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중국의 대표적 정치 지도자인 쑨원은 삼민주의(민적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를 제창하고 신해혁명을 주도하여, 중국과 대만 모두로부터 현대 중국의 국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그는 아시아 제(諸) 민족이 연대하여(대 아시아주의) 서방 열강에 대항하자고 주장하여 중국과 일본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대아시아주의'는 중국과 일본 중심의 아시아 연합 주장일 뿐, 두 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약소민족, 즉 한국과 베트남, 미얀마 등은 연합의 대상이 아니라 복속의 대상이란 인식을 보였다.
쑨원의 이러한 중화주의적 인식은 1921년 중국 남부 구이린에서 행한 연설에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중국의 영토로 말하자면 베트남, 한국, 미얀마, 티베트, 타이완 등은 중국의 속국이거나 속지였다. 요컨대 이들은 모두 중국의 영토였는데 현재 외국의 판도로 들어가서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주권을 상실하였다"고 말했다.
그는 죽기 1년 전인 1924년 일본 고베를 방문하여 고베고등여자학교에서 '대아시아주의'에 대해 강연하였는데, 그때도 '일본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민족들의 대연합'을 강조하였다. 이 연설 직후 한국 동아일보의 윤홍렬 기자가 쑨원을 인터뷰하였는데, 윤 기자가 "당신의 대아시아주의 주장은 한국의 실상과는 저촉되지 않는가?"라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 지배 청산을 강연에서 거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쑨원은 "물론 양립할 수없다. 그러나 나는 일본에서 한국 문제를 철저하게 거론하는 것은 회피하고자 한다"라고 얼버무렸다.
1925년 3월 쑨원이 베이징에서 사망한 직후 조선일보 주필 안재홍은 쑨원의 대아시아주의를 비판하는 논평을 실었다. 그는 "쑨원의 대아시아주의 주장은 워싱턴 회의 이후 모색되고 있던 영미 중심의 아시아 정책에 대한 중일 중심의 대응책으로 나온 것"이라며 "그의 민중적 대지도자라는 자격으로 보아 시의성을 잃는 경솔한 행동이었다"라고 질타했다.
결국 20세기 초 쑨원이라는 당대의 지도자조차 제국주의 여ㄹ강의 식민 지배 문제를 약소민족의 독립이라는 대승적 관점이 아니라 중화주의적 차별의식과 중국의 영토이익이라는 관점에서만 바라보았던 것이다.
출처: 중국은 북한을 어떻게 다루나, 지해범 저, 기파랑, 2020년, 55~56쪽
말이 아시아주의지 더 파고 들어보면 식민주의랑 별 다를바가 없음ㅋㅋㅋ사이좋게 한 파이씩 차지하자는건 지금 EU에서도 있을 수 없는일.
삼민주의엔 인권만 없는 줄 알았는데 애미도 없었너
그래서 국공내전에서 중공이 이긴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기도 하더라고 외부투사는 국민당이라고 공산당이랑 별 다를바없고 오히려 더 적극적일 거라고... - dc App
아니지 영원히 지들끼리 치고박게 만들어야 했음
장제스가 한국 독립 지지한것도 결국 깊은 속에는 결국 느그 우리 밑에서 놀으라는 계산이 없진 않았을거임 - dc App
100퍼지 - dc App
진시황이.인류 역사 제일 댕새끼지 춘추전국시대로 영원히 분열된상태로 갔어야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