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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기 공산 빨치산은 애초에 민심을 잡지도 못했거니와 급하게 산으로 피신하면서 생겨났고 공산권과 완전히 이격된 바람에 백선엽한테 토벌당했지만

1907년~1909년 후반까지 연인원 12만 명이 벌였던 의병전쟁의 양상은 조금 달랐음. 원래 초기 구한말 의병들은 기각지세라 해서 의병전력을 통일해 공세를 퍼붓자는 전략을 사용했었음.

하지만 서울진공작전이 실패로 끝나자 유인석을 비롯한 의병장들 사이에서는 장기항전을 대비하자는 주장들이 대두되면서 북계책과 같은 산악 근거지 전략이 나타남. 속전속결은 불가능하니, 각 의진이 연계해서 지구전을 벌이자는 것임.

동시에 만주 근거지론도 나타나면서 의병 가족들이 일본의 손이 닿지 않는 만주로 이주해 의병투쟁의 배후지를 건설하기 시작했음.

남부 지방에서도 의병장 고광순의 축예지계 전략에 따라서 지리산근거지론이 대두되었고, 황해도에는 장수산근거지론이 나타남.

해산된 구한국군 군인들을 통해 전력향상을 꾀하기도 했고 홍범도 의진은 아예 구한국군을 따라 근대화 분소대 편제로 개편했음

일반 주민들의 지원과 호응도 적지 않았고. 그래서 일본은 남한대토벌이라는 대량 학살 전략으로 대응하고서야 간신히 남도 의병들을 진압할 수 있었음.

하지만 그래도 황해도와 북방 일대에는 의진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일본이 조선 내의 의병을 전부 토벌 완료했다고 공식 발표한 시기는 1915년이 되어서였음.

이마저도 완전토벌은 실패했지. 잔여 의병들은 점차 만주로 대장정을 떠나 우리가 아는 독립군들로 발전했으니까.

비록 화약과 신식무기의 수급이라는 가장 큰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과의 전쟁에서 밀려버렸긴 했지만

구한말 의병전쟁은 그것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제대로 된 근거지를 마련하고 전술전략을 일신한다면 생각보다 오랜 시간 동안 게릴라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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