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금


Iron maiden - The troo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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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용병’이라는 착각

1978년 런던의 어느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젊은 기자가 방송 촬영 직전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당신을 용병이라 불러도 될까요?"

그 남자는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단, '좋은 용병(Gentleman Mercenary)'이라 불러주세요."

이 남자가 정말로 그렇게 살았는지, 아니면 그저 스스로 그렇게 믿고 싶었을 뿐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바로 그 '신념'을 가지고 그가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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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고전적 군인의 초상 – ‘제국의 장교’ 마이크 호어

마이클 토머스 “마이크” 호어(Michael Thomas "Mike" Hoare)는 1919년 영국령 인도의 캘커타에서 태어났다. 아일랜드 혈통의 영국 가정에서 자란 그는 전통적인 군인상을 어린 시절부터 흡수했다. 엄격한 교육과 전형적인 식민지 엘리트 문화를 체득한 그는, 제국주의 영국이 만든 ‘이상적 장교’의 표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그는 당연하게 영국 육군에 입대했다. 버마, 인도, 아프리카의 험한 전선에서 복무하며 계급장을 달았다. 전쟁은 잔혹했지만, 호어는 오히려 군인으로서 자신을 발견했다고 회고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남아프리카에 정착했다. 공식적으론 회계사로 일했지만, 실제로 그의 손은 숫자나 서류보다 총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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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나는 전쟁을 그리워했다" – 콩고의 전쟁터로

1961년 콩고의 카탕가 지역에서 독립을 외치는 솜베가 용병을 모집하기 시작했을 때, 호어는 망설임 없이 그 소집에 응답했다. 과거 군대 동료들과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빠르게 전장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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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중인 5코만도 대원들)

그는 소규모 백인 지휘관과 현지 흑인 병사로 구성된 부대를 만들었고, 이를 "4 Commando"라 불렀다. 이후 1964년 중앙 콩고 정부군이 심바(Simba) 반군에 맞서 용병들을 재모집했을 때, 그는 "5 Commando"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

겉으로 그는 자신을 "훈련 교관"이라 소개했지만, 실제 그의 임무는 정글 깊숙이 들어가 전투를 지휘하고 반군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총을 들고 정글 속에서 전쟁을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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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상자가 어지럽게 섞인 콩고)


III. 규율의 환상 – 전쟁터에서 통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호어는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가 '전통적인 군대'의 명예와 규율을 갖추길 원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항상 군사적 규칙을 강조했다. 강간, 약탈, 민간인을 상대로 한 사적 폭력은 현장에서 즉결처형하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병사들은 제대로 급여를 받지 못할 때가 많았고, 극도의 스트레스와 혼란 속에서 폭력과 학대가 만연했다. 호어는 가능한 한 통제하려 했지만, 전쟁터는 규율을 위한 장소가 아니었다. 전쟁의 현장은 단지 생존과 승리를 원할 뿐이었다.

결국 그는 수많은 병사의 일탈과 폭력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는 항상 "개별 병사의 문제"라 해명했지만, 지휘관은 결과로 평가받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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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마이크 호어의 '명예' – 착각과 현실 사이에서

그는 항상 자신이 왜 싸우는지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아프리카를 사랑한다. 공산주의가 이 땅을 파괴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나의 책무다."

그는 자신을 전통적 보수주의자라 칭했고, 심지어 식민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백인의 책무(white man's burden)' 논리를 들먹이기도 했다. 그는 심바 반군을 야만적이고 무질서한 악으로 묘사했으며, 자신을 문명과 질서의 수호자로 자처했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그가 이끈 부대 역시 민간인을 붙잡아 고문하고, 학살했다는 보고와 증언이 많았다. 그는 늘 “병사들의 개인적 일탈”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지휘관은 언제나 부대의 모든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였다.




(스탠리빌의 당시상황)

V. 스탠리빌 작전 – 영웅인가, 도살자인가?

1964년 11월, 심바 반군이 스탠리빌(Stanleyville, 현 키상가니)을 점령하고, 수백 명의 백인 민간인과 선교사들을 인질로 잡았다. 벨기에와 미국은 공수 작전을 준비했고, 호어는 지상군 지휘관으로 현장에 투입됐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많은 인질이 구출됐고, 심바 반군은 패주했다. 언론은 호어를 "인류애의 수호자"라 부르며 극찬했다.

그러나 현실은 작전 직후부터 달라졌다. 스탠리빌 점령 후 72시간 동안 도시는 학살과 복수로 물들었다. 심바 협력자로 지목된 민간인들은 거리에서 즉결 처형됐고, 도시는 총성과 비명으로 가득했다.

호어는 이에 대해 책임을 부정했다. "혼란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현장의 기록은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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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이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는 마이크 호어)

VI. 전쟁중독 – 콩고 이후, 세이셸의 쿠데타 시도

콩고 전쟁이 끝난 후 호어는 남아프리카에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전쟁의 중독에서 그는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1981년 그는 세이셸 정부 전복을 위한 쿠데타를 기획했다. 자신이 직접 훈련한 용병들과 함께였다. 그러나 작전은 허술했고 실패로 끝났다. 그는 세이셸 당국에 체포됐고, 법정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결국 33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이미 전쟁과 명예를 찾는 그의 삶은 파탄이 나 있었다.

출소 후 그는 회고록을 썼고, 방송에 출연했다. 그는 자신의 삶을 '신념과 명예의 싸움'으로 포장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 자신을 '좋은 용병'이라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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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I. 가장 위험한 착각 – '좋은 용병'이라는 자기기만

마이크 호어는 지적이고 예의 바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말을 조리 있게 했고, 카메라 앞에서는 항상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그의 진짜 본성은 드러났다.

"전쟁은 나를 망치지 않았다. 전쟁이 나를 만들었다."

호어는 스스로가 명예로운 군인이고, 좋은 용병이라고 믿었다. 어쩌면, 그것은 무자비함을 명예라는 가면 뒤에 숨긴 가장 위험한 자기기만이었을지 모른다.

뮐러처럼 잔혹성을 숨기지 않은 남자보다, 스스로를 '좋은 군인'이라 믿었던 마이크 호어의 착각이 더욱 위험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뮐러가 맹목적인 반공주의가 낳은 구체제의 망령이라면,
호어는 이상적인 백인의 이미지상과 영국의 이미지에 사로잡힌 구체제의 망령이라고 할수 있겠다.


4편에서 계속