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 동로(東路)의 중국 군사는 2만 4천 명이고 우리 군사는 5천 5백 14명이며, 중로(中路)의 중국 군사는 2만 6천 8백 명이고 우리 군사는 2천 2백 15명이며, 서로(西路)의 중국 군사는 2만 1천 9백명이고 우리 군사는 5천 9백 28명이며, 수로(水路)의 중국 군사는 1만 9천 4백명이고 우리 군사는 7천 3백 28명이었으니, 모두 합하면 10여만 명이었다. 군량과 무기도 이에 비등했는데, 삼로(三路)의 군대가 흔적도 없이 무너지니, 인심이 흉흉하여 보따리를 싸 가지고 있었다.
임진왜란의 최대 반격작전이라고 볼 수 있는데 완패로 끝났으니
저 작전만 성공했어도 고니시 시마즈 가토 목을 조선이 칠 수 있었는데 완벽한 패배로 인해 다 살려서 보내버림
살려 보냈어도 세키가하라 전투 에서 개같이 갈렸으니 한잔해
아 ㅋㅋ 1년전만 했어도 역스퍼거랑 역스퍼거 대장 짱메이 행님이 존나 팼을 글인데 안타깝노 ㅋㅋㅋㅋzz
돌아와요 언성히어로 짱메이햄 ㅋㅋㅋ
일단 이미 일본군의 철수가 확실시되는 시점이라 명군이 더욱 갈팡질팡한 것도 있고(협상도 해야되고 본국에서 사리라는 지시도 있고 근데 밀면 확 밀 수도 있을 거 같고...) 본격적인 일본식 왜성의 방어를 돌파할 대비책이 거의 준비되지 않는 경험부족도 있어 완전히 실패했지. - dc App
일단 정유재란 후반기 남해안 왜성 전투들을 보면 명군이나 조선군이 보급문제도 있고 해서 지나치게 단기결전에 목을 메는 경향을 보임. 그러다보니 막 휘몰아치다 너무 많은 손실을 입게되고 그대로 공세역량을 잃고 철수하는 악순환이 벌어짐. 다만 그렇게 휘몰아치다보니 상대하는 일본군 측에서도 피해가 적지는 않음. - dc App
전란기간 중 남부 왜성을 함락시킨게 0 이라는게 너무뼈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