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자강도
· 자강도 2부
· 자강도 1부

글자수 제한 파훼법을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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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마침내 다 접힐 즈음 희원이와 내가 달려서 군인을 덮쳤다. 10m도 채 안 되는 거리를 질주해서 나는 그의 허리춤을 잡고 바닥으로 꽂았다. 아픈 팔을 부여잡고 소리를 지르려 할 때, 희원이는 개머리판으로 얼굴을 찍었다. 하는 소리와 함께 발버둥도 멈췄다. 주위를 둘러봤다. 다른 애들은 어린애들을 엎드린 채로 이쪽을 못 보게 했다. 그 누구도 울지 않았다.

 

다행히 군복을 입은 사내는 숨을 쉬었다. 잠시 기절한 것 같다. 나는 그 녀석을 묶고 있는 동안, 재희와 경호는 집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시골에 가보면 볼 법한 집이었다. 한쪽에 축사도 있고 창고 같은 것도 보였다. 방문 하나, 하나를 열 때마다 긴장감이 돌았다. 빠른 수색을 마치고 모든 문은 열어둔 채, 재희와 경호는 나와서 밖을 경계했다.

 

나는 사내의 눈에 안대를 씌우고 노끈으로 팔과 목을 연결해 묶었다. 입에 재갈도 입에 물렸다. 지난번엔 제대로 하지 않아서 사단 본부로 이송할 때 여기라며 소리를 지르고 묶인 채로 몸싸움을 하고 경계병들을 죽이려 달려들어 방아쇠를 당겼던 기억 때문에 나만의 작은 습관이 생겼다. 그를 끌고 벽에 기대어 앉히고 군복 위를 더듬어서 소지품을 훑었다. 안에서는 담배꽁초 두 개, 생활 총화 수첩 하나 그리고 신분증 하나가 있었다.

 

이름

림 광 철

남녀별

남자

난날

주체 85. 00. 00

민족별

조선사람

난곳

평양 직할시 서포산구역 서포 0

사는곳

평양 직할시 서포산구역 서포 000

결혼관계

 

번호

온성 150000

주체   00. 00. 00

피형

O

 

평양? 평양 사람? 나는 즉시 워키토키를 켜서 소대장을 호출했다.

 

# 소댐, 언제 오십니까?

# 소대는 10분 내로 출발 예정

# 여기 평양 출신으로 보이는 사람 하나랑 어린 애들 셋, 있습니다.

# 평양? 씨팔 뭐고, 골 때리네 일단 알겠디.

 

평양 출신이 이쪽에 올 수 있을 리 없다. 평양 쪽에서 나올 길목에 아측 기갑군단과 병력이 포위해서 나올 수 없을 텐데어째서 여기에 갑자기 평양 출신 인물이 나오는가, 설혹 이 사람이 본인이 아니고 어디서 옷을 훔쳐 입더라도 말이다. 평양은 사방이 다 막혀있다. 앞뒤가 맞지 않아 고민할 때 소대장으로부터 다시금 무전이 날아왔다.

 

# 대희야 들리나? 사단본부 쪽에 문의하니까. 정보 분석 조에서 데리고 간다카드라. 지금 내랑 같이 출발할 것 같으니까. 더 깊이 들어가지 말고 거기서 대기하고 있그라.

# 건너오면 코너 꺾어서 바로 있는 주황 지붕입니다. 빨리 오십쇼. 이 새끼 턱 작살 나서

# 의무 애들도 필요하겠네. 일단 알겠다. 바로 간다.

 

옆에 엎드려 있던 어린 애들은 방안에 집어넣었다. 방으로 따라 들어가서 전식에 먹다 남은 초코볼로 회유하여 저 사람이 누군지 아는 사람인지 물어봤는데 본인들은 여기서 안 살고 여기보다 더 아래에 사는데 전쟁 때문에 부모도 없이 올라왔다고만 말했다. 마을에 처음 왔을 때 저 아저씨 혼자서 덩그러니 남아있었다고 했다.

 

언제쯤 왔는지 다시 물어봤다. 강 때문에 길이 막혀 돌아온다고 엊그제 도착했다고 했다. 다른 군인이 있는지 물어봤다. 엊그제 올라올 때 군인들이 있었는데 마을 안에 먹을거리 다 가지고 올라갔다고 말했다. 지금은 있느냐 물어보니 오늘 새벽까지도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향산 애들이다. 엊그제 올라갔구나. 솔직히 안심했다. 애들은 방에서 못 나오게 했다. 희원이가 덩치가 커서 애들을 잘 다룰 것 같았다. 그래서 희원이 보고 애들 이제부터 방에서 못 나오게 하라고 했다. 애들 배고프다 하면 주라고 파운드케이크 잘게 부슨걸 희원이에게 건냈다.

 

때마침 무전기 소리에 깼는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앞이 안 보이고 목이 안 움직이니 무서운 건지 발을 막 움직여서 모랫바닥에 자국이 생겼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어이, 임광철씨, 가만히 있으세요. 또 턱주가리 작살나고 싶으세요?”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가만히 있었다. 고민하는 듯했다. 안대로 감싼 천은 얇아서 햇빛과 실루엣이 들어온다. 그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일까. 10여 분쯤 흘렀을까. 발전소 옥상에서 경계를 서던 경호에게 무전이 왔다.

 

# 김 하사님 들리심까?

# 잘 들린다. 와이

# 지금 아측 소대로 추정되는 사람들이랑 렉스턴 두 대랑 같이 들어오고 있슴다.

# 우리 애들일 거야 너도 내려와서 같이 이쪽으로 와라.

# 알겠슴다.

 

물소리에 가린다고 가려지는 렉스턴 소리가 아니었다. 밖으로 잠깐 나가서 연결된 다리를 봤다. 30~40명 되는 애들과 렉스턴 두 대가 들어오고 있었다. 담배 한 대 태우고 싶다는 생각이 기가 막히게 났다. 어느덧 군홧발 소리가 들리고 렉스턴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러더니 문 앞에서 멈춘 듯, 브레이크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밖에서 대위 하나랑 소대장, 그리고 처음 본 상사 몇이 다가왔다.

 

대위는 내게 다가와 대뜸 반말로 말했다.

 

어이 하사, 이 새끼야? 평양 출신이라 그런지 턱주가리 하나 깨져도 곱상하게 생겼네? 우리가 데려간다?”

예 알겠습니다.”

나와 애들이 멀뚱멀뚱 가만히 있으니 다시 말했다.

 

너 뭐하냐? 안 태우고? 일머리는 존나게 없어요.

 

다 쏘고 도망칠까. 소대장 눈치를 한번 봤다. 그러더니 뒤에서 고개를 살짝 저었다. 겨우겨우 분위기 맞춰서 그를 일으켜 세우고 끌고 나가서 레토나 안에 실었다. 레토나 안에는 담배 전 내가 심하게 나고 중사 하나와 운전병 하나가 전부였다. 흔한 탄약 박스 하나 안보였다.

 

대위는 피식 웃으며 가진 짐이 없는지, 내게 다 내놓으라고 이야기했다. 분을 삭였다. 가지고 있던 담배꽁초랑 생활 총서 수첩, 신분증을 건네줬다. 대위 저 새끼는 언젠간 총 맞아 죽을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차에 올라타려는 찰나 나는 그의 팔목을 잡고 말했다.

 

어린 애들도 있습니다. 애들은

 

대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끊고 이야기했다.

 

어린 새끼들은 뭐 어쩌라고. 보육원이라도 하게? 느그들 알아서 해, 우리가 중요한 건 저 새끼니까. 그리고 팔 놓고 씹탱아. 어딜

 

팔을 툭 치고는 차에 올라타서 왔던 방향으로 모래바람만 일으키고 가버렸다. 소대장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듯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저 개새끼저 카이까 이 판국에 소령도 못 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