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후기의병의 장기항전 전략과 전술
홍영기, 호남사학회
2015
1907년 중반이후 한말 후기의병은 일본 군경을 상대로 전선이 없는 전쟁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적어도 1만 5천명 이상이 희생되었다. 이때부터 약 2년 동안 일제와 싸운 의병의 규모는 연인원 14만 명이나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처참한 희생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는, 그 이전의 의병항쟁에 비하면 매우 이례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즉 그 이전의 의병항쟁은 전국적인 무력투쟁으로 규정하기에는 다소 무리한 면이 없지 않았으며, 1년 이상 장기항전을 이끌어가는 의진도 거의 없었다. 막대한 군자금과 병력을 동원하여 2-3개월 동안 준비하여 봉기했음에도 한달도 채 버티지 못한 의진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후기의병의 경우 전국에 걸쳐 수많은 의진들이 1년 이상 장기항전을 전개하였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의병항쟁과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이 글에서는 장기항전을 가능케 했던 후기의병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 검토해보았다. 물론 장기항전을 위한 의병의 근거지 문제를 천착한 연구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후기의병의 장기항전을 위한 전략을 거시적 관점에서 조망한 연구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이에 이 글에서는 후기의병의 장기항전 전략과 그것이 도출되는 과정과 의미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또한 후기의병의 장기항전을 가능케 했던 전술에 대해서도 선행 연구를 바탕삼아 그 특징과 의미를 밝혀보았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후기의병의 장기항전을 가능케 한 대표적인 전략인 국내외 산악근거지론의 내용과 그것이 제시되는 과정을 검토하였다. 지리적 조건과 의병활동의 경험에 따라 한반도의 중북부 지역에서 활동하던 후기의병 지도부는 백두산근거지론과 황해도 장수산근거지론을, 삼남지방에서 활동하던 후기의병 지도부는 지리산근거지론을 각각 추진했음을 밝혔다. 한편, 계몽운동 계열의 경우에도 국외에 근거지를 모색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로써 의병항쟁 계열과 계몽운동 계열을 불문하고 전국 각지에서 장기항전에 필요한 산악근거지론이 제시, 시도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후기의병이 제시한 근거지론은 백두산이나 지리산 등과 같은 험준한 산악지대를 장기항전의 무대로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장기항전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후기의병의 전술을 살펴보았다. 이들은 다양한 전술을 구사함으로써 투쟁역량을 강화하여 장기항전의 기반을 구축했음을 밝혔다. 즉, 후기의병은 정예의 의진으로 전환하기 위해 군사적 식견이 뛰어나고 사격술이 능한 해산군인과 산포수를 영입하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용감한 청장년을 선발하여 뛰어난 기동력과 엄정한 지휘체계를 확립하였다. 아울러 이들은 총기 개량과 신무기의 확보에 노력하였으며, 의진 간의 연합투쟁과 주민과의 유대를 강화하여 장기항전의 기반 구축에 기여하였다. 그 결과 후기의병은 압도적인 화력과 근대적 전투역량을 갖춘 일제 군경에 맞서 장기항전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 같은 후기의병의 전략과 전술이 장기항전을 가능케 하는 주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후기의병이 주목했던 산악근거지는 훗날 독립운동의 근거지로 적극 활용되었다는 점에서도 이들의 장기항전 전략이 적절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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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않네
산악전 정보글 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