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딸 무렵의 만주는 몽골을 복속시킨 상태고, 근세 유라시아는 그야말로 화기와 결합한 기병들의 시대라 몽골에서 기병수급이 안 되는 명군은 기병 없이 청군에게 저항할 수 없었음
오스만 튀르크의 팽창도 이란에서 나디르 샤의 전공도 다 비슷한 팽창 사례
중국을 딸 무렵의 만주는 몽골을 복속시킨 상태고, 근세 유라시아는 그야말로 화기와 결합한 기병들의 시대라 몽골에서 기병수급이 안 되는 명군은 기병 없이 청군에게 저항할 수 없었음
오스만 튀르크의 팽창도 이란에서 나디르 샤의 전공도 다 비슷한 팽창 사례
원래 유목이 디바이드엔룰하기 좋은곳이라 찌그러저살던건 맞는데 잠재역량이 커서 통합하니까 줘팼잖아 결과론적인 이야기긴 하지만 둘이 낸 성과가 너무 다르니까
그 성과도 왜란으로 씹창 안냈으면 못할 일이지
당장 그 명군 기병도 벽제관같이 기동력 제한되는 곳을 전장으로 택하고 몰아넣는것만 봐도 당시 왜군의 기민함은 무시할 수준이 아님
원하는 외교정책을 강요하고 상당한 자원을 얻어냈지 아에 먹은건 아니지만 7년간 일본이 한반도에서 온몸비틀기해도 못 얻어낸걸 간단히 얻어냈잖아
걔들은 왜란으로 조선 씹창 안났으면 그런거 시도조차 못했음
백사(백사)가 본국 사람으로 유 제독(류제독)의 수하에 예속된 자의 말을 기록하기를, “제독을 따라서 사방을 정벌(정벌)해서 경력한 바가 많은데, 그의 본 바로는 달자(몽골)는 상대하기 쉽고 해귀(동남아)는 약간 강하고 왜자(일본)가 가장 강하다. -성호사설-
벽재관 전투만봐도 이여송의 군재는 뛰어난건 아닌거같음 벽재관은 일본이 잘한게아니라 명이 박은게 맞지않냐 그이후 행주에서의 추태만 봐도
? 원래 이성량 가문이 북방 유목민 때려잡으면서 요동군벌로 유명한 놈들이었는데 걔네도 그냥 벽제관서 개발리고 기꺾인거고
이성량이 요동에서 잘나가던건 여진이 다 나뉘어진 상태애서 지배했으니까 그런거고 개내수준에서 하나가된 여진을 뭐 어캐막음 여진을 개내가 쪼갠것도아니고
그니까 그 왜란으로 조선은 초토화되고 명도 전력 빼가고 피보느라 견제를 전혀 못해 여진 성장이 이루어진거지 그거 아니었으면 택도 없었고
원래 여진 부족별로 쪼개놔서 서로 싸움붙이고 견제놓는게 명,조선의 방책이었는데 이게 임진란으로 날아간거고
그니까 성장끝나서 명 몽골 조선 다이긴 청의 부대를 일본이 이기는건 힘들단거지
그것도 장담하기 어렵지 말그대로 걔들이 당한것도 임란으로 약체화 되서가 큰데다 100년 넘는 실전경험으로 정예화된 수준이면 명,조선이랑 똑같이 갈려나갈거라 보기도 힘듬
그 100년간 실전경험이 조선선에서 컷났는데 명이 아무리 반란에 시달려도 일본보단 훨씬 강했고
그 조선이 그거 막느라 나라 박살나서 그런거지 왜란 없었으면 청도 조선 마음대로 못땀
오랑캐(후금) 군사는 돌격전을 벌여 마구 덤비는(馳突亂戰) 데만 능할 뿐이고 예리한 검을 활용하는(銳利劍之妙用) 데는 도저히 왜놈만 못하다. 『속잡록』
저렇게 잘못봤으니까 결국 청한테 먹힌것도 있겟지?
실제로 당대 싸워본 사람들 증언이 그런데 니가 뇌피셜 펼쳐봐야
애초에 임란 아니었으면 후금은 날뛰지도 못했지 최고 곡창인 삼남이 최전선으로 박살나고 조선의 사회 자체가 크게 뒤틀렸을 정도였고 그럼에도 청군 몇번 격파해봤는데
뇌피셜이아니라 결국 청이 최종승자인걸 알잖아 일본군이 영국군이 더쌤 미군은 정신력이 어쩌구 하면 그냥 잘못봤구나라고생각하지 않냐 싸워본의견이지만 물론 임진없었음 생기지도 않았던건 맞지 하지만 사르후 전투같은거보면 일본군하고 야전에서 지는게 가능한가 싶던데 유정이 거기서 죽었지
유정은 왜교성에서도 이미 일본에 패함
누가 누구를 이겼으니 더 강함 논리면 몽골 격퇴한 베트남>남송,고려,호라즘인데 그런식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
이때 동로(東路)의 중국 군사는 2만 4천 명이고 우리 군사는 5천 5백 14명이며, 중로(中路)의 중국 군사는 2만 6천 8백 명이고 우리 군사는 2천 2백 15명이며, 서로(西路)의 중국 군사는 2만 1천 9백명이고 우리 군사는 5천 9백 28명이며, 수로(水路)의 중국 군사는 1만 9천 4백명이고 우리 군사는 7천 3백 28명이었으니, 모두 합하면 10여만 명이었다. 군량과 무기도 이에 비등했는데, 삼로(三路)의 군대가 흔적도 없이 무너지니, 인심이 흉흉하여 보따리를 싸 가지고 있었다. 선조실록 105권, 선조 31년 10월 12일 甲子 7번째기사 1598년 명 만력(萬曆) 26년 삼로의 군사가 패전하다
사로병진책에서 시마즈가 한게 대단한 전공인건 사실이지만 저 사라졌단게 사르후처럼 진짜 5만명씩죽고 다 포로로 잡힌게 아니잖아
둘이 붙으면 청이 무조건적으로 쳐바른다는 인식도 좀 걸러야함.애초에 후금놈들 클수 있던것도 임란 아니면 절대 불가능에 막상 기병으로 일본군 상대로 재미본게 없음
그당시 싸워본 사람들도 왜놈들이 전혀 꿇리지 않는다고 여럿 말했고
임진없었음 동네 이장님인거 ㅇㅈ이고 전투엔 행운도있고 무조건 처바르지야 않겠지만 상대전력과 기병이라는 이점에 당대 최고 명장들에 항복도 잘받아주고 외교도 잘하는 청나라가 이길거라고 보는게 맞지 않나 싶어
이에 왜군(倭軍)은 성책(城柵)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아니하였다. 도산(島山)은 울산(蔚山) 높이만 하고 석성(石城)이 대단히 견고하여 위로 공격하던 우리 군사의 손상이 많았다. 굶주림이 심해진 왜군(倭軍)이 거짓으로나마 항복을 해오는 체하자 공격을 늦추어 주었더니, 얼마 안되어 [소서(小西)]행장(行長)의 많은 구원병이 들이닥쳐 군대의 후방을 에워싸려고 하였다. 그러자 호(鎬)가 명령을 하달하지 않았는데도 말을 몰아 서쪽으로 달아나니 여러 군진(軍陣)은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마침내 군대를 거두어 왕경(王京)으로 돌아오니 죽은 사졸(士卒)이 2만이나 되었다. 황제가 이 보고를 받고 몹시 노하여 호(鎬)를 파직시켜 심문케 하고 천진순무(天津巡撫 만세덕(萬世德)으로 교체시켰다. 상세한 사실은 [양(楊)]호
명장이야 일본도 상당히 많았고(당장 시마즈만 해도 누르하치보다 훨씬 오랜기간 전투 경험)그치들이 그렇게 날뛸수 있던것도 명과 조선이 왜란으로 엄청난 피를 흘려서이니
시마즈가 전술적인건 몰라도 전략적으로 명장인진 모르겠어 홍타이지는 대전략부터 좋았고 난 일본이 항복한 조선장수나 명장수를 잘써먹는걸 듣지도 못하고 상상도 잘 못하겠음 뭐 너말처럼 의외로 전장에선 서로 비슷할수도 있겟다
홍타이지도 임란으로 무너진 명,조선이니까 그런 쉬운 날먹이 가능했던거지 대전략도 걔땐 아직 입관도 못한게 한계였고
입관전에 몽골정리하고 대칸해서 만몽연합만들어낸건 좋은 전략같은데 홍승주 끌어들인것도 그렇고 일본 장수중에 저만한 전술 전략 둘다대는 장수가 있던가
그렇게 따지면 청도 조선에선 항복장수 받은적 없는데.명은 나라가 자체적으로 무너져가고 숭정제 의심병+모문룡 처형건 등으로 투항자가 나온거고
왜(倭)가 조선(朝鮮)을 어지럽힌 지 7년 동안 잃은 군사가 수십만이나 되고, 소모한 군량이 수백만이나 되었는데도 중국(中國)과 조선(朝鮮)이 이길 가망이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었는데, 관백(關白)[註786]이 죽고서야 화란(禍亂)이 비로소 종식되었다.[註787] 명사 조선열전
강홍립 명사를 청이쓴대다 당시 표현이 저런거지 우리도 실록보면 반은 순왜들이래요 같은거 나오지만 그냥 표현인거지 진짜 8만의 순왜가 있었구나 그러진 않잖아
당대 중국,조선 기록에도 재미 못보고 왜놈들이 제일쎄다 기록이 넘쳐나는데 500년후 방구석에서 이걸 다 부정하는것도 웃기네
당대사람들은 답지가 없잖아 그 잴쌔다는 왜가 남긴 아웃풋도 없고 쓴사람들이보기에 칼질하고 잘싸우는것만 기준으로 넣고 빠른 기동력같은건 고려를 안했을수도 있고 당시 오피셜이 다 맞으면 이기이원론같은거 다 믿어야 대잖아
왜란 아니었으면 그 잘난 청군도 절대 못뚫었지
오랑캐(후금) 군사는 돌격전을 벌여 마구 덤비는(馳突亂戰) 데만 능할 뿐이고 예리한 검을 활용하는(銳利劍之妙用) 데는 도저히 왜놈만 못하다. 『속잡록』백사(백사)가 본국 사람으로 유 제독(류제독)의 수하에 예속된 자의 말을 기록하기를, “제독을 따라서 사방을 정벌(정벌)해서 경력한 바가 많은데, 그의 본 바로는 달자(몽골)는 상대하기 쉽고 해귀(동남아)는 약간 강하고 왜자(일본)가 가장 강하다. -성호사설-
‘지난달 27일 정오에 관군(官軍)이 귀국 초병(哨兵)의 거짓 보고에 넘어가 「왜적은 이미 물러가고 경기는 텅 비었다. 」고 하며 전진하다가 미리 매복하고 있던 왜적에게 중간이 끊겨 포위되었다. 참수(斬首)한 왜적은 겨우 1백 20여 명인데 중국군의 사상자는 1천 5백여 명이나 되었다. 제독은 지금 임진강 가에 머물고 있는데 눈이 저처럼 오는데도 기어이 개성으로 후퇴하여 진치겠다고 하였다. 선조실록 35권, 선조 26년 2월 5일 庚寅 1번째기사 1593년 명 만력(萬曆) 1593년 명 만력(萬曆) 21년
애초에 후금 자체가 임진왜란으로 명,조선이 약체화되어 튀어나온 놈들인데다 왜놈들 자체도 실전경험이 엄청나서.그나마 멀쩡하던 명,조선도 기병으로 딱히 재미를 못봤던거 보면 무작정 청군이 압승한다고만 보기 어려움
매복에 교환비로치면 청은 진짜 극단적인 교환비도 자주나옴 성호사설 수하썰은 유목민기병대보다 정주민검병이 썌다고하는데 믿기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하고
제독(이여송)이 인솔하던 군사는 모두 북방의 기마병으로 화기가 없고 무딘 단검(短劍)만 가지고 있었다. 적의 보병들은 모두 3, 4척이나 되는 긴 칼을 가졌는데 날카롭기가 비길 데 없었다. 그들과 충돌하여 싸울 적에 좌우로 후려치니 사람과 말이 모두 쓰러져 그들의 예봉을 감당할 자가 없었다.
애초에 청도 임진왜란으로 조선 씹창 안났으면 그런 빈집털이도 불가능이고
500년후 방구석 군갤러 피셜>>>>당대 싸워본 사람 피셜
그리고 애초에 100년 넘게 싸움질만 하던 놈들이니 더 높게 평가 받는거지 한국도 삼국시대에는 전투력 높게 평가받고 유목민들 전부 고구려가 줘팬거랑 마찬가지
뭐 임진왜란으로 씹창나서 털어먹었다는 맞음 ㅇㅇ 위에 맞다이떠서 진다는게 트루여도 기동력이 차이나서 이길때만 싸워도 대는게 기병이니까 그런유리함같은걸 싹뺴두고 오 현장에서 일본군이 더 잘싸운다고하니까 그것만 고려했거나 인상에 남는다던가 착각할 요소가 있지 않을까 하는거지
고구려가 유목민을 다패진 않았지 돌궐도있고 선비도 모용선비만 조진거잖아
기병이라고 무적의 병종이 아님 거란도 흥화진-귀주에서 고려에 크게 박살났고 당장 일본도 명 ,조선 기병대를 막상 대파한 사례가 더 많음
돌궐도 신성 인근에서 고구려한테 야전 쳐발렸음
방구석 군갤러는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알잖아 당시 사람들 생각보단 결과가 중요한거고 둘이 붙어본적이 없으니 뇌피셜이 댈수밖에 없지만 일반론으로 기병이 더 강하다는 화기가 극단적으로 발전하기 전까지는 거의 항상 맞았잖아 기병이 진게 놀라운 일인 이유가 있지
역사적으로도 기병은 생각보다 많이 깨짐.당나라도 돌궐,설연타 갈아버렸고 고려도 거란에 대승 더군다나 이때면 화약무기도 꽤 퍼져가던 시기고 방구석 군갤러가 당대 수두룩하게 나온 기록을 씹는게 더 웃긴 일이지
당대 기록들과 후금 자체가 명,조선이 임란으로 출혈이 커서 일어날수 있다는 점.일본은 100년 이상 칼질하며 전략전술이 크게 발전해온걸 생각하면 너처럼 무지성 반일감정으로 압승한다 보기는 힘들다
고구려는 기병이 강한나라였고 일본기병대는 무력하잖아 싸움을 이겨도 추격은 가능할라나
결과로만 보는거면 베트남>고려,송,호라즘이고
그래서 실제로도 왜군을 기병으로 압살은 커녕 역으로 깨진 전투만 수두룩하잖아
당이 기미지배로 유목민기병대를 얼마나 끌어들였는데 무지성반일이아니라 기동병력이 없는깡보병은 한계가 크지 당은 보기를 다갖춘거고 일본은 기병이 없잖아
베트남이 송보다 덜싸우고 화친했는데 왜 송이 밀리는지 모르겠어 전근대역사에서 쩐흥다오같은 명장의 중요성이 너무 크기도 하고
애초에 기병이 무적이라는것부터가 환상.당장 그 임란부터가 왜군을 기병으로 밀어버린 사례가 없고 로마도 파르티아 수도를 3번이나 털었고 고려도 거란 박살냈고 당나라 이정도 보병진으로 돌궐기병 관광보낸데다 결정적으로 만주족은 수가 워낙 적어 한번만 발려도 그대로 무너져내림
니 논리인 a를 이겼으니 b를 이긴다는 초딩 논리대로면 똑같은 수준임 심지어 고려는 멸망은 안했으니 역시 고려>송도 성립함
명장은 일본도 넘쳐났고
이정이 기병대를 격파한건 드문일이고 로마랑 파르티아랑 보병전했으면 체급차이가 극단적이라 진짜 개발림 그체급에 로마랑 가끔 싸움은 가능한게 기병덕임 만주의 수가 적은건 ㅇㅈ인데 몽골까지먹고 몽골팔기에 한인팔기도 있는데 체급이 아주 작진 않지
송이 베트남보다 몽골군을 더 곤경에빠지게하고 엿먹였단거 최후는 외교의 차이인거고
그거 다 끌어봐야 총 병력 보급병까지 합쳐도 4만뿐임.당장 보병으로도 기병 바른 사례 많은데 니가 침소봉대 할뿐이고 결정적으로 그 명 북방기병대도 일본군에 갈려나갔음
외교야 둘다 똑같았고 베트남도 조지려고 했는데 그냥 실패한것 뿐임.니논리대로면 9차까지 가고도 안망한 고려가 최강급이다
고려보다 송이 더 오래 버티고 몽골 전사자수도 훨씬 더 냄 그리고 병자에 동원한병력이 총병력인건 아니지
병자 정도면 몽고 부족들까지 싹끌어가고 후방 수비병력도 없는 수준으로 진짜 한타 노린거임
그러고보니 이새끼 당대 기록 다가져오고 여러번 사례 들어서 결과 알수 없다고 설명해줘도 아무튼 그럴것이라고 레퍼 하나 없이 빡빡우기는것도 웃기네 ㅋㅋㅋ
송? 전쟁기간만 합치면 고려보다 딱히 길지도 않음
그리고 입관전 청나라니까 조선굴복시키고 송산전투도 이기고 체급이 훨씬 불어나있지
송이 죽인 몽골군의 수가 훨씬 많잖아 원정온 군대도 훨씬 많고
막상 북경 입관도 4만 수준 군대가 한계였다 인구부터가 그냥 개노답이었음
그니까 a 이겼으니 b도 바른다식 니 초딩 논리대로면 베트남>고려>송이지
죽인수는 기록도 없는데 체급 대비로 치면 고려가 딱히 전과 못낸것도 아님.쿠빌라이때도 추밀원에서 고려 정복은 힘들다고 안건 올라오기까지 함
그리고 못봤나 싶은데 전쟁이란게 당연이 행운도있고 청이 무조건 이긴단게 아니잖아 청이 유리하단거지 주장을 바꾸진 말자 너처럼 사료를 찾아가지고 오진 않긴했는데 강홍립이 없는사람이고 그러진 않자나
니는 걍 처음부터 레퍼 깡그리 무시하고 청이 다 압살한다 ㅇㅈㄹ하고 있으니까
체급대비 고려가 잘싸운건 ㅇㅈ 남송이 더 강했단거지 고려가 못싸웟단게 아님
시마즈가 전술적인건 몰라도 전략적으로 명장인진 모르겠어 홍타이지는 대전략부터 좋았고 난 일본이 항복한 조선장수나 명장수를 잘써먹는걸 듣지도 못하고 상상도 잘 못하겠음 뭐 너말처럼 의외로 전장에선 서로 비슷할수도 있겟다 라고 위에다 썻고 압살한다고 안했잖니
?니가 첫댓부터 무조건 바른다고 써놨으면서 치매인가
보통 디시에 댓글달떄 처음부터 이리이리 저리해서 청나라가 유리하지 않을까 싶음 하고 다냐 아님 걍 청나라가 개털탠대 이런식으로다냐 내가 후자여서 좀 어그로가 끌렸다면 미안하다
닌 빼박 후자고
근데 한족 영역 다 차지한 통일 중국이 유목제국한테 따이는 건 영가의 난도 그렇고 만력-천계-숭정 병신 3연벙인 것도 그렇고 좀 중국이 맛 갔을 때 주로 벌어지는 거 같음
맬서스 트랩 와서 기병 비율이 낮아지게 될 때 기병 강한 세력이 찌르고 오는 패턴의 반복인 듯
듄 작가가 건강한 유목민이 제국 따먹고 배때지 불러서 타락하면 다른 유목민이 배때지 따는게 역사의 흐름이랬어 - dc App
사실 이븐 할둔이 제안한 아사비야 개념 그대로 써먹은 거임 ㅋㅋ
그건 인류사는 배탄 자와 말탄 자의 전쟁이란 관점을 도외시하고 성쌓는 자나 아예 해자파는 자는 고려조차조 안했던 단견임. 거기에 아예 유럽이 있냐 아메리카가 있냐
근데 오스만은 반대로 화기로 흥한 놈들임. 찰디란 전투나 맘루크 정복때도 적 기병돌격을 화기+수레진으로 카운터침
화기보병이랑 결합한 기병 ㅇㅇ 여기에 밀집방진까지 결합한게 유럽이고
오스만이 보병 중심 운용으로 맘루크들 쳐발랐다는거
ㅇㅇ 전장의 두 축이 화기운용보병+여기 적응한 기병이라구. 어차피 기병비율 3~5할은 깔고 가는 거니까...
그거 자세히 보면 반대로 중동 맘루크들이 자기들 기병만 믿고 화기 도입에 소홀히 하다 쳐발리던 양상임
나도 기병이 전부라는게 아님 ㅇㅇ 화기운용보병이랑 결합해야 하고 청군도 막상 보면 보병이 비율 절반정도 되고
그리고 명나라도 기병 꽤 굴린걸로 아는데 임진왜란때 이여송 휘하 병력이 유목기병대였고
17세기에 몽골 복속 성공시키면서 명 기병대가 질적으로도 수적으로도 털 수 없게 되고, 기록에서도 드물게만 나오기 시작함
임진왜란하고 별로 차이나는 시대는 아닌데
명 기병대가 몽골로부터의 기수 공급에 의존도가 커서 그게 끊긴 이후에는 뭐 ㅇㅇ...
명 기병이 한족이 아닌 유목민 용병 중심된게 초기부터 그런건가 만력제 시절부터 그리된건가
초기 15세기에는 말 목장만 5백만단위로 굴렸는데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 외부 의존도가 높아지는지는 찾아봐야 알듯ㅇㅇ...
순간 위진갤들어온줄알았네 ㅋㅋ
누군진 몰라도 반갑다
조선 기병은 일본 조총에 발렷는데 좆선 총병은 팔기군에 찢겨버린 그냥 좆선이 노답이다
조선도 군대가 건전하다고 할 수 없는 상태라 ㅇㅇ
일본 조총도 여진기병대한태 찢겼어
ㄴ찢긴적 없음
만청 입관에는 숭정제의 개트롤도 1, 2할 정도 지분 있긴 하지 않나 싶은
큰 틀에서 보면 유라시아가 기병 전성시대였다는 거고, 세부적으론 당연히 님이 말한 거 같은 개인들의 트롤링이나 전투에서 패퇴나 많지
물론 한군팔기 편제하고 명군 야전축성 압도적으로 카운터치던 시절의 만청이면 동아시아 압도적 1황 맞지 ㅇㅇ 명군도 대기병방진 못 깔아서 수레 끌고 야전축성으로 견뎠는데 한군팔기가 화기 끌고 수레진 포격하니 더 답없이 발리던걸 보면
ㅇㅇ vs 전국시대 일본군 떡밥도 있던데 왜성을 뚫을 수 있을지 궁금하던 ㅋㅋㅋ
만청 자체 역량으로는 노답일 거 같긴 한데
입관은 명나라 잘못 9에 청나라 1 아니냐 애초에 명을 끝낸게 이자성인데
공성은 몰라도 야전뜨면 개털탠데
야전은 청이 이길 거 같음 나도 ㅇㅇ 기병대의 기동력이 전략/전술 단위에서 워낙 우월하니까. 다만 왜성들이 포격에 강한 구조고 냉병기로도 뚫기 쉽지 않아서 이 부분은 잘 모르겠음
일본성이 주민을 보호할수있는형태가 아니라 그냥 학살하면서 지나만 다녀도 여력잃고 무너질거같은데
이자성 같은 퇴역군인/관료 출신 도적들이 왜 나타났는지 생각해보면 숭정제 개지랄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게 될걸?
천계제 시절까지도 이중전선 유지하면서 돌아 가던 명 재정상황이 숭정 년간에 급격히 악화되면서 파탄났는데
숭정제의 개지랄은 만력제부터 위충현까지의 개지랄의 결과가 아닐까
일본애들이 전국시대 거치면서 목진지 잡는데는 이골이 나서 흠
청의 기동력이 전국시대수준을 초월하니까 모르겠네
성 다 무시하고 다니면 뒷치기로 나좀 죽여달라 광고하는 수준이지 애초에 명나라 유목민족으로 구성된 기병들도 고바야카와한테 갈려나간거 보면 장담 못함
위충현 시절까진 환관정치로 유지되던 명의 재정체계가 숭정제 이후로는 파탄남
이여송하고 누르하치 도르곤 홍타이지는 너무 격이 다르지않냐
그 이여송 시절에는 발발 기던게 누르하치임
ㅈ밥일떄니까 긴거지 둘이 군재를보면 상대가대나
그건 모르는거지 애초에 명 유목 기병대도 왜란때 딱히 재미본적이 없고 누르하치 자체가 임란으로 조선 씹창나고 명 견제 사라진 기회잡고 큰거니까
명기병대가 직산 이긴것도 있고 애초에 일본이 왜성존버한것도 야전에서 밀려서인데
직산도 제대로 제압 못해서 전투 직후 왜군오다고 천도 소리까지 나왔고 애초에 조선군한테도 몇번 깨진게 청군임
명 기병이 제대로 이긴 야전은 거의 없음
직산을 도르곤이 지휘했으면 포위섬멸했을걸 청군이 조선군에 깨진거보다 일본군이 조선군에 꺠진게 훨씬 크고 중요한전투들이니까 청군이 일본군보다 쌔지
그런 가정은 의미가 없지 당시 명군도 전투경험 꽤 되는 지휘관들 많았고 누르하치부터가 걍 이여송 가문 따까리였는데
애초에 일본 자체가 100년 내전으로 극단적으로 군사역량이 상승한 집단이라 똑같이 쓸어버린다 장담은 어려움.당장 여진 들고일어난 주요 원인도 임진왜란으로 조명의 견제가 사라져서고 조선군 상대로도 깨진게 청군이고
조명의 견재때문에 작은 부족으로 나뉘여저 있었으니까 가토가 여진족부족한테 컷당했고 100년동안 기병도없는땅에서 내전하던 일본은 명의 지원이 있었지만 조선수준에서 끝났고 청은 차하르족에 조선 다 먹었잖아 애초에 명을 반쯤 이긴집단이 일본한테 질리가
가토 여진썰은 정찰대 조우전 과장된거고 걔들이 그렇게 큰 원인부터가 조선이 왜란으로 개씹창나고 명도 전력 빼가느라 견제 못한 원인이 큰데? 무의미한 수준이면 조선,명 기병이 여러번 깨져나가지도 않았지
애초에 그 조선이 왜란으로 전국토가 다 박살났으니 여진이 견제가 사라져 커진거지
조선은 뭘먹어 전투에서도 몇번 깨졌고 병합한것도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