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The Cambridge history of Africa: from 1870 to 1905"에 있는 글을 번역해서 가져온 것임.
콩고 정책의 모든 원칙은 국왕에 의해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행정부는 종종 독자적인 방식으로 움직였다. 이는 특히 국유지 체제(domanial régime)에서 두드러졌다. 레오폴 2세 국왕은 국가가 국유지에서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토착민들을 노골적으로 착취하는 시스템은, 생산 수치가 보여주듯이 놀라운 성과를 냈으며, 주로 브뤼셀과 아프리카의 행정부에 의해 고안되었다. 국왕은 단지 수익이 만족스러운지만 확인할 뿐이었다. 그러나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가혹한 처우를 고발하는 첫 번째 비판자들이 등장했을 때, 국왕은 깊이 동요했다.
1896년부터 1900년까지, 그의 개인 서신을 보면, 그는 여러 차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1896년 9월, 그는 ‘우리는 문명화된 여론에 의해 비난받고 있다’라고 썼다. ‘콩고에서 학대가 자행되고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를 중단시켜야 한다.’ 1899년 1월에도 그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끔찍한 학대를 근절해야 한다.’ ‘이런 참혹한 일이 끝나지 않는다면, 나는 콩고에서 손을 뗄 것이다. 피와 오물로 얼룩지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이러한 분노와 혐오의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국왕은 원주민에 대한 잔혹 행위를 엄격히 처벌하라는 단호한 명령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콩고 행정부는 단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들은 이미 하나의 체제를 확립했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 주력했다. 체제를 변경하는 것은 그 자체의 약화를 초래할 위험이 있었으며,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압박을 완화하면 수익이 감소할 것이 분명했다. 행정부는 만약 수익이 줄어든다면, 국왕의 분노보다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해, 행정부는 국왕의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목표—국유지의 생산량 증대—와 가끔씩 찾아오는 양심의 가책을 구별했다. 그들은 국왕의 일시적인 감정보다는 근본적인 목표에 따라 행동했다.
따라서 이 체제와 연관된 모든 이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기 위해, 국왕에게 콩고에 대한 비판이 부당하거나 과장되었으며, 대체로 악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득하려 했다. 그리고 무의식적이었겠지만, 레오폴 2세는 이러한 설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결과, 그의 태도는 점점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비판에 영향을 받기는커녕, 그는 오히려 점점 더 강하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국왕은 항상 자신의 측근들을 지배하는 위치에 있었지만, 이 경우에는 오히려 그들에게 지배당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https://crossoflaeken.blogspot.com/2011/01/leopold-ii-and-congo.html
왕한테 책임 다 씌웠다 그건가?
책임 다 씌운거라기보단 행정부는 자기들 맡은 바에 최선을 다 했고 국왕도 성과가 나오니 점차 흐린눈 한거같음
병신이네
이거완전 “야근하지말고 내일까지 해놓으세요” 아니냐? - dc App
가끔 그걸 해내는 놈이 나와서 세상이 바뀌기는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