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육군 공식 기갑 잡지 아머지 24년 가을호
미 기갑 포술의 역사와 숙련도 향상을 위한 노력
(U.S Tank Gunnery: Historical Ebb, Flow of Proficiency)
오늘날, 전차에 장비된 무기 체계의 성능과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 승무원들의 능력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 현대 전차는 표적 획득 능력(Optics) 사격 통제 장치(Fire control system) 유기적 통신망(Network) 그리고 포탄의 개선으로 강화되어 있으며 정지 상황이건 기동중이건 매우 긴 거리에서도 다양한 목표물과 교전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엄청난 치사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많은 전차 승무원들이 전차 포술의 기본을 습득하는것 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9년, 제3 기갑 군단(III Armored Corps)의 치명성 연구와 최근의 설리반 컵 최우수 전차 승무원 포술 대회(Sullivan Cup Best Tank Crew Gunnery Competition)의 씹창난 성적은 이런 부분에서 포수들의 숙련도 부족을 잘 보여준다. 후자의 경우 기갑 부대들은 교리에서 강조되는 기본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설계된 대회에서 경쟁에서 이기고자 그 부대를 대표하는 나름 쏜다는 놈들을 보냈는데도 이 꼬라지가 났다. 승무원들은 조준법(boresight), 목표 탐지 및 식별(target detection and identification), 기관총 교전법 그리고 표적 감지(target sensing) 부분에서 문제가 많았다. 포술 대회가 이 꼬라지가 난 것은 수년에 걸친 전차 포술 교육의 공백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주며 과거부터의 미육군 기갑의 발전 동향과 포술 숙련도간 연관성을 통해 이 사태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1차 대전과 전간기
1차대전에서 미국 최초의 전차 부대가 창설되면서 미 육군의 첫 전차 포술 훈련계획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 당시 전차 포술 훈련은 무기 운용법과 유지 보수 능력 습득에 중점을 두었다. 이 시기 전차병들은 전차에 만들어둔 조그마한 틈(Slits)을 통해 밖을 바라보며 상황을 인지하면서도 갑작스럽게 전차가 뻗는 상황까지 염두에 둬야 했다. 승무원들은 각종 연기로 가득 찬 전차 안에서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그 효율은 좋지 못했지만 당시에는 단순히 적이 있는 방향으로 사격을 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특히 포수가 전차장과 탄약수 역할까지 해야만 하는 경우엔 더더욱 그 정도로도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았다. 1920년대가 되며 전차 포술 훈련은 무기 운용 및 유지 능력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여기에 더해 조준기 사용법과 표적 감지법을 더하며 더욱 정교해졌는데 특히 포수별로 성적표가 나오는 실사격 훈련이 당시 포술 훈련의 정점이었다.
1930년대 전차 포수 훈련계획은 무기 설명부터 다양한 상황에서의 실사격 인증능력 시험까지 덧붙여졌는데 이동중인 차량을 목표로 한 사격 훈련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각 전차 부대의 능력과 순위는 포수 개개인의 포술 점수가 합처져 매겨지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각 부대에는 높은 포술 점수를 위해 특별 휘장과 특별 상금을 붙이기도 했다. 이렇게 점점 더 심화된 경쟁은 1차 대전기에 비해 포수 개개인의 능력의 월등한 신장을 불러왔지만 주포로 기관총을 사용하던 시기와 맞물려 이 시기 포수들은 효과적인 전차 포수라기보다는 성적에 따라 더 많은 임금을 받는 전문 엽사에 가까운 취급을 받았다. 특히 단순히 목표물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전차 소대 작전술이나 전술 환경에서의 사격 상황과 같은 더 복잡화된 훈련들이 도입되며 이렇게 엽사로 훈련된 포수들은 이전 포술 성적에 비해 훨신 못 미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비교적 소규모였던 전간기의 미육군은 1차 대전 당시에 사용되던 전차 플랫폼들과 신형 경전차 몇 종류 그리고 시험과 평가를 진행중이었던 시제품들을 운용했는데 대부분의 부대들은 전투시 운용은 물론이고 심지어 평시 운용도 불가능할 정도로 인력도 장비도 부속품도 모자란 상태였으며 특히 미 육군 사령부가 기계화 기병대(7th Cavalry Brigade)와 보병 전차 부대(Infantry's tank force)용 차량을 따로 개발, 운용하기로 하면서 이에 맞춰 교리와 훈련도 변화가 필요해졌다.
이렇게 10여년이 지나며 전차 포술 훈련은 더 구체화되었으며 승무원 및 부대 훈련 및 더 다양한 훈련 과정과 이전의 실사격 훈련 평가가 포함된 인증 절차가 추가로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1930년대에 운용했던 M1 시리즈 전투차와 M2 시리즈 경전차의 특성을 반영하여 근거리에서 기관총 교전을 염두에 둔 훈련을 했는데 이런 훈련 상황은 별다른 장비가 없어서 포수들이 완전히 머리속에서 수동으로 계산해야만 하기에 복잡한 탄도학 이론과 사격술을 가르칠 수 없었던 한계도 고려되어 있었다. 그러나 1939년, 일부 보병 전차 지휘관들이 전차들을 소규모로 보병대에 딸려서 보병전차로 운용하는 대신 전차 대대에 집중시켜 운용하며 포술 훈련을 더 잘, 더 균일하게 관리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 균일화된 훈련은 전차가 소규모 부대로 나눠져 있던 당시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접근성이 낮은 전차용 훈련소에 전차를 보냈다가 뺐다가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던 것은 시기 미육군의 전차는 기존 기관총 전차가 아닌 37mm 주포가 장착된 M2A4로 바뀌고 있었던 시대 상황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는데 수십년간 운용되어온 기존 기관총 전차들은 움직이며 적을 쏘는것을 기본으로 했으나 37mm 포를 장착한 M2A4는 정확한 사격을 위해 정차 후 사격이 기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40년이 되자 유럽에서의 전쟁에 대응하기 위해 기갑군(Armored Force)이 창설되면서 최초의 기갑 사단(Armored Division)들과 독립 전차 대대(separate tank battalion)들이 창설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급속도로 대규모 확장을 해버리자 전차 포수의 숙련도가 크게 악화되었다. 새로운 병사를 훈련시키고 새로운 부대를 조직하고 새 부대를 지휘할 간부를 양성하는데 중점을 두다 보니 숙달된 기존 인력들이 희석되고 평균적인 포술 지식과 기술이 과거보다 떨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새로 만들어진 기갑사단들과 독립 전차 대대들은 부대별로 훈련 계획을 세워야 했고 여기에 전차 포술 훈련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의 훈련과 그 결과에 대한 보고서는 기갑군 본부와 공유되었고 기갑군 본부는 모범사례를 찾아내 자체 훈련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여전히 표준 포술 훈련 계획이 없었음으로 부대 지휘관이나 편제 짜는 놈들이 자체 훈련의 설계자이자 평가자였다. 따라서 초기 기갑군 포술 훈련은 각 부대의 물자 보급 상황과 작전 경험, 부대 지휘관의 성향이 반영되어 부대마다 너무나도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전차의 전투 효율성에 있어서 높은 명중률의 포술보다는 기동성을 더 중시하던 지휘관들은 이런 편견을 훈련에 반영하곤 했다. 이 시기 기갑군이 포수들에게 가르친 유일한 공통 훈련은 무기 사용법과 유지하는 방법의 기초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 뿐이었고 나머지는 부대에서 선임들한테 배워야만 했다.
당연히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고, 기갑군은 부대별로 포수에게 가르치는 것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훈련 복잡성을 줄이고 훈련과 재배치를 원할히 하기 위해 하나의 표준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만들어진게 미 기갑 부대용 포술 표준 교범이었는데 미군이 전쟁에 투입된지 한참 뒤인 1943년 4월에나 처음 만들어졌다. 이 교범에는 각종 전투 테크닉과 훈련 가이드 원칙이 포함되었고 다음 해에는 그 동안 얻은 전훈을 반영한 개정판을 찍어내어 보내는 방식으로 교육하려 했다. 그러나 바다건너 본토에서 만들어진 이 교범의 효과는 제한적이었는데 이는 기존 정보를 받아서 취합한 뒤 새로 찍어내는 방식상 1선 전차 부대를 위협하는 환경과 전장에 새로 배치되고 새로 마주치는 기갑차량에 대한 정보는 하나도 없고 너무 옛날 정보가 많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개정이 느린데 1943년 4월에 만들어진 교범은 거의 겨울까지 일선 부대에 보내지지 못했고 1944년 7월에 뽑힌 개정판은 12월까지 해외 일선 부대에 보내지지 못했다. 따라서 2차대전 당시 상당수 전차 부대들은 표준화 교범이 만들어졌음에도 그냥 하던대로 계속 선임과 부대 지휘관을 통한 자체 포술 훈련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전차 부대 장교들의 무지도 일선에서 온갖 문제를 만들어냈다. 기갑부대의 급속한 확대로 인해 장교들은 기갑과 포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차부대 지휘관 자리에 올라버렸다. 기갑군 사령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갑학교에 포술 과정을 추가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1943년 3월부터 시작된 이 과정은 화포들의 이름과 작동법이나 배우던 이전 과정과는 극히 대조되는 포술 기술과 본질에 대한 부분을 포함했다. 이 과정을 수료한 기갑 장교들에겐 이때 배운 지식이 일선에서 큰 도움이 되었고 전쟁이 끝날 쯤에는 기갑부대의 하급장교들과 부사관들이 이 과정을 수강하도록 권고하게 되었다.
여기에 일선 부대 내 전차 포수 숙련도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전투중 손실은 승무원들의 멘탈 뿐 아니라 지휘 체계도 불안하게 만들었는데 훈련을 받은 대체 인력이 배속되어도 훈련 완료와 배치된 부대 도착 사이에 과도한 시차가 발생하여 전장에서 새로 교육을 받아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전반적인 훈련 수준 특히 포술에 있어서 막 훈련을 끝낸 병아리들은 전투 투입에 충분한 능력을 갖췄다고 여겨지지도 않았다. 이런 신병들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주포를 목표에 조준하는 속도가 느리며 적절한 탄도화기 사격에 중요한 사거리 예측을 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전후
어쨌거나 2머전이 끝나고, 기갑군은 드디어 통일된 전차 포수 훈련 계획을 가지게 되었다. 훈련소에서 얻은 교훈과 일선 부대들의 훈련과 전훈을 조합한 이 계획은 완벽해보였지만 당시 씹창난 군대 상황 때문에 제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2차대전이 끝나고 군축빔을 맞자 전쟁에 참전했던 병력들이 대규모 제대를 해버렸고 신속하고 급속한 제대빔은 미 기갑부대에 있어 유무형적으로 대규모 손실을 가져왔다. 기갑부대에 남은 인력들도 대부분 전차 포수가 아닌 서기와 순찰대에 불과했고 서류상 전차병과 포수로 남아있더라도 실제로는 부대 내에서 그런 서류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렇게 제대해버린 인력들을 사용할 예비군에는 장비가 없었기 때문에 기갑이라고는 기갑 여단 하나가 전부였다. 예비군 보병 사단을 효과적으로 써먹기 위해 유기적으로 전차 부대를 합류시켜 전투력을 증강시키겠다는 계획은 그냥 서류상으로만 이뤄졌다.
예를 들어, 일본에 주둔한 제8군 같은 경우 각 4개 보병 사단들에 1개 전차 대대와 3개 연대 전차 중대(Regimental tank companies:전차 중대)들이 붙어야하지만 현실은 전차 중대 하나만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인력 부족과 전쟁이 끝났다고 풀어진 기강, 야전 훈련에서 대항군으로나 굴러다니는 현실, 훈련하기에 적절한 기동 구역도 없고 훈련장이 있는거도 아닌 상황은 훈련 효율성을 씹창내놨다. 1949~1950년에 제8군의 훈련 상황이 개선되지만 전차 포수 능력은 여전히 한심했는데 이는 경험없는 지휘관들과 군대 규모 축소로 장교 하나를 이 자리에 넣었다가 저 자리에 넣었다가 하던 상황상 군종 전문화(military occupational specialty-주특기) 훈련이 부족했고, 짬 차고 경험 많은 부사관과 장교들이 병력 지휘 임무에서 물러나고 책상에서 서류임무나 하게 되었던 등의 상황 때문이었다. 게다가 일본의 인프라 상황은 원래 편제상 운용해야했던 무거운 전차들 대신 경전차들이나 굴리기 적당한 수준이었고 이 때문에 포술 훈련을 한다고 하더라도 교범상과도 실제 전투와도 크게 동떨어진 떨어진 것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2차 대전이 끝나면서 기계화 기병대, 전차 그리고 대전차부대 등이 해산되면서 그 자원으로 미 경찰대(U.S. Constabulary:전후 서독에 주둔한 미 헌병대)를 만들 수 있었는데 이들은 치안 안정 부대로 경기갑만을 사용했기에 전차 포술이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이들은 기갑 기병 연대로 변하게 되는데 다행히 이들은 한때 나치 전차부대들이 훈련했던 장소에서 포술과 기동을 훈련할 수 있었고 공산주의 빨갱이들이라는 확고한 적에 확고한 지형을 염두에 둔 특화 훈련도 가능했다. 다행히 이들의 발전은 이후 나토의 창설로 강조된 유럽 안보에 있어 미국의 새로운 공약을 보여주는 것이 되었다.
냉전기
한국전으로 시작하는 냉전기 파트부터는 다음?에 머 읽는 사람 없으면 터질수도 있고. 유동이라 사진 못 올려서 사진은 없다. PDF 16장짜리 장편임
유동이라 사진은 없다
공식 매체 기고문에서 대놓고 포술대회 고로시를 ㅋㅋㅋㅋㅋ
손번역이다보니 원문보다 조금 과장이 들어가긴 함. 근데 이렇게 써야 그나마 읽자나
군축 맞고 본토 기갑포술 능력이 죽어갔는데 유럽 주둔군으로 다시 살린거네 - dc App
개추!
한국전쟁 발발 직후 주일미군에서 가동 가능한 전차댓수 보고서 보면 정신이 멍해지는데, 단 3대의 셔먼과 한 대의 퍼싱만이 정상 작동됨
전차 소대 단 하나
전차부대가 잘못했네
1편부터 고나심을 못 받는걸 보니 2부는 드랍이다. 갓직히 유동이 사진이라도 올릴 수 있으면 중간중간 사진 박아가면서 더 재미있게 쓸 수 있었을텐데 아쉽
따끈따끈한 24년도 글 읽기 전에 댓글추
2대전 때 독립대대 편제는 잘한 거 같아보였는데 다 따로 놀다보니 훈련이 개판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