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한계선을 따라 구축된 대전차 방벽에 대해 북한은 맹렬히 비난했다. 콘크리트 장벽이 자기 나라와 영토를 방위하는 성벽이 아니라 자기 나라와 민족을 분열하는 장벽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래 자료에서 보이듯이, 북한 주민의 '증오'와 '분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근거로 삼았다.

우리를 안내하던 조선인민군 군관의 말에 의하면 적들이 쌓아놓은 철근콘크리트 장벽의 높이는 5m, 밑폭은 10m, 옷폭은 3m나 된다고 한다. 어떤 곳에는 높이가 6~8m가 되는 곳도 있고 웃부분의 너비가 4~6m 되는 곳도 있다. 놈들이 쌓아놓은 이러한 콘크리트 장벽은 군사분계선 전역에 걸쳐 뻗어갔다. 이 모든 광경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슴속에서는 분렬주의자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활화산처럼 솟구쳐올랐다.

북한은 1977~79년에 남측이 군사분계선상에 철근콘크리트 장벽을 쌓았다고 주장했으나, 대전차 방벽은 군사분계선이 아닌 남방한계선 일대에 세워진 것이었고, 시기적으로는 더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북한은 남측의 장벽 건설을 지켜보거나 비난만 하고 있지 않았다. 북한도 물리적 장벽을 건설했다. 울타리 장벽 공사 외에 대전차 장벽도 구축되었다. 북한은 기존의 방어진지를 정비했다. 이는 겨우내 약화되었던 통신장비와 벙커, 펜스 등에 대한 일상적인 정비에서 나아가 기존 GP를 요새화하고, 새로운 대전차 장벽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유엔사는 북하이 약 2만 6,500m의 추가 펜스를 불법적으로 건설한 것으로 파악하고, 이를 군정위에서 북측에 항의하기로 했다.

"베를린 장벽은 약함의 상징이다. 베를린 장벽은 두려움의 표현이고, 동독 정권의 자기보존을 위한 것이었다.:

-1963년 7월 15일 서독 에곤 바르의 "상호 화해를 통한 탈바꿈 연설 중에서-


출처- DMZ의 역사-한반도 정전체제와 비무장지대, 한모니까 저, 한영문화사, 2023년 401~40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