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적 의미에서) 경제적인 논리가 강하게 작동했기 때문임.

일단 서방 연합군도 티거 전차 등이 존재를 이미 알고 있었고 성능상 우열 문제도 잘 인식하고 있었음. 이미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티거를 노획해서 분석을 해봤고 개쩌는 물건이란 걸 잘 알고 있었음.

tmi. 이 때 노획한 걸 복원한 게 퓨리에서 나온 티거 전차임.

tmi. 이 전차 노획된 과정도 생각보다 김 빠지는 이야기인데 독일군 티거 전차와 영국군의 처칠 전차가 교전했는데 처칠의 6파운더 주포 쳐맞고 포탑이 고장나는 바람에 독일군이 유기한 걸 노획했음.

서방 연합군은 티거 전차를 개쩔지만 한줌단으로 생각했고 현재 서방 연합군의 무기 체계로 감당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판단함.

그러면서도 대응 전력 확보하는데 나름 신경 써서 영국군은 자신들의 17파운더를 탑재하는 셔먼 파이어플라이와 아킬레스 대전차 자주포(울버린 대전차 자주포의 주포 교체 버전)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며 자국산 전차의 주포도 6파운더에서 75밀 주포로 교체했음. 미군의 경우에는 3인치 주포를 탑재한 울버린 대전차 자주포를 개발 및 배치하고 셔먼의 주포를 76밀 주포로 개량한 버전을 도입하면서 90밀 주포를 탑재하는 신형 전차 개발도 서둘렀음.

문제는 독일군의 티거 및 판터가 한줌단 치고는 많았다는 점, 그리고 통계상으로는 대응 전력을 갖췄다 해도 적의 중전차대대가 투입되는 위치와 시점에 맞게 적재적소로 바로 투입되는 게 아니었단 점이었음.

연합군에게 다행이었던 건 수가 많긴 해도 한줌단이었다는 점임. 1944년 노르망디 상륙 이후 서방 연합군에게 위협이 되었던 유의미한 독일군 기갑 전력은 무장친위대 101, 102 중전차대대(티거 1 중심 편제)와 기갑교도사단(판터 위주 완편)이었고 실제로 이들 전력이 연합군에게 큰 피해를 준 것도 사실임. 하지만 숫적 열세, 히틀러의 똥고집 등으로 인해 캉 전투, 팔레즈 포위전 등을 거치며 서부전선의 독일군 기갑전력은 말 그대로 센 강 앞에서 전멸당함.

노르망디 전역에서 연합군은 기갑전력 기준으로 2:1 정도의 교환비를 보여주었는데 연합군이 공격측인 입장을 고려하면 아프긴 한데 감당 못할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후에도 영국군은 셔먼 기본형/크롬웰 순항전차+셔먼 파이어플라이 조합, 미군은 셔먼 76밀 주포 버전으로 열심히 버티게 됨.

여기까지가 최고 사령부 입장임.

그러면 일선 장병 입장에선?

똥별 개씹새끼들의 개쌉소리지.

전차병 입장에선 아직 경험 쌓이기 전이라 쫄려 죽겠는데 저 멀리서 주포 처럼 생긴 것만 보면 전부다 티거 같고 쳐맞으면 뒈지니 우리가 이기고 있네 어쩌네 교환비가 어쩌네는 전부 개소리처럼 보였음.

tmi. 당시 독일군이 투입한 4호 전차, 티거, 판터 모두 주포에 머즐브레이크를 달고 있어서 주포 꼬다리만 보이면 "타이거 전차다!"를 외치며 패닉에 빠지기도 했음.

물론 사령부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었음.

서방 연합군이 당장 내놓을 카드 중에 17파운더 말곤 효과적인 물건이 없었음.

물론 미군이 76밀와 3인치 포를 준비하긴 했는데 HVAP/APCR을 만들고 나서야 독일군 신형 전차를 확실히 관통할 수 있었는데 수량이 부족해서 1944년 말에도 넉넉하게 보급을 못해줬음. 그래서 미군은 M36 잭슨/슬러거 대전차 자주포와 90밀 포를 전선에 배치해서야 대구경포의 깡뎀으로 독일군 전차들을 상대할 수 있게 됨.

어쨌든 서방 연합군은 노르망디에서 서부 전선의 독일군 기갑 전력을 전멸시켰고 덕분에 프랑스에서 독일 사이의 공간에서 서방 연합군의 공격을 지연시킬 수 있는 건 연합군 자신의 보급 상황 뿐이었음.

tmi. 1944년 마켓가든에 등장한 독일군 기갑 전력은 동부 전선 패잔병이 중심이었음.

그래서 1944년 겨울 아르덴에서 독일군이 영혼의 한방을 노렸을 때도 동부전선에서 기갑 전력을 빼와야 했고 그나마 성과 없이 말아먹으면서 서부전선과 동부전선 양쪽에 구멍이 뚫리는 결과를 맞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