주방에서는 잘 구워낸 돼지고기와 벽돌 오븐에서 제대로 만든 빵을 수병들에게 대접했다.

심지어 장기 항해 중에 프랑스 수병들은 흙을 담은 상자에 각종 샐러드용 채소를 심어 '텃밭'을 가꾸었는데

이는 장교들에게 비타민 부족으로 판단력이 떨어지는 일을 감소시켜주고

수병들에게도 최소한 영국 수병들처럼 괴혈병으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일만은 면하게 해 주었다.





모든 면에서 딱 한가지만 빼고 프랑스 해군은 영국 해군보다 다 나았는데, 문제는 그 한가지가 해전을 못한다는 것이었다.

해군인데 해전만 빼고 다 잘했던 프랑스 해군은, 해전까지 잘했으면 세계 해군사에 모범으로 길이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출처 - "근대 전쟁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