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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예나와 아우어슈테트에서 프로이센군을 격파하고 베를린을 점령했다. 그리고 오데르강을 넘어 대폴란드(Wielkopolska) 지방으로 진입했다. 소식을 접한 폴란드인들은 서쪽에서 오는 황제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코시치우슈코 봉기등으로 잔뼈가 굵었던 돔브로스키(Dąbrowski) 장군은 나폴레옹의 환심을 살 방법으로 각 도시별로 창기병(Ułani) 부대를 편성하여 황제 앞에 사열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나폴레옹이 제일 먼저 입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도시였던 포즈난(Poznan)에서는 급하게 청년 100명을 모집하여 명예 기병대를 창설했다. 이들은 대폴란드 각지의 귀족가문 자제들이었으며 하나같이 군복무 경험이 없었다. 포즈난의 귀족들은 이 햇병아리들을 이끌 지휘관을 찾아 해멘 끝에 과거 전속부관으로 복무했던 우민스키(Umiński)라는 28살의 키 작은 전직 군인을 데려왔다. 우민스키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하는지 설명을 듣고선 당황스러워했다. 그 역시 군 커리어가 끊긴지 1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우민스키는 명예 기병대들은 이끌고 포즈난 교외의 들판에서 며칠동안 열심히 제식훈련을 반복했다. 청년들은 열정적이었지만 어설펐으며, 군마들은 덜 길들여져서 제멋대로 굴려고 했다. 심지어 제자리에서 줄 맞추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우민스키는 부대의 꼬라지를 보고선 '이래가지고는 VVIP 앞에서 나라 이름에 먹칠을 하는것 아닐까'하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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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11월 26일, 인근 시골마을에서 온 농부가 '황제가 하루 거리에서 오고 있다'라는 소식을 전했다. 우민스키는 황제를 미리 맞이하기 위해 명예 기병대를 이끌고 포즈난에서 3시간 거리인 비틴(Bytyń)까지 진출하여 그곳에서 야영준비를 했다. 그는 황제가 분명 근방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도착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 때까지 부대원들 눈 좀 붙이고 밥도 좀 먹으며 기다리면 준비할 시간은 충분할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폴란드인들의 예상을 깨고 훨씬 이른 27일 새벽 1시에 그들 앞에 나타났다.



초록색 자켓을 입은 기마 샤쇠르병들과 함께 나타난 황제는 길 옆에 여기저기 퍼질러 자고 있던 폴란드 기병들을 보고선 '이 거지들은 뭐지?'라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선잠이 들었다가 급하게 뛰어나온 우민스키는 자신들이 황제를 경호하기 위해 포즈난에서 마중 나온 기병대라고 보고했다. 나폴레옹은 처음보는 특이한 모자(Rogatywka)를 쓴 기병들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우민스키에게 이곳 지리를 잘 아는지 물어본 후 '나를 호위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폴란드인들은 급하게 텐트를 해체하고 짐을 싼 뒤 황제 행렬 앞에서 선발대로 행군하게 됐다. 이들 바로 뒤를 기마 샤쇠르병들이 뒤따랐고 황제의 마차가 그 뒤를 따라왔다. 우민스키는 가장 빠른 기수를 전령을 뽑아 먼저 포즈난으로 보냈다. 포즈난 시장을 비롯한 지역유지들은 새벽 댓바람부터 황제를 맞을 준비해야 했다.



포즈난의 명예 기병대들의 황제의 근위기병들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모자란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포즈난에 머무는 3일 동안 별 불만없이 폴란드인들이 자신을 호위하도록 지시했다. 황제는 종종 우민스키를 불러 통역을 시키거나 여러가지를 물어보곤 했다. 전속부관 출신인 우민스키에게는 오히려 이쪽 일이 더 잘 맞았다. 우민스키는 어린 시절 프랑스어를 열심히 배워둔 덕에 황제와 프리토킹이 가능했다. 황제는 포즈난 인근을 돌아다니며 지형을 파악했고 우민스키와 명예 기병대는 열심히 그를 따라다녔다.


나폴레옹은 우민스키에게 '나도 사단장 시절 폴란드 출신 부관이 한명 있었다. 아르콜레 다리에서 날 구해줬는데 안타깝게도 이집트에서 폭도들한테 살해 당했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포즈난을 떠나던 날, 황제는 직접 명예 기병대를 사열한 뒤 그 자리에서 우민스키를 대령으로 진급시켰다. 이 외에도 다른 이들에게도 각각 계급을 하사한 뒤 앞으로 제국을 위해 복무해달라고 지시한 뒤 동쪽으로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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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떠나자 명예 기병대도 더 이상 할 일이 사라졌고 해체됐다. 하지만 부대원들은 이후 나폴레옹을 호위했다는 경력을 인정받아 세워 각자 프랑스군, 혹은 새로 창설된 바르샤바 공국군에 입대하여 커리어를 이어갔다. 우민스키는 이후 바르샤바 공국군 소속으로 준장까지 진급했으며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는 그가 이끈 후사르 부대가 모스크바에 제일 먼저 입성했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그는 폴란드 입헌왕국군에 입대했으며 1831년 11월 봉기때 사단장이 되어 러시아군에 맞서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벨기에로 망명해야 했다. 그는 살면서 파란만장한 인생을 보냈으나, 젊은 시절 나폴레옹을 모셨던 것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했으며 평생토록 황제를 존경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