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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vetolik Dragačevac (1883/04/15 ~ 1942/07/09)



1차대전참전용사 출신인 스베톨릭 드라가체베츠는

1941년 3월 말 유고슬라비아에 대한 추축국 의 침공 전날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에게

위협적인 편지를 보낸 세르비아의 법 집행관이었음.


1941년 3월 25일, 유고슬라비아와 추축국 간의 긴장이 고조되어 결국 추축국의 유고슬라비아 침공으로 이어지던 당시,

드라가체베츠는 히틀러에게 보내는 위협 편지를 타이핑을함.


추축국의 침공, 점령 및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 드라가체바츠는 게슈타포에 체포 되어 베오그라드 로 압송되어 심문을 받음.


심문 중에 드라가체바츠는 세르비아 민족주의 열의와 과도한 음주 로 인해 그 편지를 썼다고 말함 .

그는 이후 그라츠 에 수감되어 마우트하우젠 강제 수용소 로 이송되었으며 , 1942년 7월 복막염 으로 사망함.


다음은 히틀러에게 보낸 편지 원문.


Нит правде прекинут је. Зацарила обест и сила. Велики тлаче мале и у својој осионости не познају Бога; немају душу. Крвожедни Хитлер хита да ни једна њива на ово земаљској кугли не остане засејана јадом и чемером. Ни наша напаћена Отаџбина није поштеђена. Пружамо ти своју поштену руку али ти хоћеш и срце. У жељи да освајаш и тлачиш ти нам газиш оно што нам је кроз сва робовања и кроз векове било најсветије газиш нам слободу и част газиш нам понос. Теби Хитлере; кајинов сине ми деца великих отаца и дедова узвикујемо доста. Не слушаш ли наићићеш на бодре мишиће наше. Пролићемо ти крв и ногом ти аждајо стати на врат да се не дигнеш. Упамти да нас је можда Господ Бог одредио да код нас добијеш одмазду за сва недела. Упамт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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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실이 끊어지고, 오직 오만함과 폭력이 만연하고나.

힘쌘자 들은 약한자들을 억압하고, 오만함 속에서 신을 무시하나니.


너희에게는 영혼이란것이 존재하는것인가.

피에 굶주린 히틀러는 세상 모든 들판을 비참함과 슬픔으로 채우려고 서두르고 있다.


우리 조국도 예외는 아니니, 우리는 너희에게 정직하게 손을 내밀지만, 너는 우리의 전부를 원하는구나.

정복하고 억압하려는 욕망으로, 너는 모든 세월의 시대 동안 우리에게 가장 신성했던 모든 것을 짓밟았다.


너는 우리의 자유와 명예를 짓밟고, 우리의 자존심을 처참히 짓밟았다.

히틀러에게, 카인의 아들, 위대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자손들인 우리 세르비아 민족은 외친다.


그만하라! 네가 듣지 않으면, 너는 우리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니라.

우린 너희들의 피를 흘리게 하고 용의 다리로 너희의 목 위에 올라 서서 네가 기필코 일어설 수 없도록 할 것이니라.


어쩌면 신께서 너희의 모든 잘못에 보복할수 있도록 우리를 선택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곱씹어 기억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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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 편지는 독일어로 번역되어 총통 사무실에서 나치당의 정보부서와 나치 친위대로 전송됐음

5월 16일, 히틀러에 대한 가장 격렬한 모욕과 비난을 퍼부었단 이유로 체포명령이 떨어졌고


6월 9일 게슈타포에 의해서 체포됐음.


그리하여 그는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힌 최초의 세르비아 파라친 사람이 되었음.

드라가체베츠는 베오그라드로 끌려가 게슈타포에게 심문을 받았는데,


게슈타포는 그가 반파시스트 조직의 일원인지, 그리고 그가 그 편지의 유일한 작성자 심문을 하게됨

그는 술김 + 민족주의적으로 편지를 썼다고 말했고


나치당 정보부서에선 드라가체베츠를 제3국의 강제수용소로 추방할것을 요청함.

7월 4일, 드라가체베츠는 오스트리아 그라츠 의 감옥에 도착하여 그 후 6개월을 보냈음.


1942년 1월 23일, 그는 마우트하우젠 강제 수용소 에 도착하여 수감자 번호 3,109를 받았고

그는 1942년 7월 9일 마우트하우젠에서 복막염 으로 사망했고 그의 유해는 화장되었음.


그의 죽음은 마우트하우젠 수용소 행정부가 베오그라드에 있는 나치 본부에서 드라가체베츠의 아내 옐레나에게

그의 죽음을 알리는 전보를 보낸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