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무라 히토시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 점령 
9일 만에 무려 해군의 지원을 얻어내 속전속결 
함포, 항모 지원에 힘입어 9일 만에 포위, 
네덜란드 주둔군 9만, 연합군 5천명 항복 받아냄

후에는 일본군 최대 유전 지대를 확보함. 

민사작전도 중요시 여겨서 
자기 점령지, 휘하에 있으면 포로, 학살 금지, 
민간인 함부러 사살한 장교 불러다 권총으로 즉결 처형까지함  

본토에서  현지인에게 목면화 강제 징발, 노동형 지시했으나 
현지인들의 문화적(현지인들 장례에 종교적으로 쓰였다함), 생필품이라고 무시함. 무시 정도가 아니라 회신거부를 해버림 ㅋㅋㅋ


이런 상식적인 유화정책, 민사작전에 본토 군부는 이와무라를 매우 불쾌하고 아니꼽게 보았음. 
그래서 이와무라를 라바울 섬으로 좌천시킴. 

비교적 미군의 공습이 적은 곳이고 전쟁 말기 일본도 더 이상 
팽창은 커녕 적도 아래 라바울 까지 보급을 할 수 없다는걸 알고 있던 이와무라는 병사 한 명에 200평 땅을 할당해 둔전을 하게 한건 유명한 일화, 자기 자신이 직접 첫 둔전을 몸소 보이며 일주일에 2일 농사, 참호 및 진지구축(민간인을 위한 대피호도 만들었다함), 나머지 하루는 그 당시 노동인식에 ‘의무휴일‘을 만듦. 

본토 토착 뿌리 식물을 기르다가 나중엔 콩, 쌀, 사탕수수까지 뽑아서 일본식 요리를 해먹는 지경에 이르름 ㅋㅋㅋ

미군도 라바울에 관심이 없고, 일본본토로 향하는 오키나와쪽에 중점을 두고 있어서 가능했던 걸지도 모름. 

허나, 같은 해상봉쇄를 당했던 트럭섬의 일본군들은 보급 부족에 자멸, 굵어 죽은걸 생각하면 마냥 복무지가 좋았다고 볼 수도 없었음. 

인도네시아 자바섬 현지 아이들에게 둘러쌓인 이와무라


이렇게 패전까지 자신의 휘화 부하들에게 둔전을 시키다가 
항복을 하고 대부분의 부하를 그대로 생환시킴. < 이것만 봐도 일본군 머장 goat임 

 휘하 장병들이 전쟁 기간동안 사회와 오래 떨어져있었기 때문에 귀국 후 곤란을 겪게 될 것을 우려했다. 이에 병사들이 중학 수준 이상의 학력을 갖출 수 있는 교육과정을 기획하는가 하면 잡지를 발행하는 등 그들의 문화소양을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 전역자 사회화까지 신경씀


얼마나 잘해줬으면 

인도네시아에서 전범재판이 열렸을때 네덜란드 측에서 굴욕적으로 빼앗긴 식민지에 사형을 내리라는 압력도 있었지만
앞서 말한거 처럼, 군부 압력에도 현지인 수탈이나 강압적인 정책을 개무시하고 금지해서 무죄 판결남. 

이때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에서는 독립전쟁이 한창이었는데, 수카르노를 비롯한 독립군 측에서는 이마무라를 환영하며 그를 탈옥시킬 계획까지 세우기도 했고 

단, 이 탈옥계획은 이마무라가 '무사도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거부하여 실행되지는 않음 ㅋㅋㅋ 

B급전범으로 10년형을 일본 본토 미군 형무소에서 보냈는데
관대하게 포로대우를 해주고 일본에서 보기드문 덕장이라 
이를 알던 미군헌병들이 일반식사와 최상의 대우, 가족 면담까지 허용함. 

허나 자신의 옛부하들이 아직 태평양 마누스 섬으로 이감되어서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음을 알고, 그곳으로 부하와 함께 있고 싶다 탄원을 보내서 관계자들을 탐복하게 만듬. 
맥아더 조차 일본에 온 이례 처음으로 무사도를 접했다고 감탄했을정도. 

이후 부하들이 있는 마누스섬으로 이감 됌 

출소 후 귀국하여, 쓴 회고록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인세 모두 자신의 휘하 전사자, 유족에 쓰고 본인은 군 연금으로 은둔생활을 하며 반성을 하며 살았다고함. 

참고로 이와무라는 육군유년-사관-육군대학교 코스를 모두 수석을 놓치지 않음. ㄷ 



여담) 

개폐급이었던 미즈키 시게루도 이와무라 대장만은 감복함 ㅋㅋ

미즈키 시게루 ㅈ되어보라고 이와무라가 부대 순시때 
시게루 불러다가 원주민과 교루하는 자라고 귀뜸했는데 
“호오.. 그런가” 하고 흥미로운듯이 말하고 그냥 넘어감 ㅋㅋㅋ 

시게루 피셜 “내가 일본군에서 만난 가장 따뜻한 사람”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