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독일인'에 대비되는 '착한 이탈리아인'이라는 도식은 꽤 오랜 기간 동안 생명력을 부여받으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천성적으로 싸움을 거부하는 이탈리아인은 '나쁜 친구' 독일과는 달리 무솔리니의 명령을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서 전쟁 범죄에 저항하고자 했으며, 간혹 범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독일의 협박에 의해 마지못해 한 행위로 간주되거나 '이탈리아적이지 않은' 개인에 의해 일어난 사건으로 간주되었다.


물론 이러한 서술이 진실이었던 경우도 존재한다. 나치의 생물학적 유대인론은 이탈리아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으며, 나치처럼 계획적으로 한 인종 전체를 절멸시키고자 하진 않았다. (적어도 1943년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넓게 봤을 때 이 '착한 이탈리아인' 담론은 설득력이 부족해보인다.

'착한 이탈리아인'을 반박할 사례는 많다. 유고슬라비아에서 파르티잔 운동이 격화되면서 해당 지역의 이탈리아 점령군은 1942년 4월부터 43년 7월까지 파르티잔에게 경고할 목적으로 2,050명의 시민들을 처형했다. 이들 중 적은 수만이 파르티잔으로 추정되며, 대부분은 무고한 민간인이었다. 또한 같은 시기 그리스의 이탈리아 점령 지역과 2차대전 이전에 점령된 에티오피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들의 동기 또한 나치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1941년, 몬테네그로 지역 점령 사령관으로 부임한 피르치오 비롤리(Pirzio Biroli) 중장은 병사들에게 배포한 핸드북에서 다음과 같이 훈시했다.

"...이탈리아의 인종적 우월성을 시기하는 질투심 많고 문명화되지 않은 슬라브인들을 쓸어버려야 한다. 그 야만인들에게 이탈리아의 힘과 우월성을 보여주어야 하며, 이러한 야만인들과의 전투는 선과 악의 싸움이나 다름없다."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지역을 담당하던 이탈리아 제2군 사령관 마리오 로아타(Mario Roatta) 또한 예하부대에 배포한 3C책자에서(circolare 3C) 슬라브인들을 인간이 아닌 존재를 벗어나 '인간적 가치를 더럽히는 존재들'로 취급해야 한다고 했으며,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싸움은 문명과 야만의 싸움이므로, 전투원이든 비전투원이든 구분없이 '적절한 조치'가 취해져야 했다. 점령지 주민들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는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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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의 검은 짐승' 마리오 로아타

이 명령에 따라 유고슬라비아 점령지에서 게릴라를 상대하기 위해 마을을 불태우고 식량을 압수했으며, 운반이 쉽지 않은 가축들은 도살해버렸다. 또한 42년 5월 23일에 있었던 무솔리니와의 회동이 끝난 후 2~3만명의 인질들을 수용할 수 있는 집단 수용소를 준비하라고 예하 군단에 명령했다. 이 작업은 42년 중반에는 거의 끝나가 크로아티아와 이탈리아 본토에서 17곳의 강제수용소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 수용소들은 각각 작게는 3천여 명, 많게는 2만 명에 육박하는 수용자들을 수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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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라브 섬의 집단 수용소.


이 집단 수용소의 환경은 아무래도 나치 절멸수용소보다는 나았긴 했으나, 끔찍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가장 악명높았던 크로아티아 라브(Rab) 섬의 수용소의 환경은 부헨발트 수용소보다도 열악했다. 부헨발트 수용소에선 28만 여 명의 수용자 중 56,500여 명이 사망해 사망률 20%를 기록했는데, 라브 수용소에서는 만 오천여 명의 수용자 중 3,500~4,100여 명이 기아와 추위, 질병으로 수용소 안에서 사망했고, 800명이 다른 수용소로 이송 중 추가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한 명확한 사료가 없어 이 수치는 2,000명 까지 늘어나기도 한다)


이탈리아 본토에 있는 수용소는 크로아티아보다는 조금 나았으나 그래도 형편 없었다. 수용자들에게 제공되는 식사는 하루 열량이 911칼로리 정도로 필요에 한참 못 미쳤고, 그것마저도 경비병들이 빼돌려 암시장에 내다 파는 경우가 빈번했다.

이탈리아 본토의 수용소들은 연합군 포로와 '현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가 필요한' 유고슬라비아인, 그리고 이른바 '열등 종자'들이 뒤섞여 있는 경우가 많아 이들을 분리시켜 각기 다른 대우를 하라고 명령했으나 행정 착오와 담당자의 무능과 무관심으로 실제로는 거의 같은 대우를 받았다.

총 10만 명여 명의 유고슬라비아인들이 강제 수용소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며, 정확한 통계는 추산이 불가능하나 약 12,000여 명이 수용소에서 사망했으리라 여겨진다.

참고자료

Barruzza, John R. The Good Italian, the Bad German, and the Survivor: Narratives and Counter-Narratives of the Shoah in Italy. Diss. Syracuse University, 2020.

Schwarz, Guri. "On Myth Making and Nation Building: The Genesis of the ‘Myth of the Good Italian’." Yad Vashem Studies 36.1 (2008): 1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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