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의 고민은 적중하였다. 한국전쟁과 달리 동맹국 전체가 베트남 문제에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파키스탄·인도·버마·인도네시아·일본·프랑스·영국은 파병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말레이시아는 불확실했다. 파병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은 태국·대만·남한·호주·뉴질랜드·필리핀이었다. 미국 국방부는 대만이 남베트남 파병을 기뻐할 것이라고 추측했고, 더 큰 규모의 지원을 통해 당시 대만이 남베트남에서 수행 중인 은밀한 작업을 확장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것이 중국의 개입을 유도할 수 있으므로 제한적 지원 혹은 위장지원을 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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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반 남베트남-미국 사이에서는 남베트남군 증강을 위한 우방국의 군사 지원 확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응오 딘 지엠은 게릴라전의 증가로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군사적 지원의 필요성을 실감했으며 미국과 비슷한 노선을 견지했다. 지엠의 지지자였던 케네디는 대통령에 취임하며 미국의 남베트남 지지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특수부대 요원 400명의 남베트남 파견도 결정했다. 또한 남베트남 정부군을 확충하고 이들로 하여금 미군 장교로부터 게릴라전 대비 훈련을 받도록 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당시 미군 외에도 타국의 군대를 베트남에 일부 파병하는 계획 및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 자료에 따르면 1961년부터 미국 정부는 사이공(Sài Gòn)에서 멀리 있지 않은 “D구역(Zone

D, D구역은 사이공 근처에 위치하며,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 사령부로 쓰였던 꾸찌 터널이 있는 넓은 지대였다)”에서 베트콩과 그들의 땅굴을 발견하기 위해 대만의 재향 군인들을 동원하는 계획을 세웠다. 베트콩을 발견하려면 D구역의 숲을 없애야 했는데, 화학적 방법 이외에 벌목도 고려되었다. 따라서 당시 무장한 대만의 재향 군인들은 D구역의 목재상으로 위장해 임무를 진행하였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D구역의 목재는 가치가 높아 해당 구역에서 채취한 목재로 대만 정부가 충분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미국 역시 경제적으로 이익을 볼 수 있었다. 남베트남에서 활동한 대만의 재향 군인의 규모를 정확하게 확인 가능한 자료는 아직 찾지 못했으나, 그들은 1962년부터 소규모로 비밀리에 남베트남에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대만 군인을 고용하자는 제의는 남베트남정부에서도 나왔다. 1961년 10월 25일 시민경비대 및 민방위대 훈련 장교의 부족으로 지엠은 미국에 지원 요청을 보냈고, 남한보다는 대만을 선호한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지엠은 훈련 장교로 대만 특수부대 200명의 파견을 요청했고, 이에 대한 미국의 승인을 구했다. 지엠은 이미 대만의 장개석과 해당 문제를 논의한 바 있으며 장개석은 전투부대의 파견은 어렵지만 훈련 장교의 파견은 문제가 없다며 그의 동의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지엠이 남한보다 대만을 선호한 것은 개인적 취향이었다. 중국계 화교민족에 대한 선호도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엠은 사이공에는 오래 전부터 많은 화교들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이공에서 활동하는 대만 군인들이 자연스럽게 화교 출신 베트남인으로 위장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지엠은 대만 특수부대가 사이공에서 활동하는 베트콩을 발견하는 데 기여하리라고 기대했다. 남베트남에 외국군이 주둔하게 될 경우 북베트남의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와 남베트남의 민족정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던 지엠은 절차 상 대만에 먼저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케네디가 미군의 베트남 파병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자문단들이 “제2의 한국”이 생겨나서는 안 된다며 경고했기 때문에 미국은 지엠의 승인 요청에 곧장 답변할 수 없었다. 테일러(Maxwell D. Taylor) 장군은 11월 3일 남베트남의 위기 상황과 함께 지엠의 대만 관련 제안에 대해 보고했고 답신을 요청했다. 테일러 장군은 12월 7일 해당 사안을 다시 거론했다. 미 외무부는 12월 13일 국방부에 보낸 문서에서 “엄격한 기술적 관점에서 대만 특수 부대 고용은 가능한 해결책으로” 인정하고 있지만 “베트남에서의 우리의 목표 중 하나는 중공의 실질적 개입을 끌어들이지 않으면서 베트남인들이 공산주의가 주도하는 반란에 성공적으로 대처하도록 돕는 것이다. 대만의 개입은 이러한 위험을 어느 정도 증가시킬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같은 이유로 외무부는 “현재 베트남에 대만 군대를 들이면 안 되며, 다른 대안을 계속 탐구해야한다”고 주장했는데, 예를 들어 이러한 작전에 대한 경험이 있는 말레이시아나 필리핀, 태국으로부터 전문가를 파견할 가능성을 검토할 것이라고 답했다.


학위논문(박사)--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사학과--2018년 베트남전쟁 기 한반도와 베트남 관계 연구 156~1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