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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의 의견은 당시의 원자물리학자, 특히 니시나(니시나 요시오仁科芳雄, 일본의 핵개발 프로젝트 니고연구ニ号研究 총책임자)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6일 저녁 무렵 히로시마에 투하된 것이 원폭이라고 인정했으면서도 왜 한시라도 빨리 정치, 군사 지도자에게 포츠담 선언 수락을 강력하게 진언하지 않았느냐며 니시나에게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랬다면 적어도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투하는 막을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야마모토의 얼굴을 어둡게 한 사건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이시카와정의 구제중학교 3학년 학생이 8월 15일에도 여전히 지하에서 광석을 채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라늄235를 분리할 설비도 없는데 '나라를 위해서'라는 한마디 말에 계속 땅속을 파헤치고 있었던 것이다. 

야마모토는 8월에 이미 채굴을 중지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하지만 말단까지 전달되지 않았고,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여전히 삽으로 산을 파헤쳐 돌을 모은 다음 그것을 삼태기에 실어 나르고 있었다. 야마모토는 "참 딱한 일이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1945년 8월 하순, 지프를 탄 미군 장교가 이곳을 방문해 자료와 원석을 모두 가져갔다. 그들은 일본의 원자폭탄 제조 계획의 말단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흥미를 갖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유치할 만큼 작은 것을 보고 놀라 GHQ는 일본에서도 원폭 개발 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호사카 마사야스, <쇼와 육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