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 55분, TBF 편대는 일본 항공모함 전대를 발견했다. TBF의 좌측(남서쪽)에서 비행 중이던 B-26도 거의 같은 시간에 일본 항모를 발견했다. 미군 공격대의 시야에서는 3척의 항공모함만 보였을 것이지만, 총 4척의 일본 해군 항공모함이 남동쪽으로 향하며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히류는 오른쪽(동쪽)에 있었고 기함 아카기는 왼쪽(남서쪽)에 있었다. 선두 항공모함들 뒤에는 북쪽에 소류가, 북서쪽에는 카가가 있었다. 항공모함 앞에는 동쪽에 전함 하루나 , 중앙에 경순양함 나가라, 서쪽에 중순양함 토네가 있었다. 항공모함 뒤에는 전함 키리시마와 중순양함 치쿠마가 있었다 . 



일본 해군의 교리에 따라 호위함들은 항공모함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였다. 이 호위함들은 일본 해군의 우수한 견시들을 통해 조기에 시각적 경고를 제공하고 항공모함의 급진적인 회피 기동을 위한 충분한 해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일본은 이것을 가장 효과적인 대공 방어 수단으로 여겼다.






TBF나 B-26 편대들은 서로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지만, 거의 같은 시간에 공격을 시작했다. TBF 편대는 오른쪽에 있는 히류를 향해 갔고 , B-26 편대는 왼쪽에 있는 아카기를 공격하기 위해 날아갔다 .








오전 7시, 일본 항모기동부대 사령관 나구모 주이치 중장은 아카기에서 미드웨이 1차 공격대 지휘관 토모나가 대위에게 "카와 카와 카와"라는 암호 메시지를 받았다. 이 메시지는 미드웨이에 대한 두 번째 공격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해당 무선은 미군 정보국에 탐지되었다.) 



일본 해군의 교리와 연합 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의 명령에 따라 나구모는 미 해군 항공모함이 나타날 경우를 대비해 약 절반의 항공기(총 107대)를 예비기로 보유하고 있었다. 



아카기와 카가 소속 일본 뇌격기들은 이미 격납고에서 어뢰를 장착한 상태로 대기 중이었고, 히류와 소류 뇌격기들은 미드웨이 1차 공격에 수평 폭격기로 사용되었으므로 먼저 회수해야 했다. 일본 해군은 비행 갑판에서 급강하 폭격기에 폭탄을 장착했기 때문에 히류와 소류의 99식 급강하 폭격기들은 격납고에서 미드웨이 공습이 재개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드웨이 미군들은 1차 공격의 피해를 복구하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항공 정찰을 통해 미 해군 함선을 확인하지 못한 일본 해군은 2차 공격을 주저하고 있었다. 



나구모와 그의 참모진들에게 미드웨이에 대한 2차 공격이 필요하다는 도모나가의 암호 메시지는 이미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2차 공격을 위해서는 뇌격기에 장착된 어뢰를 폭탄으로 변경해야 했고, 99식 급강하 폭격기에 장착하도록 미리 준비한 철갑 폭탄 대신 일반 폭탄을 무기고에서 꺼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전 7시 10분, 육안으로 상공을 관찰하던 아카기의 견시(Mark1 eyeball)들이 주변의 호위함과 거의 동시에 공격을 시작한 TBF와 B-26 편대를 발견했다. 일본의 해군 교리에 따라 호위함들은 주포를 발사하여 공습이 임박했음을 경고하고, 적기가 날아오는 방향을 알려주었다. 


무전기가 장착된 제로센이 거의 없었고, 무전기가 장착 되었어도 그다지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호위함들이 적기 방향으로 주포 사격을 하는 것은 전투 항공 순찰(CAP)을 하고 있던 전투기들이 요격을 위해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미군의 공격 당시 일본 해군은 이미 30대 정도의 제로센이 공중에서 대기 중이거나 발진 중이었다. 대다수의 전투기들이 돌입하는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처음에 TBF 어벤져 편대는 약 6대의 제로센에 의해 요격당했고 B-26도 거의 같은 수의 제로센에 의해 요격당했으며, 전투가 진행됨에 따라 더 많은 제로센들이 몰려들었다.


일본 항공모함 조종사들은 이때까지 TBF와 B-26을 본 적이 없었고, (B-26은 이미 뉴기니 전역에서 여러 차례 전투 임무를 수행했지만 항공모함 조종사들은 몰랐다). 두 종류의 항공기 모두 피격 후 횃불로 변하는 일본기들에 비해 전투 피해에 매우 강하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제로센의 7.7mm 기관총 세례는 TBF와 B-26에게 구멍만 잔뜩 뚫는 효과 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적은 수의 탄약만 사용 가능한 20mm 기관포를 사격하기 위해 더 오랫동안 목표물을 향해 수평을 유지해야 했으며, 미군기들의 방어 사격에 더 취약해졌다.







일본 전투기들은 당황 시킨 건, 처음으로 추락한 비행기가 미군이 아니라 TBF에 의해 불타버린 제로센 한 대와 B-26에 의해 불타버린 제로센 한 대 였다는 것 이었다. 그 결과 일본군 조종사들 사이에 규율이 무너졌고, 많은 조종사들이 추락한 동지들을 복수하기 위해 서로 자리를 차지하려 하는 등 말 그대로 소통이 차단 되었다.


전투기들의 공격이 격화되자, Fieberling 중위는 휘하 어벤져들을 고도 4,000(1,200m)에서 200피트(60m)까지 시속 300노트(555km)의 속도로 급강하시켰다. 



저고도에 도달했을 무렵, 편대의 가장 왼쪽에 있던 Ensign Albert Kyle Earnest 소위는 편대기 모두가 살아있는 걸 확인했는데, 그가 조종하던 어벤져처럼 일본기의 공격에 난타당해 심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TBF 어벤져는 TBD 데바스테이터보다 빠르고 더 높은 고도에서 어뢰를 투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어뢰의 유도 및 무장 시스템을 손상시키지 않고 마크 13 항공 어뢰를 투하하기 위해서는 느린 속도와 낮은 고도가 필요했다.


(마크 13 항공 어뢰 최적의 투하 조건은 시속 200km, 고도 15m 였다.)



TBF가 어뢰를 투하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면서 생존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져만 갔다.


(미드웨이 해전이 끝나고 군수국은 마크 13 항공 어뢰를 실사격 테스트하며 문제점을 찾아내고자 했다. 어뢰의 결함을 더 일찍 발견하고 수정했더라면 많은 뇌격기 승무원들이 살아남았을 것이다.)





(왼쪽부터) Manning, Earnest, Ferrier의 사진


이때쯤 Earnest 소위의 기수에 장착된 30구경(7.62mm) 기관총은 고장났다. 후방 포탑 사수인 3등 항공 기관사 Jay D. Manning은 20mm 기관포탄에 직격되어 가슴이 둥근 정사각형으로 조각 났고 하단 무전실을 피로 물들였다. 3등 무전수 겸 하방 사수 Harry H. Ferrier는 이마에 맞은 총알로 의식을 잃은 상태였기에 다른 기체들과의 통신이 불가능해졌다.



Earnest 소위 또한 목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고. 계기판은 나침반과 함께 박살 났으며, 엘리베이터 제어 장치는 끊어졌고, 유압 시스템 또한 총알에 맞았다. 



Earnest는 TBF를 조종하기 위해 애썼지만, 바다에 착수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편대에서 벗어나 경순양함 나가라에 어뢰 공격을 시도했다. 수동 무장 비상 투하용 릴리스 핸들을 당긴 후에도 어뢰가 투하됐는지 Earnest는 확인 할 수 없었지만 어뢰는 정상적으로 작동햇다. 하지만 나가라는 이 공격을 회피했다.







Earnest의 TBF가 수면에서 약 20피트(6m)까지 고도가 내려갔을 때, 그는 추락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엘리베이터 트림 탭을 사용하여 최소한의 제어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불구가 된 TBF를 어떻게든 귀환 시키고자 노력했다. 


나가라의 대공포화를 벗어나자, 더 많은 제로센이 Earnest에게 달려들었고 더 많은 구멍을 뚫었다. TBF는 추락하기를 거부했고, Earnest가 북서쪽 방향(미드웨이 반대 방향)으로 절뚝거리며 달아나자 제로센들은 결국 포기했다.








남은 TBF와 B-26 편대는 외곽의 호위함을 지나쳐 비행했고, 일본 해군 전투기들이 자국 함선들의 대공포화를 피하면서 전투기들의 공격은 잠시 멈췄다. 


TBF 5대와 B-26 4대는 강렬하지만 효과가 없는 대공포화를 지나쳐 일본 항공모함을 향해 돌진했다. 이때쯤 히류와 아카기는 우현 대공포대를 전부 사격하기 위해 좌현으로 방향을 틀었고 미군기들은 계속 다가왔다. 절박함이 커지면서 일본 전투기 조종사들은 아군 함선의 대공포화를 맞으며 요격에 들어갔다.


이즈음 TBF의 기총 사수들 대부분은 일본 전투기들의 총알 세례와 대공포화에 맞아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었을 것 이다. 누적된 피해가 너무 커지면서 TBF가 하나둘씩 추락하기 시작했다. Watson 중위가 조종하던 B-26도 비행 중 무언가에 직격되어 폭발하면서 탑승한 7명이 모두 전사했다.


탈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살아남은 두 대의 TBF는 추락하기 직전까지 히류의 근접해 항공어뢰를 투하 했다. 어뢰는 성공적으로 작동했고 사정거리 내에 있었지만 히류는 여유롭게 이 공격을 회피했다.

(히류의 최고 속도는 마크 13의 어뢰 속도(33노트)와 거의 같았다).







3대의 B-26은 아카기로 돌진했다. Collins 대위의 B-26 기수 기관총은 고장났지만, 아카기에서 800야드(731m) 떨어진 고도 200피트(60m)에서 어뢰를 투하했다. 콜린스는 약 100피트(30m) 높이에서 아카기의 선수를 지나쳐 189개의 온갖 구멍이 뚫린 B-26를 1,000피트(304m)로 급상승시켜 사지에서 탈출했다. 


Muri 중위의 "수지-Q (Susie-Q)"도 800야드(731m) 거리에서 어뢰를 투하했지만 아카기는 Muri와 Collins의 어뢰를 모두 피했다. 대공포화 속에서 Muri는 아카기 위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판단했고, 선수에서 선미 방향으로 비행갑판을 초저공으로 지나쳤다. 기수 기총 사수는 비행 갑판을 향해 12.7mm 총알 세례를 퍼부었고 좌현 2번 25mm 고각기총 사수 두 명을 사살했다.









"수지-Q"가 아카기의 비행갑판을 윙윙 거리며 지나칠때 Muri 중위는 또 다른 B-26이 머리 위를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Mayes 중위가 조종하던 "사탄의 소꼽친구 (Satan’s Playmate)"였다. "사탄의 소꼽친구"가 어뢰를 투하했는지는 현재까지도 알 수 없다. 만약 투하했다면 어뢰는 빗나갔거나 폭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 해군 특히 아카기에 승함한 나구모와 참모진들의 관점에서 보면 B-26은 틀림없이 아카기 함교를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일본의 설명에 따르면 함교에 있던 사람들 모두 B-26이 격돌하여 죽을거라 생각했다. 마지막 순간 "사탄의 소꼽친구"는 아카기 함교를 불과 몇 미터 차이로 빗나가며 반대편으로 추락했다. 승무원 7명 전원은 전사했다.






Muri 중위의 모습, 수지 Q는 결국 비행불가 판정을 받아 해체되었고 노즈아트는 기념품으로 남겼다.


Collins와 Muri는 미드웨이로 귀환할 수 있었지만 랜딩기어가 고장나 불시착 했다. Muri의 B-26에는 500개가 넘는 구멍이 났고 두 기체 모두 다시는 날지 못했다. 이 공격은 미 육군항공대가 미드웨이 해전에서 수행한 처음이자 마지막 뇌격 임무였다. (무리 중위는 아카기 공격 당시 담배를 물고 있었는데 20mm 기관포탄이 담배를 절반으로 끓어버리고 지나가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Mayes 중위의 B-26이 통제 불능이었는지 아니면 자살 공격 이었는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TBF와 B-26의 공격이 일본 해군의 향후 작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 이다.



오전 7시 15분에 미군의 공격은 끝났습니다. 10대의 항공기 중 7대가 격추되었다.


역사책에는 "실패하고" 무의미한 공격으로 기록될 것이다. 사실, 이 공격은 미드웨이 해전의 중요한 순간이었다.







나구모 중장는 우유부단하다는 세간의 평가(대부분 근거 없는)를 받았지만, 이 순간 그는 정반대 였다. 


오전 7시 16분, 나구모는 미드웨이에 대한 2차 공격을 하기 위해 재무장하라고 명령을 하달했는데, 이 결정은 아마도 세계의 해전 역사상 가장 많은 반론을 받았을 것이다. 


나구모는 아직 첫 번째 공격대의 손실과 피해가 얼마나 큰 지(그리고 미드웨이가 얼마나 공습에 타격을 받았는지도) 알지 못 했다. 그러나 자신의 부대를 공격한 10대의 미군기들이 미드웨이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압도적인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30대의 전투기와 대공포화를 뚫고 4발의 어뢰를 투하하는 것을 목격했다.


TBF와 B-26의 공격은 일본 해군을 감동시킨 사무라이식 용맹함 이었으며, 부분적으로는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시점에서 일본 해군의 정찰기는 아직 미국 항공모함의 흔적을 찾지 못했고, 미드웨이는 우선적으로 굴복시켜야 할 목표로 변했다.


나구모가 몰랐던 것은 미국 항공모함이 이미 그의 함대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었고, 오전 7시 14분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에서 함재기를 출격시켰다는 것이었다. 



오전 7시 34분 VT-8 TBD 15기가 발진하기 시작했고, 지휘관은 Waldron 소령이었다.






오전 7시 40분, 나구모는 미드웨이 북동쪽에서 미국 함선을 발견한 정찰기로부터 첫 보고를 받았다. 



나구모는 우유부단하기는커녕, 심각한 위협을 즉시 인식했다. 항공모함 없이 미 해군 함선이 거기에 있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요크타운은 산호해 해전으로 손상을 입었기에 호넷과 엔터프라이즈 두 척만 전투가 가능하다고 일본 해군은 판단했다.) 



오전 7시 45분, 나구모는 2차 공격대 재무장을 즉시 중단하고 대함 무장으로 변경하라고 명령했다. 미드웨이에서 귀환하는 1차 공격대를 대함 공격대 발진을 위해 상공에서 대기 시킨다면 연료 부족으로 절반이 불시착 할 것이 뻔하기에 비행 갑판에 함재기를 배치할 수는 없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