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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şkilat-I Mahsusa

특무대라 번역되고 정확한 설립일은 알 수 없음. 청년튀르크당의 수장인 엔베르 파샤가 지도자였고 쉴레이만 아스케리라는 인물이 실무를 주도했다는 것만 알려짐.

요원들은 범튀르크주의와 범이슬람주의를 신봉했고, 전쟁장관에게 책임을 졌음

임무는 다음과 같았음

1. 제국 내 분리주의/민족주의 단체 소탕
2. 영프 식민지 및 기타 적이 노릴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 정보 수집
3. 아르메니아인들의 러시아 접근을 막고, 러시아 내 무슬림 튀르크족 반란 지원
4. 다양한 특수전 및 첩보전 수행

요원들은 의사, 공학자, 장교, 언론인 등 고학력자들이었지만 쿠르드족, 예멘인, 체르케스인 등 다양한 준군사 조직도 이용했음. 자금 출처는 전쟁부 비밀예산과 독일의 지원금임.

여러 지역에서 공작을 벌였는데


1. 트리폴리
오스만-이탈리아 전쟁으로 이탈리아가 리비아를 점령하자 특무대 요원들은 이 지역에서 반이탈리아 저항군을 조직하고 훈련시킴. 1915년 이탈리아와 오스만이 1차 대전에 참전하면서 특무대는 독일/오헝 잠수함을 통해 비밀리에 이 지역에 무기와 탄약을 공급함.

작전은 꽤나 성공적이었지만 결국 오스만이 전쟁에서 패하면서 트리폴리 지부도 철수할 수밖에 없었음


2. 이집트
명목상 오스만령, 실질적 영국령이었던 이집트에도 지부가 있었음. 1차 대전이 터지자 이집트인들의 반영감정을 선동하였지만 실패했음. 이집트인들이 오스만보다 영국에 더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임.

세말 파샤가 이끄는 팔레스타인 방면군의 수에즈 운하 공격작전도 지원해서 영국을 한 때 곤경에 몰아넣기도 했지만 결국 영국이 이집트와 수에즈를 사수하면서 이 노력은 실패로 끝났음


3. 이라크
1914년 말 영국은 이란의 유전지대 안전을 확보하고 독일해군의 인도양 작전을 막기 위해 오스만령 이라크 남부 바스라 일대를 점령했음. 그러자 특무대 2인자 술레이만 아스케리 본인이 나서서 이 지역 베두인 유목민들을 반영 민병대로 조직하고, 지하드를 선동함.

하지만 베두인들이 영국과 오스만 중 더 많은 돈을 주는 영국에 붙어버리면서 이 작전은 실패로 끝남.


4. 레바논, 시리아
이 지역 특무대 지부는 아랍과 소수종교 독립운동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역할을 맡음. 지역 주둔군에 대한 숙군, 공무원 사상감시, 반 오스만 인사에 대한 정보 수집 등이 주 임무였음.

특히 이 지역에는 예루살렘이 있었고 여기를 중심으로 서양 선교사나 공작원들의 움직임이 감지되었기 때문에 '오스만 입장에서' 감시는 필수적이었음. 특무대가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오스만 법원은 분리주의자들을 교수대에 매달았음. 이건 오스만 말기 벌어진 수많은 대량학살 중 극히 일부임.


5. 인도
오스만의 지하드 선포는 협상국 소속 무슬림들도 대상으로 했음. 무슬림이 협상국을 도우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선전함. 동맹국은 지하드를 이용해 무슬림이 많은 인도에 공작을 벌이려 함.

오스만과 독일이 합작하고 유럽의 인도 민족주의자들을 조직해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을 이스탄불에 설립했음. 하지만 이 조직들과 특무대 요원들은 인도에 도착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임. 인도까지 갈 수가 없었고 영국의 방첩망이 촘촘했거든.


6. 러시아, 아르메니아
특무대는 대러시아 전선 구축을 위해 이란인들을 선동하고 아르메니아인 민병대를 조직했음. 그리고 러시아로 파견한 요원들을 통해 러시아 국내정세를 보고받음. 러시아와의 전쟁이 벌어지자 특무대가 조직한 민병대는 오스만군과 함께 코카서스 전선에 나섰지만 패퇴했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 특무대는 1915년부터 벌어지기 시작한 아르메니아 대학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함. 말살정책의 실무를 담당한 건 특무대나 그들이 조직한 민병대, 그리고 오스만군이었음.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러시아가 내전 중인 틈을 타 투르케스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었고 실제로 그 지역 투르크인들도 호응했지만, 1918년 무드로스 휴전협상으로 오스만이 항복하며 실패로 돌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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