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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가 짙은 플로리다에서는 오늘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런 궂은 날씨에도 전미에서 온 사냥꾼들은 주의 허가를 받지 않고 주립 공원이나 연방 동물 보호구역에 들어가 멧돼지 사냥을 즐기곤 했다. 


마을 보안관과 주민은 대부분 이런 사실을 알고 있어도 그들이 마을에서 소비하는 돈과 마을 사람 일부도 참여하고 있어서 묵과했다. 오히려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멧돼지 사냥이라면 반길 정도였다.


전문적인 사냥꾼들 사이로 제대로 허가받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사냥을 단순히 레저 스포츠로 생각해서 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아열대 기후를 가진 플로리다의 기후에 꽤 피를 봤다. 오후만 되면 내리는 소나기는 물론이거니와 벌레들도 많았고 움직이다 보면 금세 옷은 땀과 습기로 축축하게 젖어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이 외에도 각기 다른 이유로 각종 인명 피해도 많은 편이었다. 길을 잃어 탈수된 채 구조 되거나 서로 잘 못 봐서 피격당하거나 다치거나 심지어는 총기사고로 사망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하지만, 어떤 날을 기점으로 사냥 중에 죽는 사람 수가 급증했다. 하루가 멀다고 경찰차와 구급차가 달려가는 사실에 인근 ‘홈머빌’ 주민들은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탓에 사망자도 자연히 증가했다고 어림짐작했다. 그러나 다친 사람의 수는 오히려 줄었다.



홈머빌에 있는 ‘Clinch Brakes & Alignment’의 자동차 수리점에는 초행인 것 같은 남자 둘이 들어왔다. 그들은 자동차 타이어가 터져서 인근에 있던 수리점에 방문했다.


한 명은 키와 덩치가 컸다. 다른 한 명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와 나란히 서 있으면 작아 보였다. 그 두 사람은 사냥을 즐기러 온 사람처럼 여유로웠다.


“1500?” 수리점 사장인 대니가 말했다.

“뭐라구요?” 자판기 앞에 있던 덩치가 큰 남자가 말했다.

“닷지 램 1500이냐구요.”

“아 네 파워 왜건이요.” 피식 웃으며 감자칩을 하나 꺼내면서 말했다.

“잘 빠졌구만, 사냥하러 오셨소?” 

“사냥철이잖아요. 저는 밥 밀러입니다.” 밥이라고 밝힌 남자는 그에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저는 대니입니다. 옆에는…?” 그의 손을 잡으며 옆에 있던 작은 남자를 보며 말했다.

“아 소개가 늦었네요. 전 에단 카터입니다.” 옆에 있던 작은 남자도 악수를 청했다.

 

그들의 손은 굳은살이 가득했다. 어떤지 오랫동안 사냥을 한 것 같은 사람의 손이었다. 손톱은 짧게 정리되어 있었고 둘 다 모자를 눌러썼지만, 머리카락도 다들 짧은 편인 것 같다.


덩치 큰 남자의 악수를 청한 오른팔엔 성채와 미국 국기, 표범 한 마리, 밑엔 ‘11th Engineering Battilion’이 적혀있었다. 익히 아는 곳이다.


“전역자요?”하고 대니가 물었다.

“예, 용케 알아보셨군요. 11공병 출신입니다. 이 친구는 101공수죠.” 밥이 에단을 쳐다봤다.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대니는 모자를 벗으며 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오히려 해주신 지원에 더 고맙습니다.” 밥과 에단은 예의를 차리며 답했다.

“선생님, 혹시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에단은 대니에게 물었다.

“밑에 직원이 하고 있으니 얼마 안 걸릴거요. 많이 급해요?” 대니는 피식 웃었다.

“얼마 만에 사냥인지 몸이 근질근질하군요.” 에단은 너스레 떨며 말했다.

“그럼, 저긴 어때요? ‘오커포노키 공원’, 몰래 온 거 아니오?” 대니는 말했다.

“저기는 물이 괜찮나 봅니다?” 피식 웃으며 밥이 말했다.

“불법이긴 한데, 거의 관심이 없어.” 대니는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흰 가야 하는 곳이 있어서요.” 밥은 정중히 거절했다.

“하긴, 갈 곳이 정해져 있으면 상관없지. 그래도 블랙잭 근처는 가까이 가지마쇼. 거긴 요즘 사람들이 많이 실종하니…” 대니는 이해한다는 듯 그들을 위해 말을 덧붙였다. 


그런 대니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이 많이 죽는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두 사람은 갑자기 여러 가지를 더 캐묻기 시작했다.


‘어디서 얼마나 실종됐냐.’, ‘죽은 적도 있었냐.’와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런 모습에 대니는 경찰에게 취조당하는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실종되긴… 대부분 늪에 빠지거나, 오발 사고로 죽었지” 당황하며 말했다.

“블랙잭? 그곳 지도가 있습니까. 선생님?” 뒤에 있던 에단은 앞으로 나와 더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

“있기야 하지만… 가지마, 거기 별 사냥감도 없는…” 대니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실례지만, 있으면 저희에게 주시겠습니까?” 덩치가 큰 밥이 앞으로 나오며 그에게 말했다.


그의 덩치에서 오는 압박감에 순순히 자신이 예전에 사냥할 때 쓰던 지도를 그에게 주면서 그들을 위해 위험성을 알려주려고 알고 있던 지형지물을 설명했다.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어려운 늪지대와 옛날에 사냥꾼이 쓰며 쉬어가던 오두막 등 익히 알고 있던 지형들을 설명했다. 이런 사실은 마을에 오래 산 사람도 잘 몰랐기에 아는 사람들만 알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이 지도는 저희가 챙기겠습니다.” 에단은 대니에게 100달러짜리 지폐를 건네줬다.


그들은 묘하게 친절한 듯 엄격한 모습을 비췄다. 잘 훈련된 군인처럼 말이다. 그들은 이내 고쳐진 차를 타고 441번 국도를 타고 파르고 마을을 거쳐 ‘블랙잭’과 가장 가까운 도로에 차를 세웠다. 


트렁크에서 사냥꾼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체스트 리그를 꺼내 입었다. 탄입대는 두둑하게 채워진 채로 사냥과는 반대로 전쟁터를 나가는 모습이었다. 


트렁크에 다양한 액세서리로 무장된 M110A1 한정과 M4A1을 꺼내 잘 작동하는지 노리쇠를 뒤로 당겨보면서 확인했다. 


총기와 체스트 리그로 무장한 그들은 얼굴에 짙은 녹색을 칠하고 주변과 동화되도록 위장했다. 보통의 사냥꾼들은 오렌지 조끼를 입는 등 피아식별을 위해 행동했지만, 그들이 여느 사냥꾼과는 다르게 멍청해 보일 정도로 위장했다.


온몸에 진흙을 덧대어 발라가며 채취 또한 지웠다. 어느덧 위장이 끝난 그들은 천천히 총구를 전방에 두고 앞으로 나아갔다. 


무서울 만큼 고요했다. 그 작은 새 지저귐 하나 없었다. 거북이보다 더 느리게 아주 천천히 블랙잭으로 발을 떼며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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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걸었을 때, 하늘에선 소나기가 내렸다. 내려오는 무거운 빗방울에 일반 사람들이었다면 몸이 무겁고 사냥에 집중 못 할 정도로 심한 소나기였음에도 그들의 총구는 미세한 떨림도 없이 주위를 경계하며 천천히 나아갔다.


멀리서 울리는 총성, 눈동자를 재빨리 굴려 총성 방향을 확인했다. M110A1을 들고 있던 에단은 스코프로 소리가 들린 지점을 훑었다. 


오렌지색 조끼를 입은 두 남자, 한 명은 산탄총을 근처 늪에다가 발사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그를 보며 웃는 것 같았다. 뭐라고 말하는데 그 소리가 작아서 들리지는 않았다.


“밥, 내 기준 10시 방향, 300m, 민간인들이야. 지나갈 때까지 쉬었다가 가야겠어.”

“작전 지역에 도착할 때면 너무 늦지 않겠어?”

“괜찮아, 놈을 사냥하기엔 저녁이 제격이야.”

“오케이, 야간투시경을 챙겨두길 잘했군.”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짧은 대화를 마치고 그들은 어느 나무의 뿌리 아래에 있던 작은 굴에서 휴식을 취했다. 


10분 정도 시간이 흐르고 그들을 관찰하던 민간인들이 블랙잭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식별했다. 점점 멀어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밥에게 말했다.


“밥. 작전을 조금 수정해야겠는데?”

“민간인들 때문에?” 

“그래, 저들도 지금 블랙잭 쪽으로 가는 것 같아.”

“아까 그 사람이 그곳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

“모르지, 이 지역 사람일 수도, 어쩌다가는 걸 수도.”

“그럼 어쩔까. 내일 다시 와야 하나?”

“저들을 미끼로 삼자.”

“…어떻게”


내용은 간단했다. 블랙잭으로 이동하는 그들을 미끼로 놈을 불러내자고, 놈이 나오면 우리가 사냥하고 없으면 퇴출하자는 이야기였다. 


“놈은 사냥꾼을 사냥한다는 점을 이용하자고?”

“그래, 만약 그 지대에 없으면 우리는 다른 곳으로 가는 거고, 있으면 우리가 잡는 거고”

“나쁘지 않네. 어디까지 이동했어?”


에단은 밥의 말에 스코프로 그들을 비췄다. 대충 200m 정도 거리가 벌어진 것 같았다. 슬슬 출발하면 될 것 같다는 말에 밥과 에단은 대열을 갖춰서 다시 이동했다.


민간인들의 이동속도가 느리긴 해도 생존을 먼저 생각한다면 어쩌면 옳은 판단이었다. 아까보다 더 느리게 미끼가 쉬면 밥과 에단도 쉬었다. 그들 몰래 뒤따르면서 폭을 유지하면서 걷는 것은 매우 깊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심지어 이곳은 거의 늪지대라 밟을 수 있는 곳이 크게 마땅치 않았다. 땅인 줄 알고 밟으면 늪이라 발이 빠지면서 소리가 나면서 그들이 뒤돌아 우리를 식별 당할 뻔했을 때도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들킬뻔한 몇 번의 위험을 넘어서 어느덧 작전 지역인 블랙잭까지 3km 지척에 근접했다. 어느새 소나기는 그치고 블랙잭이란 이름에 걸맞게 높게 자란 맹그로브의 잎이 도박장처럼 천장을 덮어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바뀐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늪은 더 심해졌다. 발이 잘못 빠지면 종아리 위까지 올라오는 경우도 허다했고 벌레와 물이 고인 냄새, 물비린내 등 냄새도 고역이었다. 거기다 전투화나 젖은 바지의 물 무게 때문에 피로는 쌓여갔다.


처음엔 그들을 뒤따라갈 땐 느린 이동속도에 불만이 있었지만, 잠깐잠깐 주어지는 휴식 시간은 어느 순간부터 달콤해졌다. 근처에 다다르자, 미끼들은 기동을 멈추고 쉬었다. 이때 밥은 가방에 있던 새 모양의 작은 드론은 날개를 움직여 하늘 높이 날렸다.


여느 새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날아간 드론을 뒤로하고 패드를 열어 드론의 시야와 연결하고 움직이며 아까 설명 들었던 오두막을 먼저 정찰했다. 


“잭팟, 패키지 확인”


드론의 영상에는 버려진 오두막의 형체와 주위에 연기가 작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누군가 그곳에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들이 찾는 ‘패키지’일 확률이 높았다.


에단과 밥은 여유로웠던 처음과는 다르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사냥감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몰라도 심장 박동이 조금씩 빨라지고 있었다.


휴식을 마친 미끼들이 이동하려 하자 밥은 드론을 자동 제어 옵션으로 바꿔두고 그들 뒤를 따랐다. 풍경이 달라져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쩐지 냄새도 고약해진 것 같았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얼마나 걸었는지, 바뀐 풍경의 위화감이 없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그들은 헷갈렸지만, 블랙잭의 오두막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한참을 걸었을까. 에단의 스코프 안엔 짙은 녹색 이끼로 뒤덮인 기괴하게 생긴 오두막을 발견했다. 밥이 발견했던 연기의 정체인 모닥불은 거의 다 꺼져가고 있었다. 


저곳이다. 에단은 이제 사냥감이 미끼만 물면 된다고 생각했다. 오두막에서 400m 떨어진 곳에 있어서 오두막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밥은 그의 뒤에서 패드를 열고 드론으로 주변을 확인하고 있었다.


미끼들도 난데없이 나타난 오두막에 흥미로워하는 것 같았다. 사람이 있는지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오두막 문을 열곤 안팎을 확인하곤 급하게 나와서 소리쳤다.


“아무도 없어요!! 이봐요!!”


그는 입에 손을 모아 크게 소리 질렀다. 그의 행동이 이상했지만, 그냥 가만히 그들을 스코프 너머로 바라보며 속삭였다. 


“밥, 아무도 없어?”

“열상에도 안 잡혀. 여기엔 없는 것 같은데?”

“허탕인가? 내버려두고 돌아가자.”


일어나려는 찰나, 미끼들은 이리저리 손을 흔들며 핸드폰을 꺼내 주파수를 찾고 있었다. 안에 들어갔다 나온 한 명은 오두막 기둥을 잡곤 토를 했다.


“잠깐, 뭐가 이상한데?”

“왜 그러는데?”

“밥 드론 조종 멈추고 오두막 입구가 보이는 곳으로 가봐. 빨리”


밥은 에단의 그 반응이 심.상치 않다는 듯 허리를 숙인 채 일어나 조금씩 오두막으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입구가 잘 보이는 곳에 다다랐을 때 밥이 무전을 보냈다.


“씨발”

“뭔데? 무슨 일이야.”

“ㅅ―”


갑자기 오두막은 폭발하면서 지천을 흔들었다. 나무가 솟아올랐고 그곳에 있던 미끼들은 폭발에 휩싸여 형체도 알아볼 수 없게 됐다. 물과 진흙들이 하늘로 솟아오르고 떨어졌다.


그 모습에 시선이 뺏겼던 에단은 찰나에 ‘아차!’하며 밥을 바라봤다. 밥은 누군가에게 조잡하게 만든 것 같은 나무 화살을 맞아 목을 부여잡고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있었다. 


“컥…! 커 컥!” 


밥은 목을 부여잡으며 진녹색 피부 아래 흰 눈으로 에단이 바라보던 스코프를 정확히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에단은 화살이 발사된 것 같은 곳을 총으로 따라잡았다.


‘어디 있지? 아무것도 안 보였는데? 어디서 쏜 거야 시발! 진정하자. 침착해. 아직 내가 우위에 있어. 어디 있지?’


하며 혼잣말했다. 어느새 뒤에서 느낀 인기척에 반응해 뒤를 돌려고 하자. 늪지 안에서 한 남자가 튀어나와 목을 밧줄로 감아 에단을 등배지기 하듯 업었다.


에단의 허리는 새우 마냥 꺾여서 사냥감에 등을 뺏긴 채, 얼굴을 볼 수도 없이 목에 줄이 감겨 하늘만 바라보면서 점점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검지 한 손가락으로 더 조이는 건 막고 있었지만 시간문제였다.


‘칼…! 칼!’ 


왼손으로 오른쪽에 있던 나이프를 챙기려 손을 뻗었지만 닫지 않았다. 안간힘을 빼서 닿을락 말락 손을 펼쳐댔다. 


‘제발…! 이딴 곳에선 죽기 싫어!’


그때 들리는 밥의 총성, 목에 화살이 박혔지만, 마지막 힘을 짜내 죽어가고 있던 에단을 향해 총을 쐈다. 


콩 볶는 소리가 울리며 늪지대에 흙과 물이 튀어 오르니 그제야 에단을 풀어주고 바닥에 내팽겨쳤다. 에단은 아픈 목을 부여잡으며 컥! 거리는 소리와 함께 숨을 토해냈다.


“이 시발 새끼가!”


하며 오른쪽 허리춤에 있는 권총을 빼내 그에게 쏴댔지만, 제대로 조준할 턱도 없이 총알만 낭비하며 빗나갈 뿐이었다. 정신을 차리며 권총을 이리저리 겨눴지만, 이제 주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맹그로브 나무, 울창한 늪지대 아래는 천혜의 엄폐물이 널렸다. 당장 에단의 주위에만 해도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서 혼자 이 넓은 공간을 방어하기는 힘들었다.


긴장은 두려움을 만들어냈고 포식자는 두려움을 먹었다. 도리어 자신들이 사냥감이 된 건 한순간이었다. 에단은 주위를 둘러보며 늪에 고개를 처박고 이미 죽은 밥에게 말했다.


“밥! 살아있어?! 고개 들어봐!”


돌아오는 건 뒤에서 다가오는 인기척뿐이었다.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봤지만 이미 늦었다. 권총을 뺏기고 뒤를 잡힌 채 그대로 눕혀져 사냥감, 아니 사냥꾼에게 목이 조이고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벗어날 수 없었다.


“억…!”


단말마의 비명을 끝으로 에단은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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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단은 달콤하지만, 비릿한 물 냄새에 정신을 차렸다. 


밝은 조명이 그의 눈앞에 있었고 상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낱 사냥감이었던 남자가 앞에 앉아 있다는 걸 느꼈다.


그는 온몸은 결박되어 팬티 한 장만 입은 채 엎드려있었다. 진녹색 얼굴과 눈동자는 핏대가 서 봉숭아 물든 듯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봤지만, 상대는 역시나 보이지 않았다.


입에 다행히 재갈은 물려있지 않았다. 


“너 이 개새끼! 날 어쩌려고! 그냥 죽여!”


악을 쓰는 에단을 상대는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적막함이 그를 더 두렵게 만들었다. 에단은 어떻게든 반응을 끌어내려 악을 쓰며 말했다.


“어이 늙은이! 너 개새끼야! 죽일 거면 빨리 죽여! 이 빌어먹을 새끼야!”


그러나 상대는 동요하지 않았다. 어둠 넘어, 분명히 상대는 있는데 말이다. 묵묵히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 에단의 몸을 감았다. 어떻게 더 반응하는지 궁금해서 그런 걸까. 단순한 두려움은 어느새 죽음에 대한 공포심으로 바뀌었다. 


에단은 101공수에서 파병을 거쳐 그린베레에 지원을 했다. 그들의 강인함에 빠져 선택했다. 그런 그린베레에서 높은 성적으로 모든 훈련을 수료하고 아프간, 이라크 등지에 파견됐다. 스스로 전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순한 침묵만으로 더 이상 전사가 아니라 어떤 존재 앞에 떨어진 피식자의 공포를 느꼈다. 이라크에서 포위당했을 때도 곁에 분대원이 죽어갈 때도 잔혹하다는 델타 분견대의 고문 훈련을 받으면서도 느껴보지 못했다. 


상식에 반하는 생각이 극대화되며 공포심으로 에단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묶인 채로 너머에 있는 그를 응시하는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어둠 속에서 말을 걸어왔다.


“…101공수 출신인가? 당신 왼쪽 팔에 있는 독수리 그거 말이야.”


적막을 깨며 들리는 목소리는 평범했다. 너무 평범했다. 길거리 어디에서도 들을 법한 그런 목소리. 에단은 겁에 질린 채, 그에게 답했다. 


“그… 그렇소…”

“음… 이름이 어떻게 되지?”

“…에단”

“나는 토마스 베넷이라고 하네.”


무척 평범하며 친절한 것 같은 말투 아래로 호기심이 있는 것 같았다. 목소리는 조금에 떨림도 없었다. 이미 상대는 에단이 공포심에 휩싸였다는 기분을 알고 있었다.


“나를 잡으러 왔나? 아니면 내 물건에 관심이 있어서 왔나. 그냥 돌아가.”

“…”


에단은 침묵으로 답했다. 어떻게든 대화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다른 말로 주의를 돌렸다.


“레전드라고 들었습니다. SOG 출신 교관에…”

“내가 목적은 아닌 것 같군. 겸사겸사 죽이고 가지고 오라고 했겠지. 헛수고니까 돌아가.”

“데브그루 출신이었고! PTSD로 인한 정신불열증이…!”

“누가 그런 소리를 하지?”


걸렸다. 대화의 주도권을 바꼈다. 


“하드디스크만 있으면 됩니다. 그냥 조용히 떠니죠. 당신은 살아왔던 것처럼 살면 됩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냐고 물었어.”

“하드디스크만 주면…!”


어둠 속에서 손이 튀어나와 에단의 입을 막았다. 가까이에서 조명에 비친 그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평범한 사람, 부러진 안경에, 콧수염, 범생이 같은 얼굴이었다. 어디서 회계사나 할 법한 얼굴을 마주봤다.


“에단, 네가 주도권을 뺏었다고 생각했나? 어림없는 소리, 장단 한 번 맞춰줬더니 날 호구로 보는군. 내가 정신분열증이라고? 랭글리 새끼들이 그런 수준 낮은 정보로 날 도발하라고 말했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며 잡았던 두 뺨을 뭉개고 있었다. 눈에는 핏대가 서서 죽일 듯이 노려보며 말했다.


“그 빌어먹을 새끼들이 나한테 한 짓이 뭔지 보여줄까?”


하고는 어둠 속으로 다시 사라지고 방 전체에 불이 켜졌다. 백열전구가 방을 밝히며 그의 모습과 방 전체의 모습이 보였다.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쌓여진 채 하나의 작은 독방 같았다. 벽에는 온갖 신문이 난잡하게 붙어있었다.


“1990년 7원 12일, 쿠웨이트에서 죽은 내 정찰팀원들, 브루스 설리반, 칼 베넷, 마이클 캘러핸! 2001년 12월 3일! 하이난 섬에서 내 전우들은 두 명이나 죽었어! 윌리엄 휴즈, 찰스 리컴 이런 내가 정신분열증이라고? 랭글리 화이트칼라 새끼들이 정신분열증이겠지.”


그는 악에 받쳐 벽에 붙어있는 신문들을 찢어버리며 에단을 설득하듯, 호소하는 듯이 말했다.


“그렇게 떠나간 그들에겐 뭐가 있지? ‘훈련 중 사망?’ 에단, 너는 이것이 명예롭다고 생각하나? 죽은 사람의 가족들에겐 뭐가 있지? 성대한 장례식? 아니. 비참하고 초라한, 환영받지도 못한 영웅의 관만 주어졌다.” 


그는 에단의 앞에 다가와 말했다. 공포는 어느새 사라졌다. 


“넌 이게 명예롭다고 생각하나? 랭글리도 네가 죽으면 다른 ‘부품’을 투입하겠지. 그러곤 ‘산을 타다가 실족했다.’는 식으로 뉴스에 나오고 끝일 거야. 이게 네 마지막 모습이야. 그 누구도 네 희생을 이해하지 못해.”


“하드디스크를 가져가겠다고?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야. 유가족들에게 그들이 진정으로 명예로웠다는 걸 보여주는 마지막 증거라고. 먼저 떠난 그들을 내가 이제 책임져야해.”


오른손에 하드디스크를 흔들어 보여주며 말했다. 


“네놈도 한땐 명예를 아는 전사 아니었나? 제발 더 이상 나를 방해하지마. 아까 죽였던 그 친구처럼 죽여버릴 것 같으니까…”


그의 말을 끝으로 그는 불을 끄고 방 밖으로 나갔다. 에단은 틈을 이용해 어떻게든 결박된 몸을 풀기 시작했다. 벽에 바짝 붙어서 날카로운 부분이 있는지 긁어대며 줄을 풀려고 했다. 


벽에 튀어나온 부분을 찾아 결박된 부분을 비볐다. 삭았던 탓일까. 20분쯤 지나니 손목이 뜨거워지면서 줄이 풀렸다. 풀린 손으로 발목에 묶인 줄을 풀고 문으로 다가갔다.


문 손잡이도 없는, 밀면 열리는 문이었다. 조잡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쉽게 틈을 주고 쉽게 빠져나가게 하는 그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함정일까 하는 생각이 더 깊었다. 문을 조금 밀어 밖을 바라봤다.


긴 복도 끝, 한 쪽에는 밝은 빛이 들어오고 한쪽은 깊고 어두운 공간이었다.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에 에단은 선택했다. 어두운 공간으로 숨어들자고… 그의 선택엔 후회는 없었다. 빨리 축축한 이곳을 탈출하고 싶었다. 


그는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천천히, 한 발자국씩 앞으로 나아갔다. 어느새 어둠으로 완전히 몸을 뒤덮을 때, 밝은 하늘에 별이 보였다. 알수도 없는 공간을 빠져 나와 천천히 앞만 보고 걸었다. 멈추지 않았다. 


그 뒤에서는 토마스 베넷이 소리를 지르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는 오지 말라는 듯이, 그가 마지막으로 봤던 그의 악에 받친 얼굴이 잔상으로 남았다. 한편으론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확실한 부분은, 그가 정신분열증 환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의 모든 말이 거짓이라고 믿겨지지 않았다. 자신 또한 겪어본 적이 있었기에, 복잡한 감정이 에단의 고통을 넘어서 그의 심장을 구겼다. 달릴때보다도 더 심장이 아프고 뛰는 것 같았다. 삼각형 나무 조각이 빙글빙글 회전하며 속을 갉아먹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참을 걷다가 불이 켜진 휴게소를 발견하고 그 앞에서 쓰러져 기절했다. 온몸에는 핏자국, 멍이 들어있었고 한쪽 다리는 부러진 채로 트럭 기사에게 발견됐다. 그 길로 그는 응급실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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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의료 도구에서 들리는 비프음에 토마스 베넷은 눈을 떳다. 한쪽 손엔 수갑으로 묶인 채. 온몸엔 붕대와 다리엔 부목이 대어져 있었다. 한쪽 눈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눈을 가렸다. 


눈동자를 힘겹게 움직여 옆을 바라보니 CIA처럼 보이는 조사관이 서 있었다. 어딘가 젊었고 어리숙했던 그가 깨어난 에단을 보고 말했다.

“깨어났군요. 전 CIA 특별 조사관 제이콥 프레스턴입니다.”


아무 말하지 않고 눈만 깜빡였다.


“말하기 힘드신 것 같으니 몇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예’는 눈을 한번 깜빡이고 ‘아니오’는 눈을 두 번 깜빡이세요. 이해했나요?”


그의 말에 에단은 눈을 한번 깜빡였다.


“좋습니다. 에단 카터 맞나요?” 


눈을 한번 깜빡였다.


“하드디스크는 챙겼습니까?”


눈을 두번 깜빡였다.


“그 남자는 죽었나요?”


눈을 한번 깜빡였다. 


“폭발로 하드디스크를 챙기지 못했나요?”


눈을 한 번만 깜빡였다.


“알겠습니다. 다른 궁금한 거 있나요?”


산소호흡기에 꽂혀 제대로 말을 못 했지만, 입을 오물거리며 소리를 냈다.


“우린… 전사가 아닌… 부품입니까…?”


그 말을 못 알아들은 것 같은 조사관은 무슨 말인지 제대로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거리곤 ‘빨리 낫길 바란다’며 나갔다. 사라진 빈 공간의 병실엔 비프음만 가득했다. 


유리창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며 에단은 눈물을 훔쳤다. 뺨을 타고 흘리는 눈물에 오른손에 쥐어진 모르핀 버튼을 연달아 계속 눌러대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