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준은 참으로 묘한 인물이다. 남한적인 세련된 얼굴과 큰 키, 골프장에서 태운것만 같은 피부와 예의를 차리는것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묘한 어투에 젠체하는 세련된 서울 억양까지. 어찌 보면 통일 이후의 북녘사람들이 남녘 사람들, 특히 통일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남녘 졸부들에게 가지고 있는 편견을 과장스럽게 데포르메 한것 같은 사람이다.

 강남에만 상가 너덧개를 가지고 있다는 그가 전직 장교, 그것도 구 북한군의 장교 출신이라고 하면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믿지 않을것이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북한식 어투와 그가 직접 꺼내보인 구 북한군 시절 사진만 아니었으면 필자도 반신반의하며 인터뷰를 진행했으리라.


 인터뷰를 하러 온 나를 반긴 그는, 조금 지나칠 정도의 친절을 표하며 식사 여부를 물었다. 인터뷰는 고급 요정에서나 내올법한 식사가 모두 끝나고 차가 나온 후에야 진행될 수 있었다.


 이 오미자 차에 달고 쓰고 시고 맵고 짠 맛이 모두 들어있지. 굴곡진 내 반생을 반추하는데 이보다 어울리는 음료가 있겠나?

 

 아, 그래. 음, 조선인민군의 장교. 그거 참 좋은 자리야. 선군정치를 하는 군국주의 나라에서 제법 한자리 꿰차고 있다는 말이니까. 사회적 지위는 물론이오, 여러가지 부대 수익까지. 그만큼 적당히만 하면 많은것을 얻어 갈 수 있는 자리는 드물지. 뭐 너무 나가면 꿱하는거지만.


 뭐 물론 그 장교에도 급이 있지. 나는 아마도 상위권 안에 들어갔을걸세. 지금은 한중국경이 된 압록강의 국경 경비대에서 복무했으니까. 양주? 고기? 흠, 북쪽 사람처럼 말해보자면 - 당신네 남한 사람만큼이나 많이 먹어보고 마셔봤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잘 알겠자. 몇마디의 중국어와 조금의 사업수완, 대위 계급정도면 이득보는 밀수 정도는 껌이었으니까 말일세.


 그렇게 말할수도 있겠지. 사실이니까. 난 그때부터 사업가였던거야.

 나는 그렇게 평생 살아갈줄 알았지. 적당히 잘먹고 잘 사는 삶. 깐깐한 보위부 장교는 위안화 한뭉치로 녹여버리고, 심심하면 주변에 널린 반반한 여자애들을 안고, 그게 질리면 영화나 드라마를 하나 골라잡아서 보면 되니 지루할 틈이 없었네. 아, 드라마나 영화로 말할 것 같으면 어디서 찍힌건지는 상관 없었네. 익숙한 맛을 원하면 남한의 연애 드라마를 보는거고, 조금 웅장한걸 원하면 중국 사극을 봤지. 아, 가끔은 미국 드라마도 봤어. 거래를 트고 있던 중국 브로커가 재미있다며 준건데, 남한산 자막이라서 조금 불편했지만 꽤 재밌더라고. 뭔가 평양의 저 위쪽 생각도 나는 드라마였는데. 왕좌의 게임이랬나? 지금 그거 완결은 났나?

 그렇구만. 거기서 더 이야기 하진 말자고. 이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볼거니까.


 아아, 그래. 맞아. 결국 그런 삶이 영원히 이어지지는 못했지. 그때 생각해보면 대단한 비극이지. 재수없으면 여태까지 꿍쳐놓은걸 다 날리고 어디 진탕에 쳐박혀서 썩어갈 수 있다는 의미잖나.


 우리쪽 최상층부는 전쟁을 원하지 않은거 같아. 바깥의 정보를 좀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으레 그랬으니까 생각해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지.

 맞아. 나도 그런 부류에 들었고, 남한을 굴복시킬 수 없을거라는걸 잘 알았어. 평양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한줌의 정예를 빼면, 군대라고 있는건 총 빼고 다 팔아넘기는 밀수꾼들이나 삼국지에 어울릴법한 둔전병들 정도야. 후자는 잘 모르겠지만 전자는 잘 알지. 일단 전쟁나면 제대로 뭔갈 할 수 없을거라는건 확실했어.

 그에 비해 남한은? 최소한 우리보단 낫다는건 확실하지. 훨씬 잘먹고 훨씬 돈이 많았으니까.

 그렇지만 그 밑은 조금 달랐어. 잘난 사회주의 조국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달려갈 수 있는 치들. 히틀러를 위해서 킬존으로 착착 걸어가던 히틀러 유겐트 애새끼들이랑 다를바 없는 바보들이었지. 나랑 같은 세대긴 한데, 흠, 근무 환경의 차이고, 천성의 차이탓인지 많이 달랐어. 아직도 남아있겠지? 개마고원 어딘가서 썩어가고 있거나 서울의 지하에서 뻑적지근하게 국제 사회의 관심을 잔뜩 받을 수 있는 테러를 준비하고 하면서 말이야.


 그리고 또, 우리의 상국이었던 중국도 달랐어. 원래는 안그랬었지 싶은데, 아마 중국식 잃어버린 10년이 끝날 기미가 안보일때부터 미쳐가더군. 그때부터 중국 방송을 안보기 시작했어. 사극도 영 재미가 없고, 거 나오는건 줄창 주석 찬양과 중화 문명 찬양뿐이었다니까.


 자네 중국 뉴스 봤나? 전쟁 전 뉴스 말이야. 아, 그래.. 뭐 사실 당연하지. 하여간 말이야, 전쟁 전 중국뉴스. 적어도 그치들이 미쳐가기 전엔 꽤 재미있었어. 별별 일이 다 나오잖아. 그런데 미치고 나서는 우리쪽 뉴스랑 별반 다를게 없더군.


 친한 브로커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데다 적당히 눈 감을 줄 알던 공무원들의 자리는 그 사이는 오천년 중화 운운하는 미치광이들이 채웠어. 적잖게 보이던 미제나 일제 잡동사니들도 영 구하기가 힘들어져서 지갑은 얇아지고.. 아 또, 브로커들과 이야기할때 정치 이야기는 금물이 되었지. 적당히 투덜댈 줄 알던 친구들은 다 증발당하고 남은거라고는 한반도의 노예 근성 그득한 빵쯔들과 나약한 미대륙의 배금주의자들은 한주먹거리요, 전통있는 중화가 전세계를 지배해야한다고 믿던 미친놈들 뿐이었으니까.


 전쟁이 어떻게 될 거 같았냐고?


 글쎄요, 솔직히 이길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지금 보면 터무니 없는 소리인데, 그때의 내가 가진 정보를 생각해봐. 아닐수도 있거든. 세계 1위라고 말해지는 미국의 힘같은건 잘 몰랐어. 어린 시절의 교육 덕에 미국 놈들은 그냥 잘 쳐먹기만 한 돼지 허당이라는 편견이 더 컸으면 컸지.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부를 누리던 중국이 팔한짝 걷어붙이고 달려들어주면 코딱지만하게 작은 남한과 좀 많이 먼 미국을 누르고 적어도 이 한반도를 통일할 수 있지 않을까, 하기만 했지.


 생각해보면 어릴적 교육이 참 무섭긴 하네. 노동당물 안들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도 어느틈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뜻이니까. 


 아직도 전쟁 첫날이 떠오르네. 국경 경비대라서 전선에 나가진 못해서 우르릉 쾅! 하는 그런 화려한 경험은 없었다만, 흠, 당시만 해도 조중국경이라고 부르던 곳의 북쪽, 그러니까 압록강 북쪽이 하늘과 땅 가릴 것 없이 모두 전쟁 기계와 군바리로 가득차서, 질서정연하게 남하하는건... 휴전선을 따라 쭉 형성되었던 불꽃만큼이나 인상적이었지. 이쯤에서 참전 용사다운 말 한번 해볼까? '기록 영상으로는 알 수 없어'.

 한눈으로 대충 봐도 수십이 있는 제트기들이 내는 소닉붐에, 그보다 더 가까운 우두두하는 직승... 아니, 헬리콥터 소리에 귀가 먹먹해지고, 밑도 끝도 안보이는 중공군 전차에 기가 질리고, 우리와는 비교도 안되는 장비를 갖춘 중공군 보병에 혀를 내두르렀어. 

 선양 군구가 십수년간 갈고 닦아온 창끝이오, 중국이 수십년간 품어온 대외 팽창욕의 결정체였지. 제대로 기동도 못하는 구닥다리 전차를 굴리고 낡아빠진 보총 하나조차 제대로 들지못하는 찔찔이들이 반은 되는 군대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신세계였고, 정말로 한번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니까.


 아, 정말 이길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다니까. 저런 군대가 이기지 않으면, 누가 이기겠어?


 그래, 맞아. 하하... 뛰는 놈이 있으면 나는 놈이 꼭 있는 법이라니까. 상상력과 정보가 둘다 부족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지.


 첫 일주일은 매양 북쪽에서 남쪽으로 날아가는 중국 전투기들로 하늘이 가득했어.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남쪽으로 가는 전투기들의 수가 적어졌고, 그러다가 한 한달이 약간 덜되었을때 하늘이 완전히 비어버렸고... 그 다음날엔 생전 처음으로 남쪽... 그러니까 연합군의 전투기를 보게 되었네. TV와 라디오에서는 이미 서울을 점령하고, 강원도에 있는 남한군 방어선은 산산조각나고, 조국 통일이 목전에 있다고 떠들어대는데, 현실은 참 끔찍했지.


 거래를 트던 중국 브로커들이 가끔 하던 말이 있지. 말이 좀 안맞아서 거래가 잘 안풀릴때마다 '밤이 되면 북과 남을 눈으로 비교해보라.'라고 지껄여대. 뭐 대충 우리는 전깃불 휘황찬란하게 잘 켜놓고 사는데 너넨 어둑어둑하게 지지리 궁상으로 산다. 우리가 잘났다. 주도권은 우리에게 있다. 적당히 좀 해라. 뭐 이런 뜻이지.

 맞는 말이야.

 조중국경은 나침반이 필요없는 곳이었어. 북쪽이 곧 밝은 쪽이었으니까.


 하지만 연합군 전투기가 보이고 나선 북과 남을 구분할 수 없었어. 등화관제라고 하던가? 마치 정전이라도 난것같이 북쪽이 싹, 어두워지니... 불이라고 있는건 가끔씩 연합군 전투기가 날아와서 던지고 가는 폭탄이 만들어낸 불들 뿐이었어. 별이 잘보이는건 좋더군.


 그리고 그때부턴 상황이 궁해졌지. 그나마 쥐꼬리같이 나오던 배급이 뚝 떨어졌고, 공식적으로 우리는 굶주려야 했어.

 평소같으면 강건너 북쪽에서 먹을걸 사오면 되는데 그럴수도 없고. 그나마 꿍쳐둔게 있어서 참 다행이었어. 동원산업과 오뚜기의 덕을 좀 봤지. 난 아직도 즉석 밥을 사면 햇반이 아니라 오뚜기밥을 사둬.

 아 맞아, 그리고 그때 인심도 좀 샀어. 한 칠할은 부하들과 주변 부대 지휘관들에게 풀었던거 같아요. 그래서 내가 그 개판에서 살아남을수도 있던거야.


 아깝지 않았느냐고? 물론 아까웠지! 하지만 난 내가 임관할때 주름과 흉터로 자글자글해진 외할아버지께서,  1차 한국 전쟁에서 수번 죽을 위기를 넘기신 외조부의 조언을 잊지 않고 있었어. '같이 싸우는 동지들의 마음을 사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살아남을 공산이 크다.'말이야.


 민가고 밀수고 뭐시깽이고 먹을걸 구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어 진흙을 퍼먹어야 할 판에 자기 직속 상관이 베풀어준 뜨끈한 라면과 고슬고슬한 밥! 제 입으로 직접 말하긴 좀 그래도 아주 감동적이었을걸?


 아, 그래요, 이야기가 좀 샜네. 인정하지. 본론으로 돌아가자고.


 끊겼던 배급이 다시 시작된건, 우리 국경 수비대도 전선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고 나서였어. 미숫가루 한주머니 주고 안주로 걸어가라더군. 흠, 개성도 아니고 사리원도 아니고, 휴전선에서 한참 떨어진 안주로? 여기서 사업가 생활로 단련시킨 잔머리를 팽팽 굴려보니, 셋 중 하나라는 결론이 나오더군. 거기서 쎄게 반란이 터졌거나, 아니면 칠십년 전의 인천처럼 상륙작전이 있었거나... 평양이 함락되었거나. 뭐, 어느쪽이건 나라가 망할 징조였어.


 여태까지 꿍쳐둔 달러 뭉치와 귀금속 같은건 들고가는건 위험하니까 대충 나만 아는 곳에 꿍쳐두고 초콜릿만 한자루 챙겨서 길을 나섰어. 어떻게 숨겼는지는 영업비밀이야.

 

 이동수단? 자네, 혹시 날 중국군 참전용사로 착각했나? 물어봐야 뻔한 걸 왜물어? 아, 진짜 궁금해서 물은거야? 혹시 몰라서?

 거 참 말할 필요가 있겠냐마는.. 11호 전차. 그러니까, 그냥 두 발. 압록강에서 안주까지 그냥 터덜터덜 걸어가야 했어.

 물론 힘들어. 아주 많이. 그냥 도로를 따라 걸어도 힘들 판에, 연합군 전투기때문에 날씨가 아주 흐리지 않으면 풀숲에 쳐박혀서 거의 기어다녀야 했으니까. 혹시라도 도로로 나가면 그대로 고기덩어리가 되는거지. 고개를 빠끔히 들어보면 그렇게 된 불쌍한 녀석들의 흔적이 빤히 보였어.

  군화는 너덜너덜해지고 풀물도 무진장 들고, 어휴, 다시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 짓을 해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걷기만 했어. 안주쪽이라고 말해지는 방향으로 가기만 했지.

 그러다가 딱, 내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지.

 

 충분히 전환점이지. 당시의 나는 아는게 거의 없었어. 지고 있다는건 확실한데, 그거야 바보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잖아. 어떻게 지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면 말짱 꽝이야. 어디로 내빼야할지도 모르고, 뭘 챙겨야 할지도 모르고.

 

 그런 의미에서 추락한 남쪽 전투기 조종사는 참으로 보물같은 존재였어.


 그 친구덕에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어. 설마설마하던 모든 추측이 사실이 되었어. '전쟁 초반엔 서울이 위협받기도 했고, 강원도에 쭉 깔렸던 남쪽 군대가 꽤 피를 보긴 했지만 미군과 본격적으로 밀려옴과 동시에 탄도탄을 두드려맞고 열받은 일본이 참전을 준비하던 시점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반전되었다. 평양은 함락당했고, 우리 대장동지는 항미원조 공군의 마지막 잔당과 함께 튀었으며 상하이는 동중국해의 일부가 되었다. 국민당이 칠십년만에 대륙으로 돌아올거다..'

 남쪽 비행사가 가지고 있는 라디오, 그리고 우연찮게 감청한 중국군의 무전들로 확인사살까지 했어. 머리를 그 어느때보다 빨리 굴려야했어. 그정도면 이 전쟁은 확실하게 졌고, 설사색 군복을 입고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죽을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거니까.


 초콜릿 두개를 던져주고 남쪽 사람에게 어울릴만큼 큰 군복을 샀어. 그걸 대충 입혀놓고 원래부터 내 중대의 병사였던걸로 퉁쳐버리는거야. 그 친구는 여러모로 유용했으니 그럴 가치가 있었지.

 누가 알겠어? 과장 좀 하면 하루 하루 내 상급 지휘부가 달라지는 혼란통이었고, 육해공, 조중 가릴 것 없이 되는대로 뭉쳐서 싸우던 시절인데. 대조해볼 군적같은건 진작에 우리 대장동지와 함께 사라진 판이니까.


 그래도 안주까지 가기는 했어. 캬, 장관이더군. 


 시내로 들어섰는데 말이야, 막 종이가 휘날려. 한두장도 아니고 수천장이. 그걸 하나 하나 하전사들 시켜서 빗자루로 모아서 태우더만. 

 전방도시가 된 안주에서 내가 맡은 첫 임무도 그거였네. 종이를 모아서 태우기. 참 웃긴 일이지. 거의 일주일을 걸어서 한다는 일이 고작 종이 태우기라니, 정말 운이 다한 나라였다니까.


 조국에 대한 충성심같은건 뭐... 있긴 했는데 내 몸을 날릴만큼은 아니었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조국보다 우선이란 말이야. 조국은 그게 내 조국이니까 의미를 갖는건데, 내가 죽어버리면, 저승으로 호적을 이전해버리면 내 조국이 아니게 되지 않나? 내가 우선일세. 내가.


  마지막 남은 초콜릿을 씹으면서 남쪽 조종사에게서 주워들은 말을 되새김질했지. 사업가로서의 경험과 정신, 그리고 이런 저런 짬과 배경지식을 총 동원해서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나. 어떻게 해야 남은 반생을 잘먹고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했는데, 그러다가 묘안이 하나 떠올랐지. 아, 별건 아니야. 지금 생각해보면 참 조잡하고 이게 계획이냐 싶은데 젊고 멍청하고 다급했던 그시절엔 대단한 방책이었어.


 그보다 자네 잔이 비었는데. 잠깐 쉬고 리-필이나 하세. 다과도 좀 내오고. 아, 괜찮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