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은 아니고 그냥 지인이었고 몇해전에 돌아가셨음.



1926년생이고 상당히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심. 아버지가 은행에서 근무하셨다고 함


중학교 때 학교에서 글라이더 교육을 시켰는데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가 항공병력을 양성하려고 중등교육에 글라이더 과정을 넣음) 여기서 초급 글라이더를 잘 타서 3급 활공사 면장 따심


대학교는 경성공업전문학교를 들어갔는데 들어간지 얼마 안돼서 해방되고 경성공전이 다른 학교와 통폐합해서 서울대 공대가 되는 바람에 서울대생이 되셨음


이후 미군정에 항공공학과 신설을 건의해서 서울대에 항공조선과가 만들어졌다고 함. 그리고 거기 1기생으로 입학하심


졸업은 1950년에 하셨는데 공군사관학교 내에 있는 항공기술원양성소 교관으로, 정식 군인은 아니고 문관(군무원) 신분으로 들어가셨는데 곧바로 6.25 전쟁이 터졌음


전쟁나고 곧바로 공군에 입대신청을 했는데 상황이 안좋아서 그냥 집에서 대기하라고 함. 그바람에 북한군이 서울에 들어왔을 때 숨어지내셨다고 함.


서울수복 직후에 정식으로 입대하게 됐는데 그후 공군의 연락기들(창군초기에 들어왔던 경비행기들) 정비하는 업무를 맡으심


그러다가 사천으로 부대가 옮겨진 이후에는 주로 정비사 양성 교육업무를 맡으셨다고 함. 고학력자시다 보니 미군 교범을 번역해서 학생들 교육과정을 만드셨다고...


특히 당시 정비사 수요가 늘어나서 정비사를 빠르게 양성하기 위해 특수한 교육과정을 고안해서 적용해서 효과를 봤다고 함.


이후에는 공군기술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근무하면서 이것저것  연구개발하는 업무를 하시다가 나중에는 제81항공수리창 (지금의 공군 81창) 창장까지 맡으시고 대령으로 전역하셨음.


전역 후에는 대한항공에 입사해서 500MD 헬리콥터 면허생산 관련 업무를 수행하심.


나중에 사료 찾아보다 보니까 이분이 대한항공 민영화 할떄도 관여하셨더라고.


그러다가 제공호 생산하기 직전무렵에 대한항공에서 퇴사하시고 컨설팅 업체에서 근무하셨던 걸로 알고 있음.


은퇴 이후에는 본인 경력을 살려서 우리나라에서 자작비행기 제작하는 사람들 돕는 일을 하셨고.





나는 이분을 생전에 너댓번 정도 만나뵈었는데 항상 기억이 명료하셨고 자기 분야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분이셨던 걸로 기억함.


지금 돌이켜보면 이분 집안 배경이라든가 시대적인 뭔가를 잘 타고난 사람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여튼 한국 근현대사 거쳐가신 분들은 대부분 참 파란만장한 삶을 사셨던 것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