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zero), 즉 0식 전투기는 일본의 개국 2600년이 되는 1940년에 생산되었다고 해서 마지막 숫자인 영을 따서 제로전투기로 명명하게 되었다. 일본인들이 제로전투기에 대한 추억과 자랑스러움이 깊은 이유는 젤전투기가 그 당시 가장 빠른 전투기였고 10시간을 비행해도 끄떡없는 '사가에'라는 공냉식엔진 덕분이었다. 1937년 일본해군은 호리고시 엔지니어에게 상식을 뛰어 넘는 우수한 전투기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고 전투기의 중량을 줄여나가는 점에 중점을 두고 세계 최초로 꼬리날개 부분에 섬유소재를 사용하여 기동력이 뛰어나고 가벼운 전투기를 만들어 내었다. 제로전투기의 놀라운 첫 소식은 미국의 진주만 공격 이전의 중국 전선에서 들려왔다. 1940년 9월 13일, 13기의 제로전투기가 기지로부터 700km나 떨어진 중국의 충칭까지 진격해 단 1기의 손상도 없이 중국군의 전투기였던 소련제 I-16과 I-153 27기를 전부 격추했다는 승전보가 날아들고부터다. 그 이후 미국과 영국의 전투기였던 P-39, P-40, F4F, F2A, 허리케인 등도 제로전투기를 당해내지 못했다.


 미국의 전투기가 도저히 따라잡기 힘들게 별도의 기름통을 전투기 배에 달고 장거리 출격을 하고 20mm 기관포를 쏘아대니 제2차 세계대전 전반부였던 1942년까지 무적의 전투기의 위용을 과시했다. 이런 전투기에 골머리를 앓던 미국은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과 병행해서 수행했던 알류산열도 작전에서 손상이 되지 않은 제로전투기를 나포하게 되었다. 제로전투기의 구조를 철저히 분석한 결과 가벼워서 기동력은 뛰어나서 상승력은 뛰어나 급강하에 취약하다는 점을 파악하고 직접교전을 할 때는 제로전투기의 위에서 기관포를 쏘아대면서 무적의 제로전투기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미국 전투기에 딸려있는 기관총의 탄환을 좀 더 큰 것으로 대처하여 한 발만 제대로 맞아도 제로전투기가 추락해 버리는 약점을 간파하여 전쟁말기에는 제로전투기가 본래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고도로 숙련된 조종사들도 많이 잃게 되니 속수무책으로 괴멸되기 시작한 것이다. 



김경민 교수의 일본자위대 그 막강한 군사력, 김경민 저, 박영사, 2019년, 207~20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