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에서 멀리쏘기 대회가 따로 있었단것과 만주활과 터키 전통활의 화살 길이 차이와 무게를 감안하면
중동쪽 기마궁수들은 멀리쏘는데 집중하고 동아시아쪽이 유목민들은 화살을 더 길고 무거운걸 쏘는식으로 발달했다 생각됨.
그래서 사실상 단창수준의 화살을 활로 쏴재끼는 놈들 상대하느라 밀집대형을 포기한거 아님?
물론 중동쪽에서는 팔랑크스를 운용하긴 했지만 이쪽은 멀리 쏘는 기마궁수들이 무거운 화살 쏘는 기마궁수들을 잡아버려서 장창방진을 노리는게 가능한 무거운 화살을 쏘는 기마궁수가 도태된거 아닌가 싶음.
실제로 국궁이 만주활보다 사거리가 좀더 길어서 조선때에 기마궁수 양산해서 맞대응 가능했던거 아닌가 싶고 만주활 계열이 구조상 각궁계열에서 만들기 쉬운 구조라 기술이든 자원이든 풍족하지 않은 유목민들은 써야만 했음.
그러니 사거리는 부족하지만 맞으면 치명적인 활을 쥐고 내려오는 유목민 웨이브 대응 때문에 장창 방진이 안쓰인거 아닐까 싶음.
만주궁, 국궁, 몽골공, 그냥 거의 똑같은 계통임. 우열 따지기가 매우 어렵고, 활이라는 무기 특성 상, 사수의 근력에 사거리가 좌우되는 문제라, 사거리 싸움은 제병전술에서 큰 의미가 없음. 더 큰 무기는 기동력이지. 보방진이 동쪽을 향해 배치됐는데 서쪽으로 기동해서 후방을 치면, 보병대는 어이없이 무너져버림. 심지어 그게 거리 유지하면서 화살비를 쏟는 방식이면, 보병이 할 수 있는 게 없음
기마궁수한테 사거리는 의미 없다 보병 코앞까지 가서 쏘고 튀는 전술인데
중국:그냥 수레로 전방막고 그 뒤에서 석궁 쏘죠? - dc App
유럽에서도 파이크가 전장에 본격적으로 퍼진건 중세 말기 이후에 스위스 용병의 전성기가 시작되고 나서임 그냥 장창방진을 구사할 정예한 상비군이나 전사(용병)집단이 동아시아에 없던거임 동유럽에서 파이크 방진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던 거 처럼 기병 위주의 전장이었던 점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