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루르 점령
프랑스의 레몽 푸앵카레 내각은 바이마르 공화국의 배상금 연체를 구실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지역 일부, 즉 루르 지역에 군사적 침략을 개시함.
1923년 1월 11일부터 프랑스군이 지휘하는 프랑스-벨기에 연합군은 총 6만명의 병력을 동원해서 루르 지역부터 도르트문트 인근까지 지역을 점령하게 됨. 병력은 초기 6만에서 최대 10만까지 증강됨.
일단 겉으로는 일단 배상금 상환하면 철수하겠다고 그랬지만 속으로는 루르 지역을 삥뜯으려는 속셈이 깔려 있었음. 프랑스는 1차대전으로 인해 북부 지역 중심으로 산재해 있던 공업 지역이 큰 피해를 입었고 (벨기에는 말할 것도 없고) 이들은 나름대로 그들의 경제적 피해 복구를 위한 따갚되 전략을 쓰기로 한 거임.
이는 분명히 내정 간섭이자 침략 전쟁이었지만 바이마르 공화국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음. 결국 당시 여당이던 사민당이 택한 전략은 파괴 공작을 동반한 총파업이었음. 루르 지역 공장 노동자들의 산별 노조를 규합하여 총파업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공장 설비, 통신 및 교통 시설에 대한 적극적인 파괴 공작을 시행했음. 이 때 벌어진 사보타주에 참가했다 프랑스군에 의해 총살당한 퇴역군인 레오 쉴라게터 같은 인물들은 독일에서 순교자 취급을 받았고 훗날 독일 공군이 재건되었을 때 제26전투항공단(Jagdgeschwader 26)의 별칭으로 붙여짐.
하지만 침략군에 맞서 군대를 출동시켜 맞서 싸우지도 못하고 비무장 시민들의 저항으로 맞서야 하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무기력한 모습에 독일 시민들은 굴욕감을 느껴야 했음.
그래도 시민들의 끈질긴 저항, 결정적으로 영국의 태클 때문에 2년 6개월 정도 이어진 점령은 결국 별 소득 없이 프랑스-벨기에군의 철수로 막을 내리게 됨.
이 사건은 그저 해프닝이었을지도 모르지만 10년 후 역사를 송두리째 바꾸게 됨. 이 사건을 두고 굴욕감에 몸부림치며 독일인의 단결을, 프랑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 한 30대 남성이 있었기 때문임.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였음.
헉
아조씨 비추수 왤케높아요
몰라 추천하면 추천하고 비추하면 비추하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