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 장구류 + 노획한 북한군 체스트리그 허리 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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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깼다. 침낭 안에 핫팩은 식어서 안에는 한기가 돌았다. 단순히 추워서 깬 게 아니라 기분 나쁜 꿈 때문인 것 같았다.
눈만 간신히 덮게 눌러쓴 비니를 살짝 올려 시계를 바라봤다. ‘05:23’, 다시 자기엔 애매한 시간이다.
한숨을 푹 내쉬며 침낭에서 얼굴만 살짝 나와 천장을 바라봤다. 나무판자, 익숙하지 않은 천장이다. 주위엔 다른 분대원들이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는 천장 무늬는 생각을 깊게 만드는 것 같았다. 동그라미 안에 작은 동그라미, 더 작은 동그라미, 마트료시카가 생각났다.
집에도 하나 있다. 아니 ‘있었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까. 전쟁이 터지고 가족들과 연락조차 해본 적 없다. 우리 집은 안 무너졌겠지?
부모님은 괜찮을까? 동생은? 전역했다며 좋아하던 진혁이, 훈련소 간 정범이는 모두 무사할까? 이른 새벽은 쓸데없이 깊은 생각을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긴 꿈을 꿨다. 나는 도시를 거닐고 있었고 주위에는 건물들이 불에 타고 있었다. 탄 냄새가 가득했다. 뜨겁지 않고 오히려 차가웠다.
거리에서는 총성도 들렸고 폭발음도 들렸다. 뭔가 지나가는 것 같았지만, 땅이 울리는 것 외에는 기억나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군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적지만 민간인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보인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군인들은 방독면과 보호의를 입은 채로 서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민간인 하나를 잡아두고 말이다. 주위를 둘러봤다.
좁은 골목길에는 사람들이 꿇어앉은 채로 군인들에게 통제받고 있었다. 거리의 가로등에는 반역자라고 적힌 목판이 목에 걸린 채 매달려 있었다.
살아있었다. 산 채로 매달렸다. 살려달라며 작게 읊조리며 나를 쳐다봤다. 머리에선 피가 흘러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온몸에는 물집투성이, 호흡이 바빴다. 그 근처에 방독면을 쓴 군인 하나가 뭘 보냐며 나에게 쏘아댔다.
애써 그들을 무시하고 도로를 따라 앞으로 또 앞으로 걸었다. 도로 저 멀리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버려진 총을 들고 전쟁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피죽도 못 먹은 듯 잔뜩 곪아서 입으로 총소리를 내며 돌아다녔다. 근처에 서 있던 군인 둘은 어린 애들을 조준하고 있었다.
앞으로 계속 나아가다가 총을 든 어린아이와 부딪혔는데 나를 똑바로 올려다봤다. 눈이 마주쳤다. 눈은 새까맸다.
그 눈동자에서 알 수 없는 불쾌함, 아니 그 아래 어딘가 있는 어떤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울컥거리는 느낌.
그러다가 잠에서 깼다. 감정 깊은 그 어딘가에서 올라오는 형용할 수 없는 어떤 감정과 이미지가 뇌리에 박혔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가족 생각을 억지로 꺼냈지만 어림없었다. 잔상은 여운을 남겼다.
다시금 시계를 바라봤다. ‘05:52’, 기상하기까지 10분도 채 안 남았다. 몸을 일으켜 세워서 잡스러운 생각을 떨치고 싶었다.
파주에서 황주까지 한 달 조금 넘게 걸렸다.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했다. 특히나 같이 살고 웃던 사람들이 줄어갔다.
생활관에서 친했던 동기들은 후송 가거나 흙으로 돌아갔다. 납덩어리 맞고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말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동료들도 언제 사라질지 몰랐다. 점점 말수가 줄었다. 특별히 일이 아니라면 서로 대화도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누군가 곁에 없어진다는 게 마음 꺼려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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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삑―
시계에서 알람음이 울렸다. 분대원들이 침낭에서 나와 하나둘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안 씻은 지도 오래됐다.
사리원에서는 소학교에 다들 모여서 화생방 부대 지원을 받아서 뜨거운 물에 씻은 적이 있었다. 모두가 근 한 달 동안 경험한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냄새나는 침낭을 접어두며 내려오는 내 긴 머리를 뒤로 쓸었다. 까까머리가 이내 뒤로 넘길 수 있을 만큼 길게 변했다. 옛날에 행보관이 본다면 기염을 토했을 텐데
분대원들 머리도 길었다. 이등병이라곤 예외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 병사들 사이에서는 계급이 중요하지 않았다.
훈련소에서 급하게 훈련을 마치고 전방에 쏘아지는 신병들이 개성을 넘고서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계급을 나눴던 것 같지만, 이젠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경험이 많고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들 사이에선 최고였다. 간부가 안 볼 때면 서로 형 동생 하며 지냈다.
애초에 간부들 사이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사실을 알고 있어도 이런 애들 모아서 군기교육대를 보내지도 못한다. 전선에는 병력이 아주 부족하다.
대충 군장에 빠진 게 없는지 확인하고 장구류를 챙겨입었다. 방탄복, 방탄모, 방독면 주머니, 총기를 들고 분대원들과 함께 복도로 나갔다.
다른 인원들도 장비를 챙겨서 나오고 있었다. 걔 중 몇몇은 북한군 탄띠를 가지고 다니는 녀석들도 있었다.
한번은 간부들이 그 모습을 보고 지적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간단했다. ‘총알이 없어서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대답을 들은 간부들도 별 말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보급된 탄알집은 5개, 각 28발. 단발로 끊어서 쏜다고 하더라도 부족했다.
그 말에 수긍한 간부 몇몇은 걔들 따라 전투가 끝나면 시체들 방탄복에 있는 탄알집을 빼서 건빵 주머니에 챙기기도 했다.
그런 애들도 얼마 못 가 죽는 게 현실이었지만 그래도 전투가 끝나면 챙겨대는 그들은 가득한 탄약 모습에 그들은 상당히 만족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러저러한 잡생각들을 뒤로 하고 복도를 걸었다.
분대원들과 복도 끝 나무문을 지나 바로 앞에 설치된 20인용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는 행보관과 보급계 용사 몇이 인원들에게 전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좆같은 카레 비빔 2형 따뜻한 물도 안 나와서 미지근한 물에 30분씩 불려 먹었다. 맛은 생각하는 그 맛이다.
하나 챙겨서 밖으로 나오니 이미 몫 좋은 곳은 다른 소대가 깔고 앉았다. 조금 더 걸어서 무너지지 않은 콘크리트 건물 뒤편에서 밥을 먹었다.
점호는 따로 없었다. 그냥 간부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분대장에게 인원 파악만 간단히 하는 게 전부였다.
여기서 탈영하더라도 북한이다. 어딜 가더라도 좋은 선택은 아니다. 탈영은 생각조차 못 한다.
밥이 되는 동안 멍하니 비행장을 바라봤다. 우리 기계화보병대 장갑차들과 전차 대대 K-1 여러 대가 도열해있다.
장관이구나 하며 그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전차대대 사람들은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전차 시동을 걸고 전차를 점검했다.
궤도도 만지고 포탑과 부족한 탄약 등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멍하니 보던 와중에 한달 후임이자. 나보다 두 살 많은 승욱이 형이 내게 말했다.
“승현아. 니 그거 들었나?”
“뭐 어떤 거요?”
“우리 이번 작전만 끝나면 다시 사리원 쪽으로 가는 거.”
“엥? 진짜요? 어디서 들었는데요?”
“저기 전차 대대 소대장이 내 고향 선밴데 어제 새벽에 근무서다가 와서 말해주던데.”
“이까지 올라왔는데 빠꾸 치지? 뭔 일 있나?”
“그건 잘 모르겠는데. 여단에 인원이 부족해서 작전 뛸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다던데”
“아~ 그래서 내려가서 재편하는 건가?”
“대충 그런 듯? 누구 말로는 사리원에서 점령지 안정화할 수도 있고 인원들 차출해서 훈련 교관으로 보낼 수도 있다던데.”
“그럼, 훈련 교관들은 진짜 후방 가는 거 아니에요?”
“몰라 분대장급으로 뽑는다는 말도 있고?”
“휴가도 갈 수 있을까요?”
“영화에서 보면 전쟁 중에도 보내주더만, 갈 수 있지 않나?”
뜬 소문이긴 하지만 돌아갈 수 있다는 말 한마디가 내게 크게 다가왔다. 짧긴 해도 휴가? 집에 돌아가서 가족 품에서 따뜻한 물로 씻고 밥 먹을 수 있다는 것
일반적인 일상이 내게 크게 다가왔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번 작전’이라는 말이 두려웠다. 또 무슨 작전을 하려는 거지? 우리 엊그제 황주 비행장 점령했는데?
마음속엔 두려움 반, 희망 반 섞여서 날 흔들었다.
하이브리드탄띠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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