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많은 포수
병자호란 시기에도 포수의 비율이 많아봐야 30%였는데 이쯤되면 70%를 돌파하거나 아예 어영청이랑 금위영처럼 보군은 아예 포수로만 편제된 군영이 등장함
2. 많은 수의 불랑기포와 이를 다룰 별파진들을 확보
불랑기의 장점인 연사력은 기병을 상대로 매우 큰 효과를 발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선은 불랑기포를 대량으로 비축함 삼군영에서만 불랑기포를 185문을 보유함 다른 화포류들도 수백문이 넘음 또한 이를 전문적으로 다룰 별파진도 양성함
別破陣과 조선후기 大砲 운용 이라는 논문도 있으니 검색해서 읽어보셈
https://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1367A_0080_040_0230
한국고전종합DB한국고전종합DBdb.itkc.or.kr
3. 융원필비 화차의 도입
십연자포 5문을 장착한 화차가 도입되면서 돌격하는 기병에 대한 저지력이 크게 상승함
https://youtu.be/fiPbGsdv9Kc?si=j2ulbINZvNeofyAY
4. 상당한 수의 기병전력을 확보함
훈련도감의 각종 기병 1000기와 금위영, 어영청의 기사 및 각종 기병 400명 그리고 금군 700명을 위시로 한 중앙군 기병대와 지방의 별무사등의 기병전력을 1만명 넘게 상비전력으로 확보해냈음
아니 시발 이건 걍 오기전에 다 쳐죽인다 마인드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팩트아님? - dc App
화차생각해서개추준다 - dc App
만주나 몽골쪽에 청 위협하는 세력하나만 있었으면 조선 후기 요동정벌 볼 수 있었으려나
방어올인이라 공성능력은 잼병이긴 함
저 체계를 호란 이전에 갖추고 인조가 런만 잘했으면 명나라랑 양동으로 역관광도 가능했겠다 ㅋㅋㅋㅋ 당연히 기병 스펨에 쎄게 데여서 가능했던 개편이였겠지만. 조선의 주적이 청이 아니라 해양제국이었으면 불랑기에 만족 안하고 대구경 포들 좀 편성했을까? 운현궁 화포 보면 절박할때 안되는건 없는 것 같던데.
100% 나오긴 나왔음 효율성은 둘째치고 - dc App
병자호란은 기병스팸이 아니였는데요 - dc App
꼭 호란이 아니더라도 건국~입관 이후 통틀어서 전반적으로 맞는말 아님? 얘들 강건성세때 팔기군 급속도로 약화된 이후에도 보병이랑 화포는 한족한테 짬때리고 주력은 기병 스팸 고집한걸로 아는데
이렇게 한덕분에 병자호란때 실제로 조선군에 청군에비해 압도적인 열세로 붙었는데 서로 반전멸해서 서로졌다고 주장하는 전투가 나왔었지아마
병자호란은 준비되지 못한 전쟁임
아니 그니까 내말은 그나마 준비해둔걸로 상황 좆같이돌아가도 한방은 먹였다는거지 ㅋㅋ
인좆이가 남한산성 들어간게 최대 실수다... 빤스런을 할거면 선조처럼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서 남쪽으로 내려갔어야 했는데 ㅋㅋㅋ
남부가 북부보다 화포비율이 높아서 막을가능성은 높긴해
그거 쌍령전투임 한때 조선군 몇만 명이 청 기병 300명한테 졌다면서 막 한국사 사상 최대의 피해라고 그랬는데, 그 내용이 연려실기술에 나오거든? 근데 최근에는 병자호란 당대 조선 측 기록과 청나라 측 기록을 교차검증하면서 걍 쌍방이 서로 얻어터진 전투라고 결론났을 거임
남한산성 식량만 넉넉했어도
조선이나 서양이나 결론은 비슷한가 보네
조선군에게 총검을 주고 싶구나. 남한산성 공성전, 광교산전투, 김화전투 처럼 방어전의 형태면 잘 싸울거 같은데 야전에서 맞 붙으면 여지없이 꺠질듯
베요넷을 쓰게 하려면 우선 총부터 서양식 플린트락머스킷으로 바뀌야 사각방진이든 총검술이든 써먹을수 있었을거임 - dc App
조선후기에는 기병 수 많이 줄어든 줄 알았는데 1만명? 말박이 추
정조대 ㅇㄷ?
조선 후기면 군대는 다 장식 된줄 알았는데 영정조때는 그래도 꽤 있구나. 박박 긁어모으면 기병 만명이라니 - dc App
중 영 정때가 조선 마지막 불빛임
그땐 조선의 제 2전성기였지 - dc App
조총병 비율이 30%였다는 호란 때도 지휘부가 전략 단위에서 끊임없이 삽질만 해서 글치 막상 전술 단위에서는 조총으로 꽤 유의미한 성과를 많이 냈던걸 보면 후기 조선군의 무장과 전술은 그때 얻은 전훈을 충실히 잘 반영한 거 같음
ㄹㅇ
노력했네 조상님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