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지 이틀째 되는 날, 육류 가공공장을 운영하는 유리 카발료우(Юрый Кавалёў)는 군 입대 사무소에서 소집문자를 받았다.
그는 아침에 직원 45명을 불러모은 뒤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겠다. 자네들은 여기서 회사를 운영해줘.".
젊은 시절 배--달기사로 시작하여 정말 열심히 일한 끝에 번듯한 사업가가 된 그는 전쟁터로 향했다.
입대 사무소 앞에는 이미 수십 명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한 장교가 1종 대형 운전 면허증을 소지한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다. 유리를 포함한 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왔다.
이어서 장교가 “소수만이 할 수 있는 임무에 두려움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 있는가?”라고 물었다. 유리와 다섯 명의 남자가 다시 손을 들었다.
장교가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이 중에 냉동 탑차를 소유한 사람 있나?"
유리는 자신의 배---달 트럭이 그 요건에 부합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질 암울한 임무도 깨달았다.
그의 임무는 전투 지역에서 전사한(KIA) 군인의 시신을 후방으로 가져오는 것이었다.
유리는 2022년 2월 26일 키이우 전선에서 복무를 시작했다. 전쟁 초기에는 차량과 운전자가 심각하게 부족하여 유리는 혼자서 엄청난 양의 수송을 담당해야 했다.
유리는 가슴 아픈 장면을 이렇게 회상한다.
"전사한 군인의 아버지가 연석에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들의 시신을 인도받기 위해 찾아왔지만 절차 때문에 3일 동안 영안실에서 아들을 꺼내올 수 없었습니다. 그를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외국에서 온 기자들은 그저 자극적인 이야기를 찾아 다녔습니다."
이후 유리는 남부 전선으로 재배치됐고, 현재는 동부 전선에 있다. 아우디우카 근처의 전선에서 약 80km를 주행하여 전사한 군인의 유해를 드니프로 시로 운반한다. 그의 다른 동료들도 엄숙한 여정 속에서 전사자를 우크라이나 전역의 집으로 이송한다.
매일 오전 6시, 유리는 드니프로를 출발하여 200km를 달려 최전선으로 가서 휴대전화로 전송된 좌표를 따라간다. 그는 각 장소에서 전사한 군인을 수습한다. 4구의 시신을 인수한 그는 늦은 오후에 우울한 짐을 싣고 드니프로 영안실로 돌아온다. 때때로, 힘든 하루를 보낸 후 드니프로의 막사로 돌아와 잠이 들면 유리는 악몽을 꾸곤 한다. 꿈 속에서 뼈와 두개골들이 그의 머리 위로 소용돌이친다. 자신이 옮겼던 전사자가 꿈에 나타날 때도 있다.
수습 장소에서 유리는 전사한 군인들을 바디백에 조심스럽게 넣고 차량에 싣는다. 그는 사망자의 이름, 날짜, 전사원인이 적인 문서를 꼼꼼하게 작성하고 서명한다. 지역 지휘관도 공동으로 서명한다. 유리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묵묵히 다음 장소로 향한다.
도로에 구급차가 나타나자 유리는 차를 갓길에 세우고 행렬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구급차한테 통행 우선권이 있어요. 우리 모두 시간이 빠듯하죠. 죽은 자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인도하고, 시신을 땅으로 돌려보내고, 매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구급차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이송하잖아요"
유리는 자신의 직업이 주는 심리적 부담을 인정한다. 그는 블랙유머가 우울함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들 사이에는 이런 농담이 있습니다. '바디백을 잘 묶어두지 않으면 저녁을 거를 수도 있어' 하지만 계속 가려면 농담하고 웃어야 해요. 난 이제 우리가 얼마나 더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쳐한 상황의 현실, 그것을 회상하는 것조차 너무나 빠듯해서 가장 단단한 영혼조차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휴가 시간에 집에 있을 때 뉴스를 보면 눈물이 납니다. 교회에 가면 서서 울어요. 왜 그럴까요? 누가 알겠어요. 어쩌면 해방의 순간일 수도 있어요. 낮에 차에 혼자 있으면 운전하는 동안 두세 번 울 수 있어요. 혼자 있을 땐 모든 게 날 압도해요. 19살 밖에 안 된 소년의 시신을 인도할 때도 그래요. 그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야 해요. 가끔은 신분증이 없어서 전사자가 가지고 있는 편지를 통해서 신원을 파악하기도 합니다. 그의 딸이 '사랑하는 아빠, 빨리 돌아오세요.'라고 쓴 편지 같은거요.
유리의 책임에는 전사자 신원을 확인하는 것이 포함되는데, 이는 종종 도전 과제로 가득 찬 작업이다. 그는 이 과정을 기록한 사진을 공유한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재 3줌 - 시체 3구"였다. 각각의 비닐 봉지에 조심스럽게 모은 작은 재 더미 3개가 전부였다. 유리는 완전히 연소된 군용 차량에서 이 유해를 회수하여 다시 화장했다. 옷에 있는 주기한 이름, 인식표와 같은 것들로 신분을 구별하려고 시도했다.
어떤 군인은 몸이 절반 밖에 없었다. 머리와 가슴은 온전하지만, 몸의 아랫부분 전체가 내장과 피의 으깬 덩어리로 분쇄되었다. 일일부는 아예 식별이 불가능했다.
신원 확인이 어려울 때는 가능한 한 현장에서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근처 군인들이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거나 그의 신원을 알고 있을 수 있다. 적절한 문서가 없다면 이러한 중요한 정보는 영원히 사라질 수 있다. 유리는 최소한 군인의 부대 이름을 기록하고 가장 구체적인 정보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그는 발견된 개인 소지품(전화기, 반지 또는 기타 소지품)들도 수집하여 문서화한다.
유리는 한 번은 식별하기 어려운 죽은 군인을 인수받았다. 시신에는 전화번호가 적힌 노트가 있었다. 유리는 제일 위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고, 당황한 한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아내였을 지도 모르고 어머니나 여동생이었을 지도 모른다. 유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 군인의 이름을 물었다. 스피커 너머로는 흐느끼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사실 그는 유가족에게 전사 통지를 할 의무는 없지만, 다른 식별 방법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래도 결국 신원확인에 실패한 시신들도 많다. 이들은 실종자 명단에 오르고 시체는 영안실에서 "무명용사"라는 이름으로 보관된다. 몇 달 또는 몇 년 동안 지속될 수 있고,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는지, 포로인지, 죽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MIA는 그렇게 생긴다.
DNA 검사는 특정 시체의 신원이 의심은 가지만 유가족들도 못 알아볼 정도로 훼손 되었을 경우 사용한다.
유리는 휴가를 받아 처음 집에 돌아왔을 때 3일을 요양하며 적응했다.
"처음에는 녹아웃 상태에서 회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나중에는 평화로운 삶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그런 다음 비판하는 것을 멈추고 전선으로 돌아갈 때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집에 있어도 전선은 항상 당신과 함께 할겁니다."
우크라이나 군인은 연차 휴가 30일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많은 군인이 휴식을 취하는 대신 이 시간을 진료, 장비 수리 또는 동료 군인을 위한 자원 봉사 물품 정리에 사용한다. 유리의 경우 걸레짝이 된 냉동탑차 수리에 40,000 흐리우냐(1,100달러)를 썼다. 남은 월급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상이군인 단체에 기부했는데, 유리말고도 많은 군인들이 자발적으로 그리하였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국가 세금의 81%를 국방비로 사용하고 있다. 지자체 운영비는 나머지 19%에서 아주아주 조금 떼어져서 나온다. 과거 시민들이 받던 사회적 혜택은 너무나도 많이 축소됐다. 모든 것이 군대를 위주로 돌아간다. 살기 힘든 세상에서 서로 돕고 나누는 것만이 삶을 지탱해줄 수 있다.
최근에 유리의 친구가 그에게 새로운 탑차를 구매하는데 2만 유로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유리는 거절했다.
"이걸로도 충분해. 고장나면 그냥 고쳐서 쓰면 돼. 차라리 최전방에서 드론이 필요한 친구들한테 써."
어느 날, 유리는 젊은 전사자를 이송하기 위해 운전하고 있었다. 전사자의 아버지와 연락이 닿았는데 그 역시 인근 전선에서 보병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유리는 가는 길에 전사자의 아버지를 픽업하여 함께 현장으로 갔다. 전사자의 아버지는 신원확인에 도움을 줬고, 유리가 다른 전사자들을 싣는 것까지 도와주고 함께 드니프로도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부대는 아들의 장례식에 참가할 휴가를 신청하지 못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못했다. 그는 아들의 시신과 드니프로까지만 간 뒤 다시 전선으로 복귀해야했다.
돌아오는 길에 유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조금 더 빠른 속도로 운전했다. 그런데 갑자기 전사자의 아버지가 부탁을 했다.
"잠깐만, 기사양반. 천천히 가주시오"
유리는 당황하여 그에게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었다.
아버지의 대답은 가슴 아팠다.
"내 아들과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소. 서두르지 말아주시오.
지금이 이승에서 내 아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시간이라오. 부탁이오, 내 아이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게 해주시오.."

With Russia's invasion, the owner of a meat processing factory found himself fulfilling war's grimmest duty. He finds solace nowhere, but when the fallen appear in his dreams, they assure he did everything right.
euromaidanpress.com
대단한아저씨네
아니 근데 베달광고충새끼들 광고 존나했나 금지어 야무지게 박혀있네
아니 왜 똑같은 콘이 3번이나 눌린거야
먹먹하네...
뭔가 무섭다
신원 확인 하기 위해 전사자가 누구인지 알아가야 하는 게 제일 고통스럽겠네..
눈물남... - dc App
진짜 너무 고통스럽겠다.
개씨발 좆같은 푸틴 개새끼만 아니였어도 ㅅㅂ.. - dc App
언젠가 영화라든지 뭐든 수많은 대중에게 알려질 만한 일이 생겼으면 하네
마지막 부분 정말 눈물남.
무덤덤하게 읽어내리다가 마지막 문장에서 터졌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