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CIA 국장이라는 자리가 항상 랭글리 본부에서 근무하는 자리는 아니고 가끔 해외 출장을 나가기도 하지만 전직 CIA 고위공작관 잭 디바인이 말하듯이 "예전에는 [CIA 국장들이] 해외 출장을 자주 나가진 않았지... [오히려] 외국에서 그들을 방문하러 왔어."
원래라면 보통 그림자 아래에서 활동해야 할 CIA 국장이 지금의 번스 국장처럼 잦은 해외 방문에서 마치 국무부 고위 외교관들처럼 공개적으로 협상가, 외교 특사와도 같은 업무를 수행하고 다니는 것이 결코 평범한 일이 아님.
이는 바이든 행정부 구성원들이 외국 고위 인사에게서 받은 선물 비교같은 단적인 예시에서도 드러나는데, 지난 1년간 CIA 국장 윌리엄 번스가 받은 선물을 보면 18000달러짜리 아스트로그래프, 11000달러짜리 오메가 손목시계, 사우디 의례용 칼 등인 반면 국무장관 안토니 블링컨이 받은 선물은 오스트리아 외무장관으로부터 받은 600달러의 가치를 지닌 센트로파 프로젝트의 사진 세 장과 책 한 권 및 여러 아크릴 사진에 불과함.
The American Prospects의 다니엘 보그스와프가 지적하듯이 단순히 외국 인사들로부터 받은 선물로 미국 정치인들을 평가하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가 인터뷰한 국무부와 정보기관 직원들 사이에서는 여러 면에서 선물 차이가 다른 미국 정치인, 외교관, 외국 정부가 블링컨보다 번스를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음.
한 퇴임하는 국무부 인사는 직설적으로 "누군가가 샴페인을 마시기를 원하면 블링컨을 보냅니다. 브라질, 중동 또는 러시아에서 실제로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 (someone to actually fix shit) 이 필요하면 번스를 보내죠." 라고 말하기도 했음.
실제로 번스는 2023년 중국과 비밀 채널을 통해 관계를 순화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파견되어 중국 스파이 풍선 사건이 "사그라들었다"고 행정부에 확신시켰고, 국무부가 기자 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표명하자, 우크라이나 관리들과 비밀 회의를 하여 전략적 지원을 제공하면서도, 방위비를 지원하는 미국과 정보를 공유하기를 꺼리는 우크라이나 관리들에게 더 큰 투명성을 요구하는 임무를 조용히 맡았음.
또 국가 안보 보좌관 제이크 설리번이 사우디 왕세자 모하메드 빈 살만과의 회동에서 어색하게 자말 카슈끄지의 살해 사건을 꺼내 MBS가 그에게 고함을 치자, 아랍어가 가능한 번스가 돌아와서 상황을 수습해야 했음.
러우전 당시 고전하던 러시아가 전술핵 사용을 진지하게 고려한다는 사실이 여러 정보출처를 통해 확인이 되었을 때, 번스는 터키 앙카라에서 SVR 국장에게 핵무기 사용을 저지하려는 암묵적인 압박을 행사하고 온 것을 비롯해 몇 주나 몇 달 이후 공개적으로 밝혀지는 그의 해외 교섭, 해외 방문 사실들이 전임자들에 비해 언론에서 유난히 많이 볼 수 있었음.
번스의 CIA 아래서 일한 에이전시 공작관들은 대체로 번스가 국장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냈다고 하는 반면, 일부 전직 IC (미국 정보 커뮤니티) 출신들은 보통은 국무부에서 해결해야 할 일을 번스가 수행하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음.
여기서 이 글의 제목에 대한 답이 나오는데, 번스가 이렇게 바쁘게 해외를 다니며, —전직 CIA 공작관 더글라스 런던의 말을 빌리자면—국제분쟁에서 일종의 "위기 대응 소방수 (firefighter for the crisis de jour)" 역할을 하는 것은, 그가 어떤 야망이나 욕심이 있어서 국무부의 일까지 도맡아서 하는 것이 아닌,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팀의 무능에서 비롯된 점이라는 것임.
32년의 외교업무 (특히 대러시아) 경험이 있는 경력직 외교관이자 현재는 CIA 국장으로서의 임무를 맡아야 할 번스에게 블링컨, 설리번 같은 실무자들이나 바이든 대통령이 외교/국가안보 문제를 의지한다는 말인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번스의 CIA 국장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지금 이 글에서 설명하고 있는 그가 가지게 된 특이한 위치에서의 일을 모두 잘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 이런 의존성을 더 키운 것이 아닐까라고도 의심됨.
결국 결론을 내리자면 번스의 잦은 해외 출장의 이유는 그가 행정부 내 주요 인사들이 싼 똥/치우지 못한 똥을 모종의 사명감이든 무엇이 이유가 되었든 간에 해치웠어야 했기 때문이고, 또 그 일에도 비교적 능숙했다고 할 수 있음.
출처: https://prospect.org/world/2025-01-08-william-burns-cia-director-cooler-gifts-than-secretary-of-state/
https://www.nytimes.com/2023/05/09/us/politics/william-burns-cia-biden.html
https://www.justsecurity.org/97688/intelligence-diplomacy-cia-director-burns/
밥 우드워드, War (2024)
이 글에서 다룬 번스 국장의 잦은 해외 방문에 대한 잭 디바인의 의견에 대해 더 듣고 싶으면 팀 하우스 팟캐스트, "Chief Of The Directorate Of Operations For CIA | Jack Devine | Ep. 260" 2시간 31분 27초 또는 https://www.youtube.com/watch?v=rCIjS6UfNuE&t=9087s를 참고하기를 바람.
이 내용이 맞다면 팔자에도 없던 국제 소방수 노릇하는건데 좀 안타깝네ㅋㅋㅋㅋㅋ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