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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I. 적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에 대하여




1.

코리올라누스는 자신의 유배에 대한 복수를 전쟁으로 이루려 했을 때, 로마인들의 화합을 깨뜨려 그들의 단결을 무너뜨리기 위해 귀족들의 땅은 공격하지 않고 평민들의 땅을 불태우고 약탈하는 방법을 택했다.


*489 B.C. Cf. Livy II.XXXIX.5‑8; Plut. Coriol. 27.


2.

한니발은 자신이 파비우스의 명성이나 전략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의 명예에 흠집을 내기 위해 다른 모든 땅은 황폐화시키면서 그의 땅은 남겨두었다.

이에 맞서 파비우스는 자신의 재산 소유권을 국가로 이전하여 고결한 인격으로 동료 시민들의 의심을 받지 않도록 했다.


*217 B.C. Cf. Livy XXII.XXIII.1‑8; Plut. Fab. 7. Polyaen. I.XXXVI.2
*Plutarch to Coriolanus (Plut. Cor. 27.3)


3.

파비우스 막시무스의 다섯 번째 집정관 임기 동안, 갈리아족, 움브리아족, 에트루리아족, 삼니움족이 로마 민족에 대항하여 동맹을 결성했다. 이 부족들에 대항하여 파비우스는 먼저 아펜니노 산맥 너머 센티눔 지역에 요새화된 진영을 건설했다.

그런 다음 로마 시를 지키고 있던 풀비우스와 포스투미우스에게 군대를 이끌고 클루시움으로 이동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두 지휘관들이 명령에 따라 이동하자, 에트루리아족과 움브리아족은 이에 맞서 자신들의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철수했고, 파비우스와 그의 동료 데키우스는 남은 삼니움족과 갈리아족 군대를 공격하여 격파했다.


*295 B.C. Cf. Livy X.27.


4.

사비네족이 대규모 군대를 일으켜 자신들의 영토를 떠나 우리 (로마) 땅을 침략했을 때, 마니우스 쿠리우스는 비밀 경로를 통해 그들의 땅과 마을을 공격하여 여러 곳에 불을 질렀다.

사비네족은 자신들의 마을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즉시 철수했다.

그렇게 해서 쿠리우스는 그들이 지키고 있던 곳이 공백으로 인해 방어되지 않고 있는 틈을 타 황폐화시키는 데 성공했고, 그리하여 교전 없이 그들의 군대를 후퇴시킨 후 조금씩 섬멸했다.


*290 B.C.


5.

티투스 디디우스는 한때 적은 병력 때문에 불안했지만, 기다리고 있던 증원 군단이 도착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전쟁을 계속했다.

적이 증원 군단을 공격할 계획이라는 것을 알고 병사들을 소집하여 전투 준비를 명령하고, 고의로 포로들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포로 몇 명이 탈출하여 부족에게 전투가 임박했다고 보고했다.

전투가 일어날 것이라 예상하고 전력을 분산시키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적은 매복해 있던 사람들을 철수 시켜서 증원 군단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포기했고, 그 결과 증원 군단은 아무런 방해 없이 안전하게 디디우스의 진영에 도착했다.


*98‑93 B.C. 스페인에서.


6.

포에니 전쟁 중에 일부 도시들이 로마인, 카르타고인들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기로 결의했지만,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자신들이 준 인질들을 되찾고 싶어서, 로마에게 이웃들 사이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며 로마의 관리들이 와서 진압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를 위조하고 꾸몄다.

로마인들이 관리들을 보냈을 때, 그 도시들은 관리들을 맞인질로 붙잡아두고 자신들의 인질들을 돌려받을 때까지 그들을 돌려주지 않았다.




7.

카르타고가 패배한 후, 안티오쿠스 왕은 한니발을 숨기고 로마에 대항하는 방법에 대해 한니발의 조언을 이용했다.

로마 사절들이 안티오쿠스에게 보내졌을 때, 그들은 한니발과 자주 회담을 가졌고, 그 결과 한니발은 왕에게 로마와 협력관계를 가졌다며 의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뛰어난 지략과 전쟁 경험 때문에 왕에게 매우 호감을 사고 유용했지만 말이다.


*192 B.C. Cf. Livy XXXV.14; Nep. Hann. 2.


8.

퀸투스 메텔루스가 유구르타와 전쟁을 벌일 때, 그는 왕을 배신하고 자신에게 넘겨주도록 보내진 사절들에게 뇌물을 주었다. 이후 다른 사절들이 왔을 때도 똑같이 했고, 세 번째 사절단에게도 같은 정책을 취했다.

그러나 유구르타를 포로로 잡으려는 그의 노력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 메텔루스는 왕이 산 채로 자신의 손에 넘겨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많은 것을 성취했는데, 왕의 친우들에게 보낸 메텔루스의 편지가 가로채졌을 때, 왕은 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처벌했고, 이렇게 조언자들을 잃은 왕은 앞으로 어떤 친우도 확보할 수 없었다.


*108 B.C. Cf. Sall. Jug. 61, 62, 70, 72.


9.

가이우스 카이사르는 어느 날 물을 구하러 간 병사를 붙잡아 심문하는데, 심문 내용은 아프라니우스와 페트레이우스가 그날 밤 진영을 철수할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적의 계획을 방해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군대에는 혼란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카이사르는 저녁 일찍 진영 철수 신호를 울리도록 명령하고, 노새들을 몰고 소음과 고함 소리를 내며 적의 진영 앞을 지나가도록 지시했다.

카이사르가 진영을 철수한다고 생각한 그의 적들은 카이사르가 바라던 대로 그 자리에 머물렀다.


*49 B.C. Cf. Caes. B.C. I.66.


10.

어느날 한니발에게 증원군과 보급품이 오는 도중에, 스키피오는 이를 차단하기를 위해 미누키우스 테르무스를 먼저 보내고 이후 자신이 지원하기로 계획했다.


*202 B.C. Cf. Appian Pun. 36.


11.

아프리카인들이 시라쿠사의 폭군 디오니시우스를 공격하기 위해 대규모로 시칠리아로 건너갈 계획을 세웠을 때, 디오니시우스는 여러 곳에 요새를 건설하고 수비병들에게 적이 오면 항복하라고 명령한 후, 적이 물러가면 비밀리에 시라쿠사로 돌아오도록 지시했다.

아프리카인들은 자신들이 점령한 요새에 수비대를 주둔시켜야 했었고, 이렇게 하여 디오니시우스는 상대방의 군대를 자신이 원하는 물량으로 줄인 후, 전력 차이가 거의 대등한 상황이 되자 자신의 군대를 집중시키고 상대방의 군대를 분산시킨 후 공격하여 격파했다.


*396 B.C. Cf. Polyaen. V.II.9.


12.

스파르타의 아게실라우스가 티사페르네스와 전쟁을 벌일 때, 그는 기병이 강한 적에 대항하려면 산악 지대에서 맞서야만 더 유리하게 싸울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카리아로 향하는 척했다.

이러한 목적을 알리고 티사페르네스를 카리아로 유인한 후, 그는 즉시 적의 왕국의 수도가 있는 리디아를 침공하여 그곳의 지휘관들을 격파하고 왕의 보물을 차지했다.


*395 B.C. Cf. Xen. Hell. III.IV.20; Plut. Ages. 9‑10; Nep. Ages.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