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눈팅만 하다가 심심해서 글 싸봄. 디시에 글 처음 써보니까 어색해도 몰?루
영문 위키랑 다른 책 내용 기억나는거 짜깁기한 거니까 재미로만 보셈
Special Operations Executive란?
SOE는 1940년 독일 점령지에서의 정보수집, 정찰, 사보타주를 목적으로 형성된 영국의 특수부대로, 13000명 이상의 대원 중 약 3200명은 여성이었다. 계층, 국적을 가리지 않고 부대원을 뽑은 것으로 유명한데, 폴란드 여백작, 범죄자, 인도 수피즘 지도자의 딸, 일반 노동자 출신, 유대인 자원자, 동성애자, 군복무 부적응자, 공산주의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SOE의 훈련 과정은 넷플에 다큐멘터리가 있으니 참고
<Yvonne Cormeau/”Annette”(이본 코르모/암호명: 아네트)>
1940년, 군인이었던 남편이 런던 폭격으로 사망하였고, 해당 폭격으로 아기를 유산 하였다. 1941년에 “군에서 남편의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2살 아이를 지방의 수.녀원에 맡기고 여성 보조 공군에 입대하였고, 이후 복무 중 외국어 능통자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고 SOE에 지원하게 된다. 아네트는 훈련을 수료한 이후 대위 계급(Flight Officer, OF-2)을 받고 1943년 10월 보르도 인근의 Saint-Antoine-du-Queyret에 공수 투하되었다. F section 소속 휠라이트(Wheelwrite) 네트워크의 무선 통신 요원으로 배정되었는데, 해당 네트워크의 지휘자(지역 대장)와는 과거 브뤼셀 거주 시절 지인이었다고 한다. 지급된 청산가리 캡슐과 .22 리볼버를 소지하지 않았는데, 이는 발각 시 높은 확률로 독일군에게 총살되었기 때문이다.
<보르도 인근의 Saint-Antoine-du-Queyret>
SOE의 사전 준비는 상당히 부실하여 아네트가 투하된 가스코뉴 지방과 자택이 있던 런던 사이 문화적 차이에 대한 대비가 전무했다. 가스코뉴에서는 모든 여성이 공공 장소에서 장신구를 착용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장신구 없이 투하된 아네트는 공공장소에 나타날 때마다 눈에 띄었다. 현지 사람들은 스프를 숟가락의 끝 부분으로 마신 반면 아네트는 수저의 측면으로 스프를 마셨고, 보폭이 현지 여성들 보다 컸다. 또한 아네트는 브뤼셀 거주 경험을 토대로 북쪽 프랑스 군정청 지역에서 내려왔다는 배경을 부여받았으나, 정작 위조 서류에는 국경 통과 도장이 없었다.
이런 사소한 찐빠가 있었으나 아네트는 방문 간호사(District Nurse)로 변장해 원활하게 활동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운반 업무를 병행했고, 주 3회 통신을 실시했다. 14kg 언저리의 통신 장치(Type B Mark II)를 자전거에 싣고 최대 50km에 달하는 거리를 이동해 통신을 하였으며, 이동 중 공수 투하에 사용할 수 있는 평지를 기록하는 임무도 병행하였다.
무선 통신 요원들은 네트워크의 일원들과 접촉을 최소화하도록 요구받았고, 위치 특정을 피하기 위해 통신 직후 거처를 바꾸어야 했다. 통신을 하기 위해서는 20m짜리 통신 와이어를 펼쳐야 했고, 콘센트나 차량 배터리를 전력원으로 사용했다. 아네트는 와이어를 숨기기 위해 주로 포도 밭에서 통신을 하였으며, 추적하기 더 힘들다고 여겨지던 차량 배터리를 선호했다(게슈타포는 블록마다 정전을 일으켜 통신원이 있는 블록을 파악하는 방식을 사용함). 해독한 암호는 가벼운 비단 손수건에 기록하였고, 이후 서류 가방에 든 4kg짜리 신형 통신 장치(Type A Mark III)를 지급 받았다.
‘루돌포’라는 요원의 배신에 의하여 체포 직전까지 갔으나, 자신의 몽타주가 그려진 현상 수배 포스터가 붙은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작전을 수행하였다. 지역 대장과 함께 이동 중 독일군 검문에 걸려 등에 총구가 겨눠진 상태로 추궁을 받았으나, 가짜 알리바이와 위조 서류로 독일 병사를 속이는데 성공하였다. 이때 통신 장비를 이동식 엑스레이 장비로 속여 넘긴 일화가 유명하다.
1944년, 연합군의 프랑스 상륙이 다가오자 통신량이 급증했고, 이에 따라 위험을 무릅쓰고 네트워크 본부에서 6개월간 일 3회의 통신을 시행했다. 이를 통해 해당 지역 레지스탕스를 위한 물자 수송을 지원했다. 또한 노르망디 상륙 당시 툴롱에 주둔한 독일 국방군 G그룹 주둔지의 통신선을 끊어 노르망디 해안으로 향하는 것을 막았다.
<아네트의 드레스와 핏자국이 묻은 서류 가방>
이후 6월에 노르망디 상륙 직후 본부가 있던 마을이 발각되어 도주하는 도중에 다리에 총상을 입었으나 탈출에 성공하였다. 이때 입고 있던 드레스와 피투성이 서류 가방은 대영제국 전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8월에 툴롱이 함락되자 지역 대장과 함께 승리 퍼레이드에 참가하였으며, 9월에는 샤를 드골에 의해 지역 대장과 함께 프랑스에서 쫓겨났다.
아네트는 당시 평균적으로 분 당 12 글자를 송신하던 다른 ‘피아니스트(무선 통신 요원)’와 다르게 분 당 22~28 글자를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송신할 수 있었으며, 13개월 동안 400통이 넘는 통신문을 런던으로 보냈다(총 발신 수 2위, 작전 시간 당 발신 수 1위).
전후 대영제국 훈장 5급(MBE), 레지옹 도뇌르 카발리에(5급), 프랑스 전쟁 십자상, 레지스탕스 훈장 등을 수여받았으며, 수.녀원에 맡겨둔 아이와 함께 런던으로 복귀하여 외교부 SOE부서 및 번역가로 활동하였다. F section 소속 퇴역 군인들 사이의 핵심 인물이 되어 바스티유 데이 모임을 주최하였으며, 특수부대 클럽(Special Forces Club)의 창설 멤버이다. 이후 재혼하여 더비셔에 거주하였고, 남편의 사망 이후 1997년에 요양원에서 사망하였다.
아니 혼자서 영화찍네 ㄷㄷㄷ
드골은 이런사람 왜 프랑스에서 추방햇노 - dc App
지역 대장이 나름 유명 인물이었는데 드골이랑 대판 싸우고 쫓겨남
저정도 공을 세워도 기사작위 안주네... - dc App
당시 레지옹 도뇌르나 대영제국 훈장 모두 3급 이상은 사실상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음. 근데 MBE니까 Dame만 아니고 일단 기사단원은 맞지 않음?
기사는 원래 귀족집안 출신이 아닌 이상 인생 특정시기 일시적인게 아니라 수십년 이상 업적 쌓아야 주는 느낌인듯 퍼거슨 감독마냥..
SOE다큐가 그 리얼리티쇼 형식으로 재현훈련하던 그 다큐인가? 거기서 참가자들 중에서 할머니가 높은 평가 받는 게 인상적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