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산전투-야전이라고 보기도 뭐한게 진짜 투닥거리다가 양쪽 다 철수함 1차 울산성전투 후 지원오는 일본군 1만5000명이랑 조명연합군 2만 9000명이 야전으로 붙은거 1차 울산성전투 후반부 하나라고 봐도 무방함
사례가 몇 없긴 해도 역량 자체는 꽤 괜찮다 볼 수 있을듯 무승부인 직산 전투도 알보병 편제로 명군 북방기병을 1:3 정도의 교환비라지만 저지하긴 했고
그 교환비도 양측 기록이 너무 다르긴하더라...
전과에 구라 넣은거 감안해도 뭐 교환비 자체는 명이 앞서지 않나 싶긴 한데 편제부터 기병 비율이 너무 차이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