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칠 길 없는 반쯤 무너진 벙커 속에서 김병장은 최후를 준비하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같이 벙커를 쓰고 있던  이름 모를 병사의  후퇴 명령이 떨어지고 자기가 도망치지 못하리란 사실을 깨닫자마자  머리를 총으로 쏴 자결한지 오래였다. 반쯤남은 머리에선 뇌수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정수리 위론 어떻게 알고 모였는지 파리가 들끓었다.  싸우다 죽자고 했는데, 결국 해방군에 대한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내렸다 . 하지만 김병장은 그렇게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적의 총알에 맞아 죽을 생각이었다. 항복이란 단어는 머리 속에 없었다.
그때쯤 병사들의 머릿속에 심어져 있는 중국군에 대한 인식은 포로 학살과 민간인 범죄, 단 두개의 단어로 정의되었다.  모두 병사들이 싸우다 죽길 바라는 라디오와 간부들이 심어놓은 것들이다. 병사들은 그외엔 별달리 정보를 얻을 경로가 없었기에 그 말을 믿을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해방군에게 항복한다는건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김병장또한 다르지 않았다.
바깥쪽 입구 아주 가까이에서 두런거리는 말소리들이 들려왔다.   김병장은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조용히 일어서서 포격에 뜯겨져나간 문지간 바로 옆으로 걸어가  등을 처박았다.  점점 가까워지던 발걸음이 이내 벽을 타고 웅웅, 울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누군가 벙커를 발견하곤 안에 들어온 것이다.  김병장은 호흡을 가다듬었다가 바로 옆에 머리 그림자가 지기 바로 직전에 문지간 옆으로 뛰쳐나갔다.
가장 앞서 걸어 들어오던 병사가 방아쇠가  당겨지기 직전,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내저었다.


\"잠깐! 잠깐!\"


귀로 파고드는 익숙한 한국말에 손가락을 멈추었다. 그러고보니 위에 국군 전투복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국군은 아닐게 분명했다. 진짜라면 해방군 점령지역을 이렇게 버젓하게 돌아다닐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총구는 여전히 언제라도 쏠 수 있게 전방을 향한채로 김병장이 물었다.

\"당신들 뭐야.\"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저희들 말을 들어주십시오.\"

병사가 총에 맞는게 무섭지도 않은지 앞으로 한발짝 걸음을 내딛었다. 그 대담함에 오히려 놀란건 김병장이었다. 가까워진 거리만큼 몸을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저도 같은 국군 병사였습니다 .\"


병사가 다시 한걸음 가까워지며 운을 때었다.

\"그래서 당신이 간부들한테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지 잘 압니다. 뭘 무서워 하고 있는지도요. 하지만 그건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이제 중화를 넘어 전 아시아로 뻗어나가고 있는 대국이 바로 중국입니다. 이미 다 끝난 싸움인데다가 전후에 한반도를 평화적으로 통치해야하는게 중국 입장인데 사람들 인식 안좋아지게 민간인 범죄, 포로 학살을 왜 자행한답니까? 다 우리들보러 죽을때까지 싸우란 프로파간다죠.\"

\"그걸 어떻게 믿어.\"

그렇게 말하면서도 조금은 마음이 혹했는지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물론 믿지 못하시리란거 잘 압니다만,  무엇이 정말 진짜일지 마음속으로 잘 생각 해 보시란 애깁니다.\"

병사는 그 말을 끝으로 생각할 기회를 주겠다는 듯 뒤로 물러났다. 오히려 그게 더 고역이었다. 좀만 더 강권했으면  그대로 쏴 버렸을텐데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렸다. 기다려주겠다는 말처럼 병사는 진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간이 지날 수록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던 김병장의 마음 속으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와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병사가 바란게 그것이었다. 고민하는 그 시점부터 이미 반쯤은 넘어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자, 총 이리 주세요, 저랑 같이 갑시다.\"

병사가 이제 됬다 싶었는지 말을 걸었다 . 눈앞에서 총을 내놓으라는 듯 살랑거리는 손길 앞에  머뭇거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사람은 살 구멍이 생겼다 생각되면 누가 건들지 않아도 저절로 독기가 빠지는 법이었다  꺾일대로 꺽여 더 이상 죽을 각오는 남아있지 않은 김병장은 조정간을 안전으로 돌리며 총을 내려놓았다.

\"자 저를 따라오시죠.\"

병사는 총을 집어들어  탄창과 약실에 든 총알을 빼내 품에 갈무리하고는 김병장을 벙커 바깥으로 인도했다.

등 뒤를 따라 벙커가 있던 산을  죽 내려가자 산 바로 아래에  김병장과 같은 처지의 수백의 국군이 2열로 줄을 서 있었다.


\"여기서 좀만 기다리면 얼마 안있어서 출발하실 겁니다  저는 아직 수색이 안끝나서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남자는 김병장을  행렬의 맨 끝에 세운 뒤 다시 산을 올라가 버렸다 . 홀로 남은 김병장은 주위 병사들을 훔쳐보았다. 혹여 아는 얼굴들이 있을 까봐서 였다. 만약 만나게된다면 서로 반가워해야 할지,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에 얼굴을 붉혀야 할지 알 수 가 없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근처에 얼굴을 아는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 다른 국군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인지 사람들 사이에선 아무 말도 없이 침묵만이 감돌뿐이었다. 하기야 지금 처지에 제대로 말을 꺼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웃긴 일이었다.  김병장도 조용히 입을 다문채 행렬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렸다.
그 사이 뒤로 몇 명의 국군이 더 합류했다. 그리고  1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수색도 완전히 끝났는지 산을 이잡듯이 뒤지던 해방군들도 하나 둘 씩  복귀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해방군 장교가  부대와 포로들의 인원들을 확인하고는 자기네들 말로 뭐라 중얼거렸다.


\"~*#*#*~&*#!\"

\"이제 출발하랍니다.\"

옆에 있던 국군 병사가 그 말을 한국말로 번역해 소리쳤다. 양옆으로 총을 든 해방군 병사들의 감시 아래 포로 행렬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수용소에 도착한건 꼬박 반의 반나절을 더 걷고 난 후 였다. 언덕을 다 오르자 눈 앞으로 과거엔 무슨 식물의 밭이 있었을 너른 평야에 텐트들이 열을 맞춰 세워져있었다. 도망치지 못하게 주위로 철조망이 늘어서 있는  것만 뺀다면 국군의 그것보다 훨씬 나아보일 정도였다. 사실 첫번쨰 후퇴 떄 가장 먼저 버려진 것이 텐트였으니 기억속에서 제대로된 텐트에서 자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런 입장에서 이 정도면 거의 호텔급이나 다름이 없다.
해방군들은 짧은 신상 파악과 질병 조사만 마치고 앞으로 여기서 도망칠 생각만 하지 않으면 잘 지내게 해주겠다는 말을 남기곤 수용소 밖으로 나가버렸다. 드문 드문 세워진 초소 위 초병들만이 감시의 전부였다. 마치 너희들 알아서 지내라는 것 같았다. 이후에는 식사 시간에 제 때 나와 밥을 챙겨먹고 점호시간만 맞추면 김병장이 잠을 자든 뭘하든 신경쓰는 중국인은 아무도 없었다. 항상 떠들어대던 포로 학살, 범죄? 그런 말이 나돌았다는 사실조차 가물가물했다. 오히려 너무 대우가 좋아 이렇게 지내고 있어도 되나 걱정될 정도였다. 국군 포로들은 마치 우리 속의 가축들처럼  서서히 살찌워졌다. 고단한 전쟁터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행복함과 풍족감이었다.
무감각해진 시간속에서 어느 날, 해방군이 달아둔 스피커를 타고 종전 소식이 들려왔다.  이미 전라 강원까지 뺏긴 마당에 섬 몇개가지고 더 이상 저항 할 수 있을리도 없으니 그냥 형식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중국에겐 무언가 대단한 의미를 지닌 모양이었다. 한국의 무조건 항복 선언문을 읊는 대통령의 목소리가 무미건조하다.
속보가 끝나자 마자 한층 더 커다래진 볼륨으로 승전을 축하하는 중국 국가가 스피커를 타고 수용소 전체에 울려퍼졌다.
몇일 후, 남조선인민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을 알리고 포로들은 별 조치없이 그대로 석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