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권은 칼을 뽑아 앞에 놓은 책상을 때려 부수며 말했다.


"여러분 중에서 다시 조조를 맞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책상과 같이 될 것이오."


그리고는 회견이 끝났다. 이날밤 주유가 배알을 요구해 말했다. 주유가 뵙기를 청하고 말하길:


"모든 사람들이 조조의 서신(조조가 손권에게 보낸 편지인데, 회의할 때 보여주자 오나라의 모든 신하들이 벌벌 떨었다고 한다)을 보고서 수군과 보병 (호왈) 80만이라는 말에 벌벌 떨고 있지만, 그 허실을 다시 헤아릴 필요도 없는 것으로, 이것에 대해 다시 회의를 여는 것은 더욱 무익한 일입니다.

지금 저들의 실제 (병력수를) 살펴보면, 중국(중원)인들은 불과 15- 16만명인데, 이 또한 군사들이 이미 오랫동안의 (전쟁으로) 지쳤으며, 유표의 군대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그 또한 7-8만명 뿐이고 이들은 또한 의심을 품어 조조군에 완전히 편입된 것이 아닙니다.

지치고 병든 병사와 의심하는 병사들은 비록 군사가 많다고 하더라도 두려워 할만한 것이 아닙니다. (저에게) 정병 5만명을 주시면 제압할 수 있으니, 장군께선 근심하지 마십시오."



손권은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공근, 경이 그렇게 말을 해주니 고(孤)의 맘이 풀어지는구려. 자포(子布: 장소張昭)와 문표(文表; 진송秦松) 등등의 여러 사람들은 각각 자기 처와 아들딸를 돌아보는 등 사사로운 것만 생각하여 고를 크게 실망시켰소. 오직 경과 자경(子敬노숙)만이 고에게 찬동 해주니 이것은 하늘이 경들 두 명을 보내 고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오.


5만의 군세를 갑자기 모으는 것은 곤란하지만, 이미 3만명을 선발해 놓았고, 함선·식량·무기 등은 모두 갖추어지고 있소.


경은 자경과 정공(程公정보)과 함께 먼저 출발하시오. 고는 곧 뒤따라 군대를 출발시켜 다량의 물자·식량을 싣고가 경을 후원하도록 하겠소. 경은 조조군을 잘 다룰 사람이니 최선을 다해 싸우시오. 생각했던 대로 되지 않으면, 곧 바로 귀환해 고에게 달려와 주시오. 그때는 마땅히 고가 맹덕(孟德;조조)과 결판을 낼 것이오"



- 오서 주유전 주석 강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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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제의 통일 수나라와 조조의 예를 1:1로 비교하긴 무리겠지만 이미 당대에도 하북과 형주를 제압하고 강동만 따면 되는 구도에서 주유가 세아려 봤던 조조의 본군은 15~16만 수준이고 신뢰할 수 없는 형주군이 7~8만 수준이었음. 조조 본군 기준으로 치면 거의 호왈에서 1/5 디스카운트 쳐야 한다고 봤던 것임





적군을 쳐부순 공식 문서에는 하나를 열로 계산하는 관습이 있었으나, 국연은 싸움터에서 베어 노획한 적군의 목을 상주할 때, 그 실제적인 숫자와 똑같게 했다. 태조(조조)가 그 까닭을 묻자, 국연이 말했다.


"대체로 경계 밖의 도적을 정벌하고 참수하거나 포로로 잡은 숫자를 실제보다 많게 보고하는 것은 무공(武功)을 크게 하여 백성들의 귀에 과시하려는 것입니다. 하간은 봉토 구역 이내인데도 전은 등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비록 우리가 크게 이겨 공을 세웠더라도 저는 마음속으로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태조는 크게 기뻐하며, 국연을 위군태수(魏郡太守)로 옮겼다.



- 위서 국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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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조조쪽 기록에서도 전공을 공식문서에 기록할때 보통은 상대의 수를 원래보다 10배는 친다는 기록이 나옴.







물론 조조-주유 시대랑 400여년 후 수양제 시대를 단순히 비교하면 무리겠지만, 이런거 보면 '113만은 공식 1차사료에서도 증명된다!'를 일일히 믿으면 곤란한 사례가 아닐까 싶음. 왜냐면 공식 1차사료 제작 과정에서 가라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더군다나 요하 이서 요택은 한나라부터 당나라 때까지도 습지여서 이세민도 퇴각할때 똥고생을 했던 곳인데, 여길 통해 보급을 한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거임. 사마의의 요동 원정때도 그래서 4만명을 원정 보냈을때 이거 중앙조정에서 보급 못한다 어쩐다 말이 많았었음.


물론 수나라는 통일제국이고 수문제 시기의 성세가 있었으니 삼국시대 이때보단 여유가 있었겠지만 항상 반란이다 북방 대비다 골머리를 앓던 수양제 입장에서도 요택이나 서해를 건너서 보급을 하는 측면으로 보면 상황이 그리 좋았을지는 모르겠고...적어도 이런건 감안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