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화전류의 위력은 조선 초기부터 확실하게 인정을 받고 있었다. 북방 방비에 주요한 장비로 늘 거론되던 것이 화전류였고 그 위력에 대해서도 '장전과 발사가 어렵지 일단 쏘면 끝장납니더.'였다.
이런 화전류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함상에서 전투를 벌이는 해전.
일반 야전에서 화전류의 단점으로 꼽히는 것이 '병사들이 많이 들고 다니기 어렵다.(보통 병사 개인당 최대 10발 정도였다고 함)'와 '한 번 쏘고 나면 다시 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그 사이 적과 맞부딪히면 그 때부터는 영 쓸 일이 없어진다.'였음.
다량의 병기를 싣고 움직일 수 있는 기본적인 적재공간이 보장되고 또한 적과 근접해서 육박전이 벌어지기가 육상전보다 훨씬 힘든 함상전이라는 해전의 특성이 이러한 단점을 아주 깔끔하게 커버 쳐주었던 것.
조선 수군의 전투방식은 임진왜란사에서 보이듯이 약 200보 내에서 첫 사격을 시작하는 중근거리 사격전이었는데, 적선과 거리를 좁히며 압도적인 화력으로 전투원들을 살상 혹은 제압하고 그렇게 제압된 적 선박에 불을 질러 마무리하는 방식이었다. 이 전술을 거의 킬링머신 급으로 구사한 것이 바로 충무공인데, 이러한 전술 자체는 이미 임진왜란 이전에도 확립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전류가 수군에게 쏠쏠한 쓰임을 보였던 것이 바로 이 지점.
사거리 안 쪽으로 적 선박과 거리가 좁혀지면 조선군은 총통과 화살을 비오듯이 날려 갑판 위의 적병들을 거의 병신으로 만들고 시작했다. 문제는 마무리.
당시 조선 수군이 갖춘 화력으로는 적 선박 자체를 두 쪽 내서 격침시키는 것까지는 무리였고 적 전투원들 또한 화려하게 아작나기는 해도 갑판 아래로 몸을 숨겨 버티는 경우가 많았다.
때문에 어찌됐든 적선을 가라앉히거나 완전히 전투불능 상태로 마무리를 지어야 했는데, 이 때 조선군이 때려 박던 게 바로 화전이다.
화전의 특성이 진짜 탄체가 폭발하는 큰 물건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화약 추진체가 달려 열과 불꽃이 발생한다는 것인데, 그러다 재수 없으면 바로 함상화재로 이어지는 거였다. 조선 수군은 바로 이걸 이용해서 화전을 적선에 아주 끼얹다시피 때려 박았다.
그렇게 운이 좋으면 그대로 화재발생과 함께 적선은 꼬르륵하는 거고 그게 아니더라도 열기와 불길 때문에 선박 아래 존버하고 있던 적 선원들이 으아아아 하고 튀어올라와 마무리로 조짐 당하곤 했다.
화전이 없으면 진짜로 짚단이나 나무토막, 표창 같은 것에 불을 붙여 적선에 던져넣었어야 했는데, 그러면 당장 우리 배에도 화재의 위험이 커지고 무엇보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적선에 접근해야 했다. 화전은 그렇게 위험하게 적선에 달라붙지 않아도 거리를 두고 조질 수 있으니 수군에게는 아주 쌈@뽕한 피니쉬기였던 것.
그랬으니 충무공께서도 화전은 아주 정말 사랑하셔서 매 전투마다 니뽄 수군한테 아낌없이 얹어주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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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다화전 쏘는거 개간지겠네
유폭 어떻게 안 냈냐
조선 초기에 실제로 신나게 왜구 다 잡아족쳐놓고 돌아오는 길에 적재해둔 화전에서 불이 나 '애미 조졌슴다.'한 사려가 있음. - dc App
ㅋㅋㅋㅋㅋㅋㅋㅋ
으아악 시발 조선놈들은 대들보를 뽑아다 쏩니다
조선 화전은 주화나 신기전 같은 게 아니라 진짜 화약 뭉치 달아서 쏘는 화살이다.
첫짤에 나온 건 로켓식으로 발사되는 건 아니고 일종의 폭탄화살 같은 거임?
ㅇㅇ 유탄임ㅋㅋ - dc App
저것들 위력 ㄹㅇ 궁금하네 현대 40mm유탄정도는 나왔으려나
폭탄화살 쌈뽕하긴하네
수전에선 단점이 없네 육지에선 안오면 그만인데 왜군 수군은은 무조건 접근 해야함
임란 조선수군이 점점 베테랑이 되면서 나중에 가면 오히려 먼저 일본군 배에 올라타서 백병전 걸었다고 어디서 봤는데 진짜임?
점점 베테랑이 된 게 아니고 본문에 썼듯이 조선수군의 기본 전술 자체가 중근거리 접근전임. 유효 사거리 내로 최대한 잡아넣어서 일제사격으로 병신 만들고 시작하는 게 조선 수군. 당근 조선 수군이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장면이 많았고 정말 해볼만 하다는 상태가 아니면 오히려 으아악하면서 거리 벌리려고 빤쓰런 치는 쪽이 일본 수군이었음. - dc App
임란 당시 해전은 보통 이런 식의 그림이 많았는데, 1. 적을 포착한 조선 수군이 끼얏호우하면서 거리를 좁힘. 2. 일본 수군은 어떻게든 도선백병전 그림을 내기 위해 여러 척으로 둘러싸고 접선하려 애를 쓰거나 그게 안 될 거 같으면 죽어라 빤쓰런 침. 3. 보통 조선 수군에게 따라 잡혀서 개작살 남. 4. 어떻게 잘 해서 조선군의 살인적인 화망을 뒤집어 쓰고서라도 달라붙는 데 성공하기도 함. 5. 보통 그래도 일본 수군이 개작살 남. 6. 지휘관이 원균이다???? 조선 수군이 개작살 남. - dc App
조선군이 아예 적극적으로 도선백병전까지 걸어버리는 사태는 일본 수군에게 있어서는 이미 재앙임. 조선군이 자신있게 넘어올 정도로 도망도 못 치고 이미 이쪽 선원들은 개작살이 나 있는 상태라는 거니까. 일본 배에 잡혀있던 조선민들이 구출되고 했던 사례가 바로 그런 사례. - dc App
조선수군의 백병전 능력이 일본수군을 능가한게아니라 조선수군이 백병전을 먼저 걸 정도로 일본수군이 너덜너덜해 진 경우가 많았다는거구만
근데 지네가 먼저 조선 선박에 도선해서 백병전 걸었다가 역으로 털려서 내몰리는 경우도 있는 거 보면 전반적으로 조선 수군이 백병전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다는 얘기도 틀린 건 아님. - dc App
이게 아무래도 한번 백병전 휘말리면 바다에 풍덩해서 뒤지는 거 말고는 어디 도망칠 구석도 없는 제한된 공간이라는 특성 때문에 평상시 조선군대로 사기가 무너져 와르르하는 것도 아니고 이판사판 죽기살기로 맞섰던 듯. - dc App
예전에 봤던 글에 명나라군인가? 제 3자가 조선수군이 일본수군보고 끼얏호 외치면서 기습하고 적 수급 파밍후 적선 불 태우고 유유히 진지로 돌아갔다는거 보면 나름 맞는 이야기인듯
사족인데 본문에 나온 표창은 투창임. 조선대에는 투창을 표창이라 불렀음
일본인이 근대에 상상으로 그린 그림하고 해방이후 상상으로 복원한 현대 그림이 니 근거임? ㅋㅋ
그게 근거겠냐 똘박년아 - dc App
화전을 활시위로 당겨서 쏘는 그림 당당하게 올려놓고 꺼드덕거리면서 사거리가 어쨌니 위력이 어쨌니 조선장수 빙의한척 하는게 x같다 이거에요
아래 그림은 그래도 화차같은거 있네
짱깨가 쓴 무기도 조선이 썼을거라고 망상하고 그린 그림임 애초에 임란시절 수군이 왜 조선후기 소위 '포졸복'을 입고있누?
61게이 많이 아파보이노.. 힘내라
첫번째 그림과 두번째 그림의 제작시기가 다름. 첫번째 그림은 에도시대 일본, 두번째 그림은 20세기 한국.
첫번째는 그림체만 봐도 중세의 작품.
두번째 그림은 박정희시절에 흔히 그려진 색감.
아이구 우리 유동이 왤캐 화났어. 부모님께 한소리 들었니 - dc App
우리게이는 20세기가 에도시대인 지구에서 왔노? ㅋㅋ 첫번째그림이 언제쩍 그림인지는 아는건가?
왜 애 기를 죽이고 그래.. 얘는 그냥 "난 이 그림이 후대에 그려졌다는 걸 꺼무위키에서 봤다" 를 자랑하고 싶은 거니까 그냥 오구오구 해주면 됨
불화살로도 가능한거아닌가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