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반장님 이거는 제가 뇌에서 꾸며낸 소설입니다. 괜히 열심히 PT하고 있는 애들 APFT기록 뒤지고 다니지 마세요.

따른갤에도 올리니까 약간 설명충이니 이해좀...
전역한지 몇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선임은 신기했다 ㅋㅋ

201x년 여름...  나는 KTA(카투사 교육대) 에서 자대를  동두천을 받고  좌절한 전형적인 신병 카투사였다.

KTA 수료후 버스를 타고 부대 게이트를 넘는순간  나는 피부로 느낄수 있었다.  2ID (미 2사단) 소속의 전형적인 동두천의 전투부대... PT와 훈련...그리고 PT를 못하면 무시하는 마초감성이 넘치는 부대라고.

동두천이라는 좌절감과 KTA를 떠나 본격적으로 군생활을 한다는 긴장감이 적당히 석힌 버스에서 나와 동기들은 모터풀(차고지) 에서 뺑이를 치고 있는 미군과 카투사 몇명을 보고 점점 다가오는 암담한 현실에 적응을 못하고 있었다.

어느덧 우리는 바탈리언 HQ (대대 본부) 에 도착하였고
버스 창문 밖으로 한지단 간부와 ACU를 입은 군인몇명이 우릴 기달리고 있었다.

버스의 문이 열리고 우리를 인솔하기 위해 버스에 올라탄 카투사를 보고 나는 생각했다 \"여기가 진정 PT가 빡센  동두천이야?\"

버스에 올라탄 카투사는 180cm가 조금 안되보이는데 덩치가 흑인들보다 커보였다. 그의 얼굴은 더운 날씨때문인지 땀 범벅이였고
입고있던 ACU는 옆구리 부분이 살려달라 외치고 있었다.
언듯 보면 수년의 군생활끝에 각종 부상으로 PT를 면제 받은 미군 SFC (상사정도 되는 부사관) 처럼 느껴지는 그는 말그대로 파오후였다.  병장,즉 sergeant 을 갓 단 그는 익숙한듯 우리에게 xxx대대에 온것을 환영하고 짐 잘챙겨서 하차하라고 지시했다.
(앞으로 그를 박 병장이라고 지칭하겠다.)

동두천과 안어울리는 파오후 카투사의 등장으로 어수선한 동기들과 나는 CSM (주임원사) 과 지원반장(카투사 관리하는 한국군 간부) 의 브리핑을 받고  자대로 대릴러갈 선임을 기달리고 있었다.

따른 컴퍼니 로 자대배치 받은 친한  동기는 이미 선임이 와서 대려간지 오래... HHC(본부 중대) 로 자대배치 받은 나와 동기몇은 HHC s-3 (대대 작전과) 사무실에서 우릴 인솔할 선임을 기달리고 있었다.

한시간이 지니고 등장한 선임은 아까본 박 병장...
우리는 뭔가 HHC의 비전투 중대 + 돼지 선임의 조합으로 나름 몸은 편한 생활이 될꺼라 생각 했다.  박 병장을 따라 배럭에 가서 짐을 풀고 디팩(미군 식당) 에서 식사를 하러 갔다.

우리는 KTA에서  one scoop and go의 아쉬움 때문에 샐러드 바에서 최대한 많은 음식을 떠왔다. 누가보면 아침을 스킵한줄 알만큼 개걸스럽게 먹는 우리는 박 병장의 플레이트를 보고 경악했다.
메인 디쉬를 담은 접시와 샐러드바 2접시...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가 개패급 막장 선임인걸로 간주했다.

다음날 PT를 하기 위해 집합한 곳에  박병장은 보이지 않았으나 그를 찾는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박병장의 배를 보고 쉬울줄 알았던 PT는 KTA 보다 빡샌 서킷 트레이닝으로 시작해서 2마일 런으로 끝났다. 지칠때로 지친 우리는 겨우겨우 식사를 하고 미군손에 끌려 바탈리언 HQ로  출근했다.

S-1소속인 나는 NCOIC(관리자인 부사관)인 백인 SFC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가니 박 병장이 버거킹을 먹으면서 업무를 보고있었다.
NCOIC는 웃으면서 그에게 인사를 하는걸 보고 난 점점 궁금증의 미궁에 빠져들고 있었다.

자대에 온지 2달이 지나고  나름 S-1업무에 적응하고 있을 무렵 Record APFT( 기록 채력검정) 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 아침에 처음으로 박병장의 PT복 차림을 봤다. 당연하지만 그는 푸시업과 싯업을 FAIL하고  
2마일은 달리는척만 하고있었다.
흑인 아줌마 써전이랑 같이 피니쉬하기는 쪽팔린지 마지막 랩에서 달리는 그를 보던 나와 동기들은 어떻게 그가 PT에 안나오고도 미군측에서 노터치 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그날 오후 나는 APFT를 fail한 이들이 적힌 엑샐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박병장의 이름...  슬적 personal record에서 박병장의 APFT 기록을 훔쳐 봤다.

놀랍게도 그의 기록은 박병장이 일병,PFC인 시절부터 최소 커트라인 통과로 기록 되고 있었다.  프로파일 따위는 시스템에 없었다. APFT fail한것을 중대원 전부가 아는 사실에 자기 혼자 시스템 상에서 조작했을 정도로 박병장은 망청하지 안았고, PT에 안나와도 말없는것을 보아 누군가 그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걸 알았다.

시간이 지니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박병장이 30이 넘었고 연세대를 졸업했으며 미국 서부의 명문대에서 석사과정을 하다 입대한거. 학력과 영어 능력덕에 사실상 S-1의 중심 임무를  혼자서 해결하고 있었던거. 미군들 Leave (휴가) 와 pay관련 문제를 적극적 으로 도와주고 NCOIC가 해야될 짜잘한 귀찮은 일들은 전부 a급으로 처리할줄 알았다.

그의 뛰어난 업무능력에 곳 은퇴를 앞둔 NCOIC는 그의 편의를 봐주고 있던것이다. 거기에 박병장이 주말pass도 반납하고 일을 하고  따른 미군의 CQ(당직) 도 싼값에 서주고 해서 그에게 불만인 자는 없었다.

박병장이 전역하고 섹션 써전에게 들은 내용인데
중대장이 부친상으로  emergency leave를 위해 출국 하다가 인천공항에서 잘못된 비행기표로 출국을 못하고 있을때 (이건 여단 g-1에서 실수한거) 박병장이 새벽에 GSA 끌고 인천공항에 가서 자기 카드로 비행기표 끊어준후로 부터 중대장도  노터치 했다고 한다.
(막상 나중에 비행기값은 G-1 측에서 박병장에게 돌려줬다고)

박병장이 전역한지 한참 시간이 지난 시간.
내가 전역을 앞두고 NCOIC가 미국으로 PCS가게 되었다.
NCOIC랑 연락이 여지것 됬는지 그는 PCS 파티에 참석했고 그를알고있던 전원은 경악했다.........

전형적인 파오후던 그가 운동 중독 미군 11b (보병) 애들이랑 비슷한 몸매로 돌아온 것이다. NCOIC가 대놓고  PT fail하던 너가 뭔 일이냐 하면서 놀리자  그의 답변은...

\"저 헬스 트레이너랑 결혼했어요.\"

전역한지 오래지난 오늘... 선후임 얼굴들이 희미 해지는데 박병장은 아직도 또렷히 기역난다.  

3줄 요약)
1. 빡샌 동두천 부대에서 파오후 선임만남
2. 알고보니 일잘해서 미군이 뒤를 봐주던거임
3.전역하고는 운동존나해서 근돼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