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
CCR - Run through the jungle
두 개의 연설, 두 개의 세계
1960년 6월 30일, 아프리카 심장부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벨기에 국왕 보두앵 1세(Baudouin I)가 백색 정장과 반짝이는 훈장을 달고 콩고의 수도 레오폴드빌(현 킨샤사)에 서 있었다.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벨기에는 여러분에게 문명이라는 선물을 주었습니다."
국왕의 말에 연단 아래 백인들은 박수를 쳤지만, 콩고의 흑인 신임 총리 파트리스 루뭄바(Patrice Lumumba)는 웃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땀에 젖었고,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잠시 후 루뭄바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설을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날카롭게 갈라졌다.
"우리는 고문당했고, 굶주렸으며, 끊임없이 착취당했습니다. 이 모든 고통과 학대에 맞서 싸웠고, 마침내 오늘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그 순간 국왕의 얼굴은 굳어졌고, 벨기에 언론은 이 연설을 '국왕에 대한 모욕'이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루뭄바는 더 이상 굴복할 수도, 침묵할 수도 없었다.
I. 제국의 유산 – 부유하지만 주인이 없는 땅
벨기에령 콩고는 세계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이었다. 코발트, 구리, 우라늄, 고무, 석유가 넘쳐났다. 히로시마 원자폭탄 '리틀 보이'의 우라늄도 이곳에서 왔다.
그러나 그 자원의 진짜 주인은 없었다. 벨기에는 콩고를 식민지로 다스릴 계획도 없었고, 레오폴드 1세에게 인계 받으면서 현지 엘리트를 키우지 않았다. 학교는 극소수였고, 대학은 전혀 없었다. 군대의 지휘관도, 정부 관리도 모두 벨기에인들이었다. 콩고의 흑인들은 지배자가 아닌, 단지 지배받는 존재였다.
독립은 너무 빨리 찾아왔고, 그 땅은 국가를 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레오폴드빌 (현 킨사샤)의 소요를 진압하는 헌병대)
II. 준비되지 않은 독립 – 곧바로 찾아온 혼란
"이러지 마십시오! 저희는 벨기에인이 아닙니다!"
독립 다음 날, 폭발은 시작되었다. 콩고군의 흑인 병사들은 분노로 가득 찼고, 자신들을 억압해온 백인 장교들을 쫓아냈다. 장교들은 두들겨 맞고, 몇몇은 처형됐다. 벨기에인 수천 명은 공포에 떨며 본국으로 급히 도망쳤다.
순식간에 군대는 무너졌다. 정부 기능도 마비됐다. 어제 독립한 국가는 오늘 사라지고 없었다. 벨기에는 떠났고, 남은 것은 혼돈과 분열뿐이었다.
III. 찢겨진 나라 – 분리의 불씨, 솜베의 카탕가
콩고는 너무나 거대했다. 백여 개의 민족이 뒤섞였고, 언어와 문화는 서로 달랐다. 그 중에서도 남동부의 광물 부국 카탕가(Katanga)는 이 혼란을 틈타 독립을 선언했다.
(모이즈 솜베)
카탕가의 중심엔 자칭 대통령이자 기업가, 군벌이었던 모이즈 솜베(Moise Tshombe)가 있었다. 그는 외쳤다.
"카탕가는 이제 독립한다!"
솜베는 벨기에 대기업과 손을 잡았고, 외국 용병을 고용해 자신만의 국가를 세웠다. 카탕가는 국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기업이었고, 그 통치방식은 오로지 돈과 총으로 운영됐다.
이곳의 실질적 지도자는 모이즈 솜베(Moise Tshombe).
벨기에의 기업 자본과 깊게 연결된 인물이었다.
솜베는 반군 진압을 명분으로 콩고 정부에 복귀했고,
그 대가로 자신의 지역 군벌과 외국 용병을 정규군처럼 운영할 권한을 얻었다.
그는 군을 이끌지 않았다.
그는 ‘군대를 빌려오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돈 받고 싸우는 군대",
다시 말해 용병이 콩고 땅을 밟기 시작한 시점이.
(레오폴드빌 외곽에서 체포된 루뭄바)
IV. 제거된 루뭄바 – 국제정치가 지워버린 남자
루뭄바는 혼돈을 수습하기 위해 유엔에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유엔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루뭄바는 다급한 마음에 모스크바로 손을 내밀었다. 그는 사회주의자였고, 이는 미국과 벨기에에겐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61년 1월, 그는 정적인 솜베의 군대에 체포됐다. 구타당하고 모욕당한 뒤, 결국 처형됐다. 그의 시신은 토막 난 채 황산에 녹아버렸다. 그의 시신은 흔적도없이 사라져, 확인할수있는건 금니 뿐이었다. 그를 죽인 자는 콩고인이었지만, 암살을 명령한 것은 외부의 그림자들이었다.
(모부투 조세프. 훗날 모부투 세세 세코가 된다.)
V. 권력 공백, 서방의 그림자들
모부투 조제프.
젊고, 야심만만하고, 무엇보다 CIA의 남자였다.
그는 군부 쿠데타로 루뭄바를 몰아낸 뒤, 정부의 핵심을 장악했다.
겉으로는 총리와 대통령이 있었지만, 실제 결정은 모부투의 전화를 통해 이루어졌다.
미국은 모부투에게 돈을 줬고, 벨기에는 그에게 외교를 맡겼다.
하지만 모부투의 군대는 훈련받지 않았고, 지휘 체계는 붕괴되어 있었다.
도심은 군화로 통제했지만, 국토의 80%는 반군의 손에 있었다.
루뭄바가 죽자 권력은 허공에 붕 떴다. 그 공백을 재빠르게 채운 건, 젊은 장교 모부투(Mobutu)였다. 그는 서방 정보기관(CIA)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모부투 뒤에는 더욱 위험한 그림자들이 미소 짓고 있었다. 그들은 기업가였고, 정보요원이었고, 용병 브로커였으며, 냉전의 전략가들이었다. 이들은 땅과 자원의 냄새를 맡고 돈을 쫓았다. 그들이 선택한 무기는 전투기나 탱크가 아니었다.
그들의 무기는 바로 돈을 받고 싸우는 '사람'이었다.
용병들이었다.
(사진관에서 포즈를 취하는 심바 반군)
VI. 심바 반군, 그리고 세 남자.
1964년, 콩고는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이번엔 '심바(Simba)'라는 이름의 반군이 무기를 들었다. 그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외쳤고, 토착 신앙과 주술을 믿으며 도시를 점령하고 대학살을 자행했다.
‘심바(Simba)’는 스와힐리어로 “사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자처럼 싸우지 않았다.
그들은 도시를 점령했고, 공무원을 죽였으며, 백인들을 사냥하듯 찾았다.
마르크스주의와 아프리카 민족주의가 뒤섞인 슬로건을 외치며,
한 손에는 총을, 다른 손에는 부적을 들고 다녔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미친 자들이라고 불렀고,
어떤 이들은 그들을 진정한 해방자라고 불렀다.
"심바는 총알로 죽지 않는다."
— 반군 병사들이 몸에 바른 진흙을 두고 한 말
실제로, 심바 반군은 종종 총에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다.
그들은 약을 복용했고, 집단 최면에 가까운 광신 상태로 싸웠다.
이념은 있었지만, 조직은 없었다.
이에 맞서기 위해, 세 명의 외국인 지휘관들이 콩고로 향했다.
지크프리트 '콩고' 뮐러 (Siegfried 'Congo' Müller)
나치 독일 국방군 대위 출신.
동부전선에서 철십자를 받았고, 전쟁이 끝난 후엔 남아공으로 흘러들어갔다.
그는 술과 총, 그리고 반공 이데올로기에 중독된 사내였다.
전투복 가슴팍에 독일군시절 수여받은 철십자훈장을 달고 다녔다.
기자 앞에서 “나는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고,
그의 손은 민간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있었다.
마이크 '매드 마이크' 호어 (Mike 'Mad mike' Hoare)
영국계 아일랜드인.
전직 왕립기갑군단 제 2 정찰대 소령, ‘프로페셔널’의 얼굴을 한 용병 대장.
그는 ‘5 Commando’를 지휘했다.
엄격했고, 냉정했고, 살육을 효율적으로 수행했다.
그는 자기 부대에 사적 복수나 강탈을 금지시켰고,
규율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은 그렇게 고상하지 않았다.
“나는 병사였고, 병사로서의 명예를 지키려 했다.
하지만 이곳엔 명예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 호어, 회고록 中
장 '블랙 잭' 슈람 (Jean 'Black jack' Schramme)
벨기에계 콩고인.
전직 플랜테이션 소유주이자 민병대 리더.
그는 자신의 사병으로 무장단체를 만들었고,
그 무력으로 정권과 협상을 시도했다.
그에겐 이념도, 명분도 없었다.
다만, “콩고는 내 땅”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슈람은 외국 용병과 현지 병사를 섞어 작은 왕국을 만들었고,
그 왕국의 법은 총구에서 나왔다.
세 사람 모두 악명 높은 용병대장이었다. 그들은 '돈으로 고용된' 전문 전사였고, 아프리카에서 가장 악명 높은 전투 전문가들이었다.
VII. UN – 방관자 혹은 침묵자
국제연합은 있었다.
파란 헬멧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보았고, 무전했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은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심바가 백인 선교사를 죽이고 정부군이 민간인을 처형할 때,
카탕가에서 벨기에계 기업이 현지인을 쫓아낼 때 —
그들은 기록만 남겼다.
콩고에서, 중립과 권위는 무기였다.
콩고는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벨기에가 급하게 떠나고, 루뭄바가 사라지고, 카탕가가 독립을 선언한 뒤 남은 건 피와 혼란뿐이었다.
독립은 준비되지 않은 채 왔다. 그리고 그 대가는 너무나 잔혹했고, 오랫동안 끝나지 않을, '아프리카의 베트남 전쟁'이라고 불릴 전쟁과 비극의 서막이었다.
2편에서 계속
ㅋㅋ왕잘멕였네
곤고급 전함 ㅇㄷ
글이 술술 잘 읽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