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철은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는데, 출신성분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1967년부터 군생활을 시작하면서 두각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져있음.

신중철은 사병으로 입대해 강건종합군관학교와 김일성군사대학을 연이어 졸업했고.

종합군관학교는 일반 사병을 장교로 양성하는 사관학교격으로, 귀순후 신씨는 “군관학교에서는 성적이 뛰어나 다른 사람들이 소위로 임관할 때 나는 중위를 달았다라고 진술 했음

중위로 임관된 후에는 당성(黨性)이 투철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장교만 입교할 수 있는 김일성군사대학을 졸업했는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생인 김평일이 신중철와 함께 교육받은 것으로 전해짐

귀순 직전까지 신중철이 맡고 있던 민경대대 참모장은 원래는 중령이 맡는 보직으로. 신중철은 대위 계급을 달고 참모장 직책을 수행할 정도로 자질을 인정받고 있었다고함

하지만 1983년 5월17일 새벽, 강원도 양구의 우리 군 최전방 초소로 귀순해온 신씨는 관계기관의 신문 과정에서 “북한군이 제대로 먹고 입지도 못하는 데 회의를 느꼈다”며 “근무환경과 훈련체계가 제대로 잡혀 있는 한국 군대에서 군인으로서의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고 귀순 동기를 밝혔음

그러나 그가 ‘모종의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됨으로써 장래가 보장돼 있던 북한군을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는 소문도 함께 돌았음


신중철은 북한군의 대대(大隊)전술 이론과 실무를 체계적으로 익힌 최초의 귀순자였기 때문에, 국군은 그를 통해 전시(戰時)의 북한군이 어떤 체계로 움직이는지를 고스란히 파악할 수 있었음

한 예비역 장성은 “신씨를 통해 북한의 전술체계를 속속들이 파악함으로써 방어 위주로 짜여 있던 우리 군의 전시 작전개념에 공격개념이 추가될 수 있었다”고 말했음.

신중철씨는 전역 때까지 국군정보사령부에서 적전술연구단 연구위원으로 근무하면서 북한군의 전술과 관련된 군사교본도 여러권 저술했음

신중철씨는 북한군의 전술체계 외에도 우리 군이 참고로 할 만한 유용한 정보를 여럿 제공했는데

당시 우리 군이 신씨를 통해 취득한 북한군 관련 정보에는 ▷군사도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전시 부대이동 속도가 우리 군이 추정했던 것보다 훨씬 떨어지고
▷햅쌀은 우선적으로 군량미로 비축되기 때문에 군인들은 묵은 쌀만 먹고 있으며
▷어려서부터 제대로 못먹고 자랐기 때문에 관절염 등으로 고생하는 군인들이 많다는 것 등도 들어 있었음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4땅굴이 있을 가능성을 알려줬는데
신중철은 자신이 관할하던 지역으로 공병대 인력들이 드나들며 ‘모종의 작업’을 하는 낌새가 있었고, 실제로 특정지점에서는 땅굴을 팔 때 나오는 돌무더기도 목격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음

신중철의 진술을 가지고 위성 등을 동원해 1990년에 제4땅굴을 찾는데 성공한 육군은 신중철씨를  귀순 3개월만에 육군 소령으로 임관시켜 정보사령부에 배치했고, 신씨는 소령 임관 4년만인 1987년에는 중령으로, 91년에는 다시 대령으로 진급했음


하지만 신중철은 2000년 모호한 흔적과함께 갑자기 중국으로 사라졌는데, 당시 남한에서 부인과 딸2명까지 둔 그가 갑자기 사라진건 상당히 충격적인 소식이었음

국정원과 정보사에서 조사한바에 따르면 가족 몰래 30대 내연녀 (신중철이 살고 있던 일산에 있는, 이발소 직원 안마사)를 만나고 있었으며, 여러 대출을 가족몰래 받았고, 부인의 자산도 마음대로 매각한후 내연녀와 함께 출국한것으로 드러남

그래서 신중철씨가 당시 군내부의 하X회 등 사조직의 비호를 받고 빠르게 진급할수 있었고, 정보사에 근무하며 사조직 소속 군 수내부와도 친했던 만큼, 이중간첩한테 속아서 조그만정보를 받고, 큰 정보를 북한과 중국에 넘겨버린거 아니냐 하는 의혹이 있음

그리고 저기 내연녀도 국내에 배치된 고정간첩이라는 의혹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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